보아 오빠 SNS에 1844개 댓글..매년 23만명 그렇게 운다

신성식 2021. 5. 1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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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레츠 고 9988]
보아 오빠 권씨 투병기 공감 확산
본지, 13명 전문가 긴급 인터뷰
말기 통보 상처 봉착 연 23만 명
"암진단부터 돌봐야 웰다잉 가능"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지난 12일 가수 보아의 오빠이자 광고·뮤직비디오 감독인 권순욱(40)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싸늘한 의사들’이라는 글에는 1844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쾌유를 비는 지인들의 글이다. 한 댓글은 “이렇게 쓰기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힘들었을지…. 현대의학에 오점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꼭 증명하길 기원해”라고 응원했다. 권씨가 경험한 대학병원 의사들의 싸늘한 ‘말기 통보’는 이랬다.

“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낫는 병이 아녜요….” “환자 의지가 강한 건 알겠는데 이런저런 시도를 해서 몸에 고통 주지 말고 그냥 편하게 갈 수 있게….”

가수 보아의 오빠이자 뮤직비디오 감독인 권순욱(40)씨. [사진 인스타그램]

고령화 시대에 던지는 권씨의 메시지의 의미가 작지 않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싸늘한 말기 통보에 상처받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가늠이 안 될 정도다. 지난해 사망자는 처음으로 30만명(30만5100명)을 넘어섰다. 교통사고·자살 등을 뺀 만성질환과 유사한 질병 사망자가 약 23만명에 달한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명예교수는 “23만명은 대부분 ‘말기 통보’ 과정을 거칠 것이며 고령화 시대에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진단한다. 말기 통보를 둘러싼 문제점과 대책을 13명의 전문가에게서 들어봤다.

일반인이 만성콩팥병·간경변 등의 장기부전에 빠지면 92%가 의사에게서 말기 예후 설명을 듣길 원한다. 루게릭 같은 신경계 질환이나 뇌경색 등도 마찬가지다. 오시내·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이 지난해 말 일반인 1005명, 의사 928명을 설문조사했더니 이렇게 나왔다. 환자의 알권리 인식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시간 비례 진찰료는 정신과가 유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일부 의사는 시간을 할애해 섬세하게 말기 통보를 한다. 하지만 상당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게 본지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유는 시간 부족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종양내과 의사는 17일 오후 57명, 18일 100명, 20일 오전 40명 진료한다. 다른 병원 의사는 오전 9시~밤 9시 외래진료하는 날이 있다. 정지태 대한의학회장은 “의사에게 시간이 너무 없다. 3~5분 단위로 예약을 받아놓고 한창 얘기하면 대기 환자들이 불만을 표한다”고 말한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3분 진료 환경에서 의사는 결과(말기 통보)만 알려준다. 어느 환자가 절망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말기통보 주요 대상 추정해보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영미 고려대 의대 교수(의학교육교실)는 의사한테서 의학정보(말기 등의 나쁜 소식)만 전달받은 환자그룹과 공감·걱정·지속적 돌봄 메시지를 같이 받은 환자그룹을 분석한 네덜란드 논문을 소개했다. 두 그룹 다 처음에는 불안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감 메시지를 받은 그룹만 불안이 감소했고, 의학정보를 정확히 기억했다. 이 교수는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잘 설명하려면 표정·감정을 살피고, 질문을 받는 등 최소한 15~20분 걸린다”며 “대형병원 환자 쏠림이 심해 의료인력이 분산된 상태다. 의사 사명감만으로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 상급종합병원의 3분, 30분 진찰료가 1만5330원(재진)으로 똑같다.

말기 상태 알려줘야 할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하지만 의사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권역호스피스센터장은 “말기 통보는 반드시 의사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의사는 항암치료가 안 되면 환자가 치료 실패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비난할 것이라고 여겨 빨리 상황을 끝내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김 센터장은 “그간의 치료를 종결하는 건 환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환자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설명하는 건 의사의 책무인데, 시간 탓은 말이 안 된다”며 “의사의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나쁜 소식 전하기 방법에 따른 효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국처럼 암 진단 때부터 조기통합돌봄 서비스(완화의료)를 시작하는 게 대안이다. 서울대 윤영호 교수는 사망 6~12개월 전부터 한 사람의 인생 스토리 정리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암 증상 관리, 심리적 고통 평가 후 지원, 향후 치료나 예후 설명, 가족 돌봄 지원 등을 시작한다. 아울러 사전연명의료의향서(존엄사 서약)를 설명해 작성하도록 유도한다. 유산 기부, 장기기증, 성년후견인 지정, 장례절차 등을 함께 준비하자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자원봉사자가 한 팀이 돼 이 서비스를 맡아야 한다”며 “2018년 2월 연명의료중단 제도를 시행했지만 이건 생의 최종단계에만 해당한다. 사전돌봄 서비스를 개시해야 진정한 웰다잉으로 가게 된다”고 말했다. 문재영 충남대병원 교수(호흡기내과)도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진찰료가 제대로 책정돼 있지 않은 등 완화의료 인프라가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울산대병원은 주치의들이 말기 통보 단계에서 호스피스를 연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병원 고수진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주치의가 보내면 내가 말기환자인지 한 번 더 판단한다. 이어 환자가 자신의 말기 상태를 잘 알고 있는지, 모르면 설명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영호·김대균 교수는 “‘호스피스=죽으러 가는 곳’이라고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서 호스피스의 ‘호’ 자(字)도 꺼내기 힘들다. 호스피스 용어를 없애고 조기통합돌봄을 확산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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