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 오빠 SNS에 1844개 댓글..매년 23만명 그렇게 운다
보아 오빠 권씨 투병기 공감 확산
본지, 13명 전문가 긴급 인터뷰
말기 통보 상처 봉착 연 23만 명
"암진단부터 돌봐야 웰다잉 가능"
지난 12일 가수 보아의 오빠이자 광고·뮤직비디오 감독인 권순욱(40)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싸늘한 의사들’이라는 글에는 1844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쾌유를 비는 지인들의 글이다. 한 댓글은 “이렇게 쓰기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힘들었을지…. 현대의학에 오점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꼭 증명하길 기원해”라고 응원했다. 권씨가 경험한 대학병원 의사들의 싸늘한 ‘말기 통보’는 이랬다.
“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낫는 병이 아녜요….” “환자 의지가 강한 건 알겠는데 이런저런 시도를 해서 몸에 고통 주지 말고 그냥 편하게 갈 수 있게….”
고령화 시대에 던지는 권씨의 메시지의 의미가 작지 않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싸늘한 말기 통보에 상처받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가늠이 안 될 정도다. 지난해 사망자는 처음으로 30만명(30만5100명)을 넘어섰다. 교통사고·자살 등을 뺀 만성질환과 유사한 질병 사망자가 약 23만명에 달한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명예교수는 “23만명은 대부분 ‘말기 통보’ 과정을 거칠 것이며 고령화 시대에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진단한다. 말기 통보를 둘러싼 문제점과 대책을 13명의 전문가에게서 들어봤다.
일반인이 만성콩팥병·간경변 등의 장기부전에 빠지면 92%가 의사에게서 말기 예후 설명을 듣길 원한다. 루게릭 같은 신경계 질환이나 뇌경색 등도 마찬가지다. 오시내·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이 지난해 말 일반인 1005명, 의사 928명을 설문조사했더니 이렇게 나왔다. 환자의 알권리 인식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일부 의사는 시간을 할애해 섬세하게 말기 통보를 한다. 하지만 상당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게 본지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유는 시간 부족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종양내과 의사는 17일 오후 57명, 18일 100명, 20일 오전 40명 진료한다. 다른 병원 의사는 오전 9시~밤 9시 외래진료하는 날이 있다. 정지태 대한의학회장은 “의사에게 시간이 너무 없다. 3~5분 단위로 예약을 받아놓고 한창 얘기하면 대기 환자들이 불만을 표한다”고 말한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3분 진료 환경에서 의사는 결과(말기 통보)만 알려준다. 어느 환자가 절망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이영미 고려대 의대 교수(의학교육교실)는 의사한테서 의학정보(말기 등의 나쁜 소식)만 전달받은 환자그룹과 공감·걱정·지속적 돌봄 메시지를 같이 받은 환자그룹을 분석한 네덜란드 논문을 소개했다. 두 그룹 다 처음에는 불안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감 메시지를 받은 그룹만 불안이 감소했고, 의학정보를 정확히 기억했다. 이 교수는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잘 설명하려면 표정·감정을 살피고, 질문을 받는 등 최소한 15~20분 걸린다”며 “대형병원 환자 쏠림이 심해 의료인력이 분산된 상태다. 의사 사명감만으로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 상급종합병원의 3분, 30분 진찰료가 1만5330원(재진)으로 똑같다.
하지만 의사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권역호스피스센터장은 “말기 통보는 반드시 의사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의사는 항암치료가 안 되면 환자가 치료 실패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비난할 것이라고 여겨 빨리 상황을 끝내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김 센터장은 “그간의 치료를 종결하는 건 환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환자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설명하는 건 의사의 책무인데, 시간 탓은 말이 안 된다”며 “의사의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미국처럼 암 진단 때부터 조기통합돌봄 서비스(완화의료)를 시작하는 게 대안이다. 서울대 윤영호 교수는 사망 6~12개월 전부터 한 사람의 인생 스토리 정리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암 증상 관리, 심리적 고통 평가 후 지원, 향후 치료나 예후 설명, 가족 돌봄 지원 등을 시작한다. 아울러 사전연명의료의향서(존엄사 서약)를 설명해 작성하도록 유도한다. 유산 기부, 장기기증, 성년후견인 지정, 장례절차 등을 함께 준비하자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자원봉사자가 한 팀이 돼 이 서비스를 맡아야 한다”며 “2018년 2월 연명의료중단 제도를 시행했지만 이건 생의 최종단계에만 해당한다. 사전돌봄 서비스를 개시해야 진정한 웰다잉으로 가게 된다”고 말했다. 문재영 충남대병원 교수(호흡기내과)도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진찰료가 제대로 책정돼 있지 않은 등 완화의료 인프라가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울산대병원은 주치의들이 말기 통보 단계에서 호스피스를 연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병원 고수진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주치의가 보내면 내가 말기환자인지 한 번 더 판단한다. 이어 환자가 자신의 말기 상태를 잘 알고 있는지, 모르면 설명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영호·김대균 교수는 “‘호스피스=죽으러 가는 곳’이라고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서 호스피스의 ‘호’ 자(字)도 꺼내기 힘들다. 호스피스 용어를 없애고 조기통합돌봄을 확산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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