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시대 부활하는 LP..MZ세대 뉴트로 열풍과 굿즈 문화 결합
# 대학생 김의지 씨(24)는 최근 LP(장시간 음반) 수집에 한창이다. 국내 가수가 내놓는 LP는 물론 해외 가수 LP까지 나오는 족족 사들인다. 최신 LP를 구매하기 위해 주말마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LP 매장을 직접 돌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희귀 해외 가수 음반은 해외 직구로 바로 구매한다. 그동안 멜론·스포티파이 등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만 써왔던 김 씨가 LP에 빠진 이유는 ‘감성’ 때문이다.
��LP 음반은 디지털 음원과 달리 아날로그 음반 특유의 독특한 감성이 녹아 있다. 음색 자체가 디지털 매체에 비해 따뜻한 느낌을 줘 매력적이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표지나 음반 디자인이 예쁜 LP 음반이 많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면 보고 듣는 재미를 모두 느낄 수 있다.”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는 게 당연해진 시대. 유행을 거스르고 인기가 역주행하는 실물 음반이 있다. 바로 LP다. 1960~1970년대 전성기를 누리다 테이프와 CD에 밀려 199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던 LP는 2020년대 ‘뉴트로’ 흐름을 타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LP 열풍’은 수치로 나타난다. 온라인 음반 판매 업체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LP 판매량은 전년 대비 106% 성장했다. 2018년 27%, 2019년 24% 증가율을 보이다 2020년 들어 급격하게 판매량이 늘었다. 올해 1분기 역시 전년 동기보다 판매량이 165% 급증했다. LP 시장 성장에 힘입어 주변기기 매출도 오름세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서는 LP 음반 재생기기 ‘턴테이블’ 매출이 2017년에 비해 102% 증가했다.
인기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최신 가요부터 힙합까지 LP가 나오는 즉시 팔려 나간다.
지난해 5월 발매한 가수 백예린의 정규 1집 ‘Every Letter I sent you.’의 한정판 LP 2000장은 예약판매 시작 직후 매진됐다. 이후 나온 일반판 역시 선주문 수량만 1만3000장을 기록했다.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로제가 3월에 발표한 첫 솔로 싱글 ‘R’의 LP는 예약판매로만 5만장 넘게 팔렸다. 과거 명반이 LP로 다시 나오기도 한다. 가수 이소라의 6집 앨범 ‘눈썹달(2004년 발매)’은 지난해 9월 예약판매 시작 1분 만에 준비 물량 3000장이 모두 소진됐다. 올해 4월에는 밴드 델리스파이스가 1997년 내놓은 음반 ‘Deli Spice’가 LP로 제작되기도 했다.
▷뉴트로·리셀 문화 MZ세대 사로잡아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지 30년이 넘은 지금 갑작스럽게 LP 열풍이 부는 이유는 뭘까. 업계 관계자들은 ‘뉴트로 열풍’과 ‘굿즈 문화’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우선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뉴트로 열풍’ 덕을 톡톡히 봤다. 과거 제품·문화를 즐기는 젊은 세대가 LP 음반을 적극 구매하며 판매량이 대거 올랐다.
예스24가 지난 3년간 LP 구매 고객을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30대(32%)와 20대(21%)가 과반을 차지했다. 예스24 관계자는 ��LP 전성기가 다시 온 배경에는 MZ세대에 불어온 뉴트로 열풍 효과가 컸다. 여기에 가요계 노력이 더해졌다. 지난해에 발매된 가요 LP가 2019년보다 34종 증가했다. 올해도 MZ세대를 목표로 다양한 장르의 LP 음반을 선보이는 중”이라고 밝혔다.
음반을 사서 ‘굿즈’로 수집했다 다시 파는 ‘리셀 문화’도 LP 인기의 주요 배경이다. 최근 LP를 음악 재생도구를 넘어 수집품과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소비자가 적잖다. 실제 수량이 적은 한정판 LP의 경우 중고 시장에서 정상 판매가보다 2~3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 본래 가격이 13만원인 이소라의 ‘눈썹달’ LP는 중고 가격이 45만원까지 치솟았다. 백예린 1집 LP는 평균 25만원, 김동률 라이브 앨범도 24만원에 거래된다. 2014년 나온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미개봉 LP는 중고 거래 가격이 200만원을 넘어선다. 제품 가치가 쉬이 떨어지지 않아 MZ세대 수집가들의 선호도가 높다.
▷소장 가치 높아…인기 계속된다
음반업계는 LP 인기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뉴트로 열풍이 멈추지 않는 데다 다양한 장르의 LP 음반이 꾸준히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최하나 예스24 아티스트사업팀 과장은 “스트리밍 인기에 CD 등 기존 매체들이 고전하는 상황 속에서도 LP 음반은 뉴트로 트렌드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다”며 ��LP 음반 수요와 공급이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긍정적인 분위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근 1~2년 사이 LP 시장이 최소 5배 이상 성장했다. 무엇보다 주 소비층이 LP 음반을 처음 접하는 새로운 세대, 즉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작이 불편하고 잡음이 깔려 있는 다소 ‘까칠한’ 음반을 MZ세대는 가장 ‘쿨’하고 ‘힙’한 것으로 인식한다. 음반업계에서는 2020년을 ‘LP 부활 원년’으로 체감한다.”
LP 제작 브랜드 마장뮤직앤픽처스 하종욱 대표의 설명이다.
인터뷰 | 하종욱 마장뮤직앤픽처스 대표
LP 열풍 피부로 느껴져…앞으로 시장 더 커질 것
Q.지난 몇 년간 LP 시장 성장세를 체감하나.
A LP 인기를 피부로 체감하게 된 시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500장씩 주문하던 수량이 1000장, 2000장으로 급증했다. 주문량이 2019년에 비해 3배 이상 올랐다. 2020년 6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2교대·야간근무를 시행했을 정도다. 업계에서는 턴테이블·중고 LP 시장까지 합치면 전체 시장 규모가 약 5배 이상 성장했다고 내다본다. 장르도 다양화됐다. 인기가 없던 시절에는 가요·클래식 리메이크 앨범만 팔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신곡을 LP 음반으로 내놓는 가수가 늘어났다.
Q.LP 시장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역설적으로 ‘스트리밍’ 시장이 성장해서다. 디지털 음원에 질린 ‘MZ세대’가 아날로그 감성이 담긴 음악을 원하면서 LP를 찾기 시작했다. 현재 LP 열풍을 주도하는 주 소비층은 LP를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다.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조작이 불편하고, 잡음이 깔려 있는 LP를 ‘힙’하게 느낀다. 아날로그 음악을 찾는 ‘젊은 세대’에게 LP는 새로운 음악 감상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Q.그동안의 실적과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A 지금까지 약 150장의 앨범을 제작했다. 직접 기획해 제작한 앨범 중에서는 ‘빛과 소금’ 1집이 약 3000장 가까이 팔려 나가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임가공 음반은 백예린 정규 1집이 총 1만5000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LP 인기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만큼 올해는 새로운 장르의 앨범도 내놓는다. 이미 올해 3월 ‘패닉’ 1집과 조수미 ‘Only Love’ 앨범을 발매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성장이 빨라지는 분위기에 발맞춰 음반 제작 자동화 공정을 갖춘 공장으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코넥스 상장을 통한 추가 투자 유치도 계획 중이다.
[반진욱 기자 half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9호 (2021.05.19~2021.05.25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