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文,어설픈 당주도론,노선투쟁..산으로 가는 부동산

강태화 2021. 5. 1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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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5년차의 부동산 정책이 춤을 추고 있다. 4·7 재·보선 여권 참패의 원인이 됐던 부동산 문제지만, 한 달이 넘도록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4주년 연설에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보궐선거에서 아주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투기 억제 목적 때문에 실수요자가 집을 사는데 어려움이 되는 부분들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부동산 정책 관련 논의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 기조는 유지한다”는 가이드라인도 함께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김진표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특위 1차회의에서 머리를 맞댄 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실수요자가 집 사는데 어려운 부분은 조정, 하지만 기조는 유지'란 문 대통령의 모호한 가이드라인, 여기에 지난 2일 전당대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접수한 송영길 대표의 '당 중심의 정책 주도' 노선이 끼어들고, 엉뚱하게도 당 내 노선투쟁적인 성격까지 가미되면서 부동산 정책 논의가 산으로 가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관련 세제 개편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한도를 풀어주는 금융규제 완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송영길 대표와 김진표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소위 당내 '신(新)주류'는 종부세ㆍ양도세ㆍ재산세ㆍ취득세ㆍ금융규제를 모두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반면 친문(親文) 중심의 강경파는 이러한 움직임을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고 있다.

18일엔 ‘투톱’인 대표와 원내대표부터 맞붙었다. 송 대표는 지난 12일 부동산특위 첫 회의에서 “당장 재산세와 양도세가 시급하다”며 규제 완화를 주문했다.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90%까지 풀어 주는 방안도 내놨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그러자 친문 핵심인 윤호중 원내대표는 18일 “양도세 중과를 유예했던 이유가 다주택자의 매도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효과가 없었다”며 규제 완화에 반대했다. 윤 원내대표의 발언과 관련해 당 내에선 "송 대표의 완화론에 불만을 갖고 있는 청와대와 당내 친문파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에 앞서 '친문'인사인 강병원 최고위원도 전날(17일) 송 대표의 면전에서 “부자들 세금을 깎아 주기 위한 특위가 아니길 바란다”며 김진표 특위를 직격하기도 했다.

이같은 논란 속에서 김진표 위원장은 18일 비공개로 부동산 특위 회의를 열었다. 회의를 마친 김 위원장은 “다양한 의견을 듣는 과정이라 오늘도 드릴 말씀이 없다”며 “결정된 것 없이 의견을 듣는데 한 부분만 얘기하면 정책에 혼선만 야기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안건이 무엇이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위원장이 "부동산 정책이 안건이었다"고 답하는 허무개그 수준의 대화도 오갔다.

여당이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진 상태에서 나온 정부의 메시지도 혼선에 일조하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집값이 오른 것은 어떤 형태이든 불로소득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환원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 제 생각”이라며 종부세 기준 완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1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김 총리는 이어 “(완화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나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집값을 조금씩 안정시키고자 하는 정책 목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종부세 부과기준을 올리면)정부의 정책을 믿고 기다려왔던 분들은 거꾸로 여러 가지 피해를 보게 된다”고 했다.

그는 전날 한 방송에 출연해 “장기 1주택 보유자들을 위한 종부세 과세이연 제도와 고령ㆍ은퇴자들에 대한 탄력적 세율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을 놓고 "종부세 기준을 완화하려는 모양"이란 해석이 나왔는데 이날은 또 뉘앙스가 달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김 총리 취임 후 첫 주례 오찬 회동에선 “부동산 대책과 관련 다양한 의견을 듣고 숙고하여 결정하되,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기본적인 원칙은 조속히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10일 서울시내 한 부동산에서 관계자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 연설 관련 방송을 보고 있다.연합뉴


여권 내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김 총리와의 회동에서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면서도 이를 공개하지 않아 혼란을 키우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여권 내부의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관련 당부를 했다는 것은 부동산 정책 관련된 논의가 있었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도 “하지만 당에서 의견을 모아올 때까지 구체적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방미를 앞두고 홍남기 경제부총리로부터 경제 현안을 보고 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표 성과는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 되리라 생각한다”며 “홍 부총리를 중심으로 전 부처가 신념을 가지고 매진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박경미 대변인 명의의 서면브리핑에는 부동산 관련 사안은 한마디도 없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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