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주식·코인..월급시대 가고 투자시대가 왔다
지난해 최초로 투자 성공궤적 경험
소득 높이려면 "승진보다는 투자" 인식 변화
직장인 박모(34)씨는 요즘 운전할 때마다 경제 전문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퇴근 후에는 1~2시간을 경제 뉴스를 읽는 데 할애한다. 박씨는 지난해 코로나19 하락장 때 본격적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는데 점차 비중이 늘어 현재 순자산의 50%가 주식에 들어가있다. 2년 전에는 유료 주식투자 스터디 모임도 가입했다. 박씨는 “재테크 최종 목표인 ‘내 집 마련’을 이루려면 이젠 한시도 허투루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치솟은 집값, 자산과 소득 격차 심화로 재테크는 더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비해 가계의 자산 포트폴리오 중 금융 상품 투자 비중이 월등히 낮았던 한국에서도 ‘투자 지향적 패러다임’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렇게 살다간 벼락거지를 못면한다’는 2030세대의 박탈감, 자녀에게 집한채 사주기는커녕 까딱하단 자녀들이 아랫극단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기성세대의 인식 전환이 맞물리면서 ‘일상 재테크’ 시대가 뿌리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직장인 이모(27)씨는 3년 전 비트코인 투자로 큰 손실을 본뒤 자본시장을 이탈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유동성 장세에 너도나도 주식에 뛰어들자 “뒤쳐질 수 없다”는 마음에 주식에 진입했다. “주식으로도 안정적으로 자산을 늘릴 수 있다”는 유튜브 투자전문가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씨는 “개별 종목은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는 말에 일단 안정적으로 수익이 난다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했다”며 “현재 수익률은 미미하지만 장기적으로 복리 효과를 누리다보면 끝은 창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 강모(56)씨는 6개월 전만 해도 ‘주식하면 패가망신’ 신념이 있었다. 10여년 전 ‘묻지마 펀드’에 가입했다가 원금이 반토막 난 아픈 기억도 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초 “남들 다 넣는 삼성전자는 사보지 그래”라는 지인 권유로 소액을 주식에 넣었다. 조금씩 수익이 나자 재테크 서적을 섭렵하더니, 이젠 거실 TV로 유튜브 시황 방송을 보는 게 중요한 하루 일과다. 회사원 조모(59)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1990년대 투자에 실패한 지인들을 보면서 주식을 외면했다. 예·적금만 넣었고 투자보단 부동산 대출 상환이 더 급선무였다. 그러나 지난해 불어닥친 코로나19 변동장과 ‘동학개미운동’ 등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노후자금용으로 미국 나스닥 종목과 ETF에 조금씩 투자를 시작했다. 그는 “노후 대비 차원에서 5~10년 정도는 묵혀놓을 생각”이라며 “자녀들에게 더 일찍 재테크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걸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최준철 브이아이피자산운용 대표는 “지난해는 국민들이 삼성전자 등 대형주 투자로 사실상 최초로 성공 궤적을 경험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나는 구제금융(IMF)과 9·11테러를 때도 계속 주식을 샀기에 지금 성공할 수 있었다. 만날 ‘다시 기회가 오면 나도 해야지’하면서도 실제 하는 사람을 거의 못봤다”며 “그런데 유일하게 전체가 맞춰서 움직였던 해가 바로 지난해였다. 집단지성이 한번에 액션으로 옮겨졌다. 수차례 바라보며 알게됐던 걸 농축해서 한방에 국민들이 쓴거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투자 성공요인은 그 대상이 삼성전자라는 점이다. 최 대표는 “삼성전자를 두고 ‘경영을 잘한다’ ‘믿을만하다’는 판단이 수년간 학습돼있다”며 “집단지성이 삼성전자를 선택한 건 나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는 “올해부터는 그런 기회가 (오기 어렵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여기서부터 실력 차이가 나오는 것”이라며 “고만고만한 시장으로 갈 때는 누가 더 안목을 갖추느냐에 차이가 난다. 이젠 좋은 성공 경험을 쌓았으니 ‘좋은 회사에 투자하면 되는 구나’ ‘종잣돈이 불어났으니 여기서 한번 조금 더 내가 지식을 쌓아서 해보자’라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득을 유의미하게 늘리기 위해선 업무 능력 증진보다 금융 투자가 빠르다는 인식은 이미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 설문조사(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응답자 중 32.9%가 소득 향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주식·부동산 등 재테크’를 꼽았다. ‘업무 역량 강화 및 승진’이라고 답한 사람은 14.9%에 그쳤다. 자산양극화 시대에 근로소득을 향한 솔직한 시선이다. 유망한 재테크 수단으로는 부동산과 주식이 각각 30.1%, 28.4%로 1,2위를 차지했다. 예·적금은 6.8%로 암호화폐(6.1%)와 비슷했다.
가계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 투자 비중도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전체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투자펀드 비중은 21.8%로 전년(18.1%)보다 상승했다. 국민의 금융지식도 한때 ‘금융 문맹’ 수준에서 벗어나고 있다. 한국은행·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만 18~79세)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6.8점(100점 만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0개국 평균(62점)을 웃돌았다. 전년(62.2점)보다 4.6점 올랐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국내 주식 열풍은 구조적으로 저성장·저금리 시대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시대에서 자산 증식의 필요성을 알려줬다”며 “기업 입장에서도 기업공개(IPO)등으로 흘러가는 자금이 늘면서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지난해 주식시장을 계기로 투자자들은 좋은 기업 주식을 장기간 갖고 있으면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걸 깨달았고, 주식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조민아 김지훈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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