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스쿨푸드로 주나요" 묻던 알바생, 800억 매출 CEO 됐다
“밥은 스쿨푸드 주시는 거예요?” 지난 2004년 지인에게서 5일짜리 스쿨푸드 아르바이트를 제의받은 학생의 첫 마디였다. 그렇게 좋아하던 스쿨푸드 음식을 먹으려고, 인천 집에서 서울 강남구 신사동까지 3시간을 오가며 일을 시작한 알바생은 15년 만에 매출 800억원(직가맹점 판매 매출 기준)의 외식 프랜차이즈의 어엿한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이양열(35) ㈜SF이노베이션 대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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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만 더” 하다…가맹사업 하러 왕십리 회계학원까지
이 대표는 고3이던 2004년 강남 친구 집에서 스쿨푸드를 처음 먹어본 그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배달 음식이라곤 자장면·피자밖에 없었는데 계란에 말린 김밥과 혀가 에릴 정도로 매운 떡볶이를 배달해준다니(당시 매운 떡볶이는 흔치 않았다) 이런 음식이 배달되는 동네에 살고 싶었죠.” 2002년 논현동 단칸방(스쿨푸드 딜리버리 1호점)에서 시작한 스쿨푸드는 당시 매장 없이 강남에서 배달만 했다.
스쿨푸드가 드디어 신사동에 첫 매장(가로수길점)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단숨에 ‘영동호텔 맞은편 길’(현 가로수길, 당시 갤러리와 표구사만 늘어선 한가한 거리였다)로 달려갔다. 그러다 우연히 알바를 시작했고, 5일째 되던 날 “일주일만 더 도와주면 안 되겠니?”라는 사장님(이상윤 창업주)의 간곡한 부탁이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약속했던 일주일은 3개월이 됐고, 그사이 대학(명지전문대 부동산경영학과)까지 졸업했다.
가게는 무섭게 성장했다. 알바 당시 하루 200만~250만원이던 매출은 며칠 뒤 300만원을 찍더니 일주일 새 400만, 500만원을 찍었다. 일도 몰아쳤다. 전화 주문을 받아 주방에 전달하고, 전표를 쓰고 배달을 보내고 마감 정산까지. 배달까지 뛰다 보니 ‘멀티’가 됐다. 창업주의 제안으로 가맹사업을 함께 준비하다가 ‘아는 게 없어’ 왕십리 회계학원을 찾아 재무회계를 배웠다. 2007년 SF이노베이션을 설립한 후엔 인사팀, 교육팀, 디자인마케팅팀, R&D팀 등 모든 조직을 손수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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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미쳤더니 강제 승진…29세엔 이사, 33세엔 대표
회사가 성장하니 일하는 재미에 빠졌다. 1년 중 설날과 추석 당일 반나절만 쉬었고, 새벽엔 야간 점검을 다녔다. 말 그대로 “일에 미쳐 있었다”. 일만 하다 보니 자꾸 강제로 승진이 됐다. 29세에 이사 직함을 달았고, 4년 만에(2019년) 33세의 나이로 대표이사가 됐다. 일하는 버릇은 요즘도 여전하다. 매일 배달 앱 리뷰를 일일이 확인하고 밤늦게까지 들어오는 전 매장의 매출 보고에 피드백을 준다. 이 대표는 “그래도 요즘엔 주말 하루는 쉬려고 한다”며 웃었다.
창업주와 사이는 각별하다. 알바생의 할머니까지 챙기는 창업주의 남다른 ‘오지랖’ 덕분에 스쿨푸드 가맹점주의 약 30%가 직원 출신이다. “주방 이모와 직접 통화하고 틈날 때마다 불쑥 매장을 다니는 습관도 다 창업주를 보고 배운 것”이란다. 그는 지금도 창업주와 만나면 서너 시간 수다를 떤다. 주로 ‘이 메뉴 괜찮을까? 저런 브랜드는 어때?’라는 일 얘기다. 이렇게 상상 속에 만든 브랜드만 300개가 넘는다. ‘분짜라붐’, ‘김 작가의 이중생활’ 등 SF이노베이션의 다른 브랜드도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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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도, 분식도 아냐…그냥 스쿨푸드”
올해 목표는 전국에 매장을 늘리면서 매장 폐점률 0%대를 기록하는 일이다. 이 대표는 ‘우리 동네엔 스쿨푸드가 없어요’란 소셜미디어 댓글에 유난히 마음이 쓰인다. 자금력이 부족한 젊은 예비창업자를 위해 인기 메뉴만 담아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배달 슬림형’(1억5000만원)과 ‘배달 미니형’(5000만원) 모델을 만들었다. “남들이 배달로 전환하면서 쓰는 체력, 우리는 처음부터 배달로 시작해서 쌓여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홍콩 사업도 확장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전 첫 딜리버리 매장을 연 데 이어 지난해 네 곳을 추가로 열었다.
올해 20년 차를 맞은 스쿨푸드의 원칙은 하나다. ‘비싸더라도 맛있게’. 이 대표 역시 ‘스쿨푸드는 맛있는데 비싸다’는 소리를 귀에 닳도록 들었다. 그래도 100g에 1만원 짜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오징어먹물’을 쓰고, 소스도 직접 만드는 일을 포기할 순 없었다. 가장 공들이는 부분도 신메뉴 개발이다. 안 팔려도 좋다. “디자인으로 맛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게 스쿨푸드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라서다. 스쿨푸드의 경쟁사는 분식 브랜드가 아니다. “스쿨푸드는 한식도, 분식도 아니에요. 그냥 스쿨푸드죠.”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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