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광우의 싫존주의] 은행 펀드 실종사건 범인은?

부광우 2021. 5. 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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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은행 창구에서 90여개에 달하는 펀드 상품이 사라졌다.

은행이 고난도 투자 상품 판매를 결정하려면 이사회 의결이 필수적이다.

은행과 운용사가 동시에 관련 상품들의 판매 중단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다.

은행들이 리스크가 큰 투자 상품을 함부로 팔아 고객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보고, 이를 사전 차단하겠다는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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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 사태 2년..금융당국 늑장 대응에 웃픈 '해프닝'
대책은 뒷전, 징계만 신속..소비자보호 진정성 의문
서울 시내의 한 은행 지점 창구 옆에 금융상품을 소개하는 팸플릿들이 진열돼 있다.ⓒ뉴시스

최근 은행 창구에서 90여개에 달하는 펀드 상품이 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없이 팔리던 펀드들이었다.


알아보니 은행들 스스로 판매를 중단하면서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봐선 이번 실종사건의 범인은 은행인 셈이다. 하지만 은행 얘기를 들어보면 사정은 다르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펀드들을 판매대에서 치워야 했다는 얘기다.


속사정은 다소 복잡하다. 금융당국은 이번 달 10일부터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본격 시행했다. 투자 위험이 큰 고난도 금융투자 상품의 판매 과정을 녹취하고, 이틀 이상의 숙려기간을 보장하도록 의무화 한 내용이다.


문제는 고난도 금융상품이 정확히 무엇인지,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에 필요한 세부 절차는 무엇인지, 투자설명서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담은 구체적 규정이 시행형과 개정안 시행 일주일전인 지난 3일에야 나왔다는 점이다. 결국 은행들로서는 1주일 안에 이 숙제들을 끝내야만 해당 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은행이 고난도 투자 상품 판매를 결정하려면 이사회 의결이 필수적이다. 그렇다고 새 규정이 나온 지 며칠 만에 승인을 낸다면 졸속 이사회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상품을 만드는 자산운용사도 당장 금융당국의 요구를 맞출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은행과 운용사가 동시에 관련 상품들의 판매 중단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다.


이번 규제는 2019년 하반기 금융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에 따른 후속 조치다. 은행들이 리스크가 큰 투자 상품을 함부로 팔아 고객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보고, 이를 사전 차단하겠다는 차원이다.


소비자보호란 대의에 반기를 들 금융인은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DLF가 논란이 된 후 대책을 준비하고 상세한 지침을 마련하기까지 2년에 달하는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금융당국의 취지에 공감이 가면서도 진정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소비자보호를 위한 대책은 지지부진했지만 은행에 대한 징계는 속전속결이었다. 금융당국은 DLF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반 년도 안된 2020년 초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에 대한 기관제재를 확정했다. 또 DLF 사태 당시 각 은행의 수장이었던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게 중징계도 결정했다.


잘못한 이에겐 응당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그러나 금융당국에게 철퇴를 쥐어 준 명분은 어디까지나 소비자보호에 있다. 투자자를 위한 대안 마련에는 늑장을 부리면서 징계권을 휘두르는 데만 열을 올리는 금융당국엔 박수를 보낼 수 없다.


최근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를 두고 다시 금융권을 옥죄고 있는 금융당국이 계속해 구태를 반복한다면, 다음에 철퇴가 향하는 곳은 자신들일지 모른다.

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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