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엔 고발까지.. 그가 또 '광주영화' 택한 까닭

성하훈 2021. 5. 18.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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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국 감독의 <아들의 이름으로> .. 공동투자자로 나선 안성기-윤유선도 눈길

[성하훈 기자]

 1991년 3월 1일 개봉한 <부활의 노래>
ⓒ 이정국 감독 제공
 
이정국 감독의 첫 장편은 <부활의 노래>는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1980년 5월 이후 제작된 첫 상업영화라는 의미가 있었다. 1991년 3월 개봉했으나 여전히 군사독재가 이어지던 시기라 표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100분 분량의 상영시간에서 25분이 잘려나갔다. 당시 검열기관이었던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결과표에는 '공청회장면', '횃불시위장면', '데모학생 및 군인장면', '총격전 장면' 등의 화면 삭제가 제한사항으로 기록됐다.

화면뿐만 아니라 대사도 삭제 대상이었다. "우린 할 수 있어. 아니 해야만 해.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빌빌거리고 살라 그러지? 한쪽 다리가 없는 대신 우린 목발이 있고, 멀쩡한 두 손이 있고 두 눈과 입이 있어"라는 대사도 삭제하라고 했다.

검열기관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개봉에 앞서 대학가에서 시사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고발까지 했다. 당시 정치권에서 문제제기를 하면서 재심의를 받아 삭제 분량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광주의 비극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부활의 노래> 이후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든 이정국 감독이 다시 5월 광주 영화로 돌아왔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해남의 한 섬에서 전경으로 복무했던 감독은 부식을 사러 간 목포에서 시위대를 만났으나 광주의 실상은 옆 초소에 면회 왔던 전남대병원의 간호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계속 감독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것이다.

30년 만에 만든 두 번째 광주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한 장면
ⓒ 엣나인필름
 
<아들의 이름으로>는 이정국 감독이 긴 세월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80년 5월 광주에 바치는 두 번째 작품이다. 30년이 흘렀지만 <부활의 노래>처럼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 어렵게 제작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두 작품 모두 비슷하지만 <아들의 이름으로>는 광주시민들의 도움과 배우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부활의 노래>가 80년 5월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과 야학 교사로 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싸운 윤상원 등을 형상화했다면, <아들의 이름으로>는 당시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공수부대 군인에 초점을 맞췄다. 

가해자의 일원인 군인들도 당시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안고 사는 이들 중 하나다. 자신이 자행한 학살을 부인하고 싶고, 기억하고 싶지 않아 한다. 대신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린 상급자들에 대한 원망은 남아 있다. 반면 평범한 시민들과 진압에 나선 병사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안겨준 학살의 책임자들은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아들의 이름으로>는 30년 전 아쉬움을 해소하려는 듯 몇몇 장면에서 <부활의 노래>를 자료 화면과 소품 등으로 사용하며 지난 시간을 잇는다. 박관현과 윤상원에 대한 추모 한편으로, 오래전 영화에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허전함과 아쉬움을 상기하려는 도구로 보인다. 

영화가 강조하는 건 가해자는 발 뻗고 잘지 몰라도 피해자는 영원히 그 아픔을 간직하고 고통 속에 살아간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는 아픔과 상처에 대해 아예 입을 굳게 다물고 세상과 단절하려고 한다. 그 한이 해소될 때 비로소 말문이 트이게 된다.

자식이나 형제를 잃은 고통으로 긴 시간 정신적 방황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아픔을 제대로 해소해줄 수 있는 속 깊은 위로가 필요하다. 그래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가해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들의 이름으로>가 지향하는 것은 일종의 씻김굿이다.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당시 진압 공수부대 군인을 내세웠다. 크나큰 아픔을 주고도 반성 없이 안락을 즐기는 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의를 보여줘야 한다는 감독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배우 안성기의 힘
 
 <아들의 이름으로> 한 장면
ⓒ 엣나인필름
 
저예산으로 제작됐으나 영화적 묵직함이 느껴지는 건 안성기 배우의 빼어난 연기력 때문이다. 안성기의, 안성기에 의한, 안성기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주연배우의 힘이 절대적이다. 안성기라는 걸출한 배우의 연기 덕분에 <아들의 이름으로>는 광주의, 광주에 의한, 광주시민들을 위해 영화가 됐다.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휴대폰 카메라를 바라본 채 말하는 부분이다. 영화의 백미로 결연함과 비장한 기운이 가득하다. 열악한 촬영환경 속에서도 출연료를 받지 않고 도리어 제작비를 투자한 배우의 뚝심과 의지가 와 닿는다.

<화려한 휴가>에 출연한 이후 두 번째 광주영화지만 41년 전 비극을 바라보는 안성기 배우의 시선과 마음가짐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갈 만큼 도드라진다. 책임자들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연기로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윤유선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을 얻어 목숨을 잃은 고 황유미씨의 사연을 모티브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도 출연했던 윤 배우는 안성기와 함께 공동투자자로 이름을 올리며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개봉을 앞두고 "기성세대가 미처 해결 못 한 역사를 알아가면서 함께 해결해갔으면 좋겠다"고 한 바람을 연기에 오롯이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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