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 칼럼] 친문의 섬, 호남의 섬

데스크 2021. 5. 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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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도 윤석열도 광주.. 광주는 5월에만 있는 도시인가?
여당은 그 섬에 갇히려 하지 말고 야당은 그 섬도 품어야
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김기현 국민의힘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참배를 하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요즘 언론 매체 여기저기에서 광주 얘기가 많이 나온다.


달력을 보니 5.18이다. 5월만 되면 광주다. 그전에는 4.19가 그랬다. 4월만 되면 수유리 얘기였고, 4월만 되면 학생들 동태에 당국이 긴장했다.


광주는 5월에만 존재하는 도시가 아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금남로에 가로수들이 의연히 서 있고, 사철 망월동 국립묘지에 꽃이 피고 진다. 광주를 정치인들이 어느 때나 ‘조용히’ 얘기하고, 망월동을 ‘제발’ 신문에 알리지 말고 소리 없이 다녀오는 날이 언제나 올까?


필자는 호남 사람이다. 전남 영광, 전 민주당 대표 이낙연이 나온 바닷가 초등학교 출신으로 광주에서 중·고교를 졸업했다. 5.18 이틀 전 도청 앞 명연설로 유명하고 옥중 단식으로 사망한 고(故) 박관현(호남에서는 열사로 불린다) 전남대 총학생회장도 영광 산(産)으로 이낙연보다 한 살 아래다.


광주가 이렇게 된 것은 광주(호남) 사람들이 스스로 부른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지난 정권들과 타 지역민들의 비뚤어진 시각에서 비롯된 측면이 훨씬 크다. 한때 광주는 심지어 금기어(禁忌語)였을 정도이니 그 왜곡과 냉대가 실감 나지 않는가?


그러므로 요즘 여야 의원들의 법석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다 역사의 재조명이고 나라가 성숙해지는 과정의 하나라고 봐주긴 해야 할 것이다. 여당은 호남의 섬에 더는 갇히려 하지 말고, 야당은 진정으로 호남을 품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야만 한다.


이낙연은 최근 ‘광주 구상’이라는, 느닷없는 (국민의 삶을 지켜주는) 개헌을 제안하면서 이명박, 박근혜 전직 대통령 사면론 제기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다.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려면 국민 갈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 방안의 하나로 거론했으나 국민의 뜻과 촛불의 정신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잘못을 사과드린다.”


이낙연의 4.7 보선 후 여론조사들 지지도는 10% 아래로 떨어졌다. 심하게 말하면, 경기도지사 이재명에게 밀리는 정도가 아니라 야권의 홍준표 수준으로, 군소 후보군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단계로도 보인다.


그의 추락은 무엇 때문인가? 사면론이 그를 차기 대권에서 밀어내고 있다고는 본인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정국의 고비마다 그가 확실하게 자기 목소리를 낸 적이 없고, 위로는 대통령 문재인, 밑으로는 친문 혹은 대깨문 의원과 당원들에게 바른말을 하지 못한, 무색무취(無色無臭) 지도자 면모를 보인 탓이 절대적이다.


대권은 그런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하다못해 이재명처럼 포퓰리즘 비판을 받을지언정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소신, 전투적인 기백이 충만해야 도전자 자격이라도 주어지는 것이다. 당선은 차치하고.


그런 이낙연이 사면론 발언 사과를 한 것은 한마디로 친문 패거리들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 친문에는 호남 사람들이 다수 포함된다. 친문은 4.7 보선 민심에 따라 부동산 실정 등 국민 다수가 불만인 정책 수정을 시도하는 민주당에 브레이크를 걸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


도로 친문당이 된 민주당에서 살아남는 길은 그들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이낙연은 그 친문의 섬에 스스로 유폐(幽閉)되는 길을 가고 있다. 죽는 길이다. 왜? 4.7 보선 참패 원인이 그 답이다. 친문이 일반 국민들과 괴리된 지는 오래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과 정권과 나라를 망치는 일인 줄 모르고 천방지축(天方地軸)하고 있다.


이낙연은 친문 세력 지지를 얻어 1번(집권당) 후보만 되면 지금 지지율 10% 이하야 일거에 무의미해지고 차기 대선에서 야권 단일 또는 대표 후보와 대등한 싸움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오산이다. 진보 표를 최대 30%로 볼 때, 중도 표 15%는 가져와야 당선이 가능하다. 그 중도 유권자는 친문들과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4.7 보선이 보여 준 결과다.


야권 정치인들도 광주 공들이기에 열중이다. 국민의힘 새 원내대표 김기현은 ‘친호남 아닌 핵호남’이라는 생소한(솔직히, 무슨 뜻인지 모를) 말로 호남을 껴안으려고 한다. 이 당 초선 의원들 여러 명도 광주행에 나설 예정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좋은 일이다. 그 정치적 의도를 끄집어내 굳이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여기에 야권의 현재 대표 주자 윤석열도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뜻밖에 5.18 메시지를 냈다. 5.18은 진행 중인 살아 있는 역사라는 것이다. 그는 문재인 정권의 헌법정신 파괴, 전체주의적 국가 운영 행태를 지적하고자 군부독재의 서막이었던 5.18 무력 진압과 그 후의 항쟁(물론 여기에도 무력이 동반됐지만)을 지금도 진행 중인 역사라고 말한 듯하다.


이낙연, 야당 의원들, 윤석열의 광주 껴안기에 호남 표 계산이 들어 있는 건 당연하다. 문재인 정권의 마지막 지지 계층은 40대와 호남이다. 두 개의 섬이다. 여기에서 호남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고 정치적 용어이다. 수도권에 사는 호남 출신 1~3세, 타지역 출신 배우자, 그 주변의 정치 성향이 같은 사람들 모두가 ‘호남’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상당수인 이들의 표심을 가능한 한 많이 잡지 못할 경우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호남은 평소엔 섬으로 있다가 선거철만 되면 육지로 변한다. 갑자기 고속도로가 뚫린 듯 정치인들 왕래가 부산해진다.


문제는 호남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0년 이상 지속되어 온 1980년대 호남과 2020년대 호남은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만 한다. 필자의 주변 호남 출신 수도권 거주 전·현직 전문 직업인 중 절반가량이 반(反) 문재인으로 돌아섰다.


정치인들의 구애(求愛)로 호남이 섬에서 나오게 되기를 호남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 (ksjung7245@naver.com)

데일리안 데스크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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