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국뽕을 넘어서

2021. 5. 18. 04:0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일맥상통하는 의견을 들을 때가 있다.

지면에 다 싣지 못했지만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와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교수에게 들은 MZ세대(1980~2000년대생) 얘기가 그랬다.

정치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온 말이었지만 MZ세대야말로 온라인에 넘쳐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국뽕'과 '국까' 콘텐츠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최초의 세대라는 뜻으로 들렸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일맥상통하는 의견을 들을 때가 있다. 지면에 다 싣지 못했지만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와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교수에게 들은 MZ세대(1980~2000년대생) 얘기가 그랬다.

“한국에는 두 부류가 살고 있어요. 한쪽은 후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또 한쪽은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에요. 후진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후진국의 정서, 즉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갖고 있어요. 거기에는 개인이 없죠. 586세대만 해도 이 나라는 너무 브랜드가 없었으니까 차범근이 축구를 잘하면 그게 국가와 민족의 자부심이 됐죠. 그런데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기준이 달라요. 이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나 기술강국, 문화강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윗세대와 달리 열등감이 없어요.”

“Z세대는 인류 역사상 전 지구적으로 하나의 공통된 가치관이 한꺼번에 공유되는 걸 처음 경험한 세대예요. 드라마 ‘대장금’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데 2년, 중국에서 베트남 가는 데 1년, 베트남에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는 데 2년, 거기서 에티오피아로 가는 데 또 2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넷플릭스를 통해서 같은 콘텐츠를 동시에 보잖아요. 이전에도 세계화, 국제화, 글로벌화를 말했지만 전부 구호였고, Z세대와 그 뒤의 알파세대처럼 틱톡,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가 동시에 문화적인 동질감을 갖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에요.”

정치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온 말이었지만 MZ세대야말로 온라인에 넘쳐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국뽕’과 ‘국까’ 콘텐츠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최초의 세대라는 뜻으로 들렸다. 잘 알려진 대로 국뽕(국가+히로뽕)은 한국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 맹목적인 애국주의와 맥을 같이하고, 국까(국가+까다)는 한국을 악의적으로 비하하는 행태를 가리킨다. 균형감각을 상실한 국뽕과 국까는 성숙한 자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국뽕이 본질적으로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국까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일부 학자들 해석도 수긍이 된다.

1980년대생 논객 6명이 함께 쓴 ‘추월의 시대’는 청년세대의 눈으로 한국사회를 들여다보자는 취지의 책이다. 책은 70년대생을 포함한 윗세대의 선진국에 대한 동경과 열패감이 스스로를 위축되게 했다고 진단하면서 한국은 이미 선진국에 대한 추격을 완료했으며 이제 추월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청년세대가 지금까지의 열등감과 비관론에서 벗어나 자긍심과 낙관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주도하겠다는 선언을 담았다. ‘한국의 정체성’으로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던 철학자 탁석산은 얼마 전 ‘한국적인 것은 없다’를 펴냈다. 책의 부제가 ‘국뽕 시대를 넘어서’인데, 그는 BTS와 손흥민의 성공을 한국의 자랑인 양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의 성취를 국가의 성취로 여기는 ‘왜소한 시대’의 유물이라며 국뽕을 저격했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은 ‘기생충’ 수상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 느껴졌다. 기생충이 할리우드 아성을 뚫고 마침내 한국 대중문화의 우수함을 증명한 쾌거로 보도되고 회자됐다면, 윤여정의 성공은 온전히 그의 연기와 삶, 인간적인 매력에 초점이 맞춰졌다. 기생충이 감독과 배우, 제작진의 협업 결과물인 작품상을 탄 것과 달리 개인 부문 수상인 이유가 컸겠지만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윤여정에게 “국위를 선양하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면 이런 답변이 돌아올 것 같다. “어우, 얘, 내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영화를 찍고 상을 받았니? 촌스럽게 그런 말을 하니, 증말.”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