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내가 먼저 십악을 줄이지

2021. 5. 18.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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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를 떠나 홀로 생각하며
십악을 줄여나가자, 이것이
부처님의 탄생게에 답하는 길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중생은 어떻게 선해질까? 우리들 중 누가 먼저 십악(十惡)을 줄이지? 『장아함경』의 소연경(小緣經)을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다.

붓다 당시 인도에 사성(四姓) 계급이 있었다. 제사 계급인 바라문, 통치자 크샤트리아, 상인 바이샤, 수공업자 수드라이다. 소연경에 따르면, 범부중생이 생업은 달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며, 십악을 종종 범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십악을 완전히 없앤 사문중(沙門衆)이 나타났다. 붓다는 그 선구이며, 제5의 사문중을 양성·보존하기 위해 승가를 계율로 지켰다.

십악은 살생, 도절(盜竊), 음란, 기망(欺妄), 양설(兩舌), 악구(惡口), 기어(綺語), 간탐(慳貪), 질투, 사견(邪見)이다. 도절은 훔치기, 기망은 거짓, 양설은 이간질이고, 악구는 욕설이나 문자폭탄이며, 기어는 아첨과 같고, 간탐은 인색과 탐욕이다. 사견은 인과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소연경에 담긴 중생의 타락사는 이렇다. 남녀가 정욕으로 출산하자 쌀을 축적하려는 탐욕과 상호간에 증오가 심해져 땅을 나누기로 했다. 곧 훔치기, 다툼과 폭력이 발생했다. 이에 중생들은 걱정하면서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한 사람을 골라 왕으로 세우면서, “그대가 이제 우리를 위해 평등주(平等主)가 되어, 보호해야 할 자는 보호하고(護), 꾸짖어야 할 자는 꾸짖고(責), 추방해야 할 자는 추방하시오(遣). 그러면 우리가 함께 쌀을 모아 그대에게 공급하겠소”라고 했다. 보호, 책망, 추방에서 평등의 의무를 다해야 쌀을 준다는 일종의 계약이었다.

다음은 붓다가 속한 출가 사문의 연기담이다. “때에 무리 중에 홀로(獨)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왔다. 집은 큰 걱정거리다. 집은 독한 가시다. 나는 이제 사는 집을 버리고 홀로 숲에 살면서 고요히 수도하리라”하고. 그는 산으로 들어가 사유했다. 마을로 들어가 걸식하면 사람들은 즐겨 공양하며 이렇게 찬탄했다. “착하다. 이 사람은 능히 사는 집을 버리고, 홀로 숲에 살면서 고요히 도를 닦아서 온갖 악을 버리고 떠났다.”

세월이 흘러 수도(修道)에 싫증 난 바라문은 환속하여 독송과 학습을 주로 하며 스스로 불선인(不禪人)이라 불렀다. 붓다는 바라문의 선(禪)과 수도의 전통을 되살린 분이다.

붓다는 음행(淫行)을 결박근본부정악업(結縛根本不淨惡業)이라 했다. 음행이 출가자를 결박하는 최악의 부정악업 중 하나라고 했지만, 중생은 버리기 어렵다. 작아도 내 집은 있어야 한다.

살인은 국가 통치력이 강화되면서 점점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탐욕, 무지, 거짓, 음란 등은 지금도 흔하니, 국민도 시민도 대개 중생이다.

십악과 그것이 만든 고해(苦海)는 중생의 운명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단정한 사람을 통치자로 세우고, 보호, 책망, 추방의 공평한 시행을 위임한다. 두 가지 조건이 필수다. 첫째, 통치자는 십악에서 멀어져야 한다. 둘째, 삼권분립이 작동해야 한다. 전제정치를 막기 위해서다.

현 정권은 과욕을 부려 역사와 시장을 장악하려고 했다. 적폐청산 4년의 가장 아픈 후과는 다툼을 격화시킨 일이다. 적폐청산이 반복될까 두렵다. 부동산 시장에서 실패한 것은 현장을 몰라서다. 둘 다 인과관계에 대한 무지의 결과다. 독재치하에서 함석헌 선생은 종종 노자의 “천하(天下)는 신기(神器)라 불가위야(不可爲也)”를 말했다. 천하는 신비로우니 사람의 생각과 재주로 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전집』 20) 이 말을 뼈에 새겨 대통령은 소통하고, 여당 국회의원은 각자가 헌법기관임을 깨달아 수시로 무리(衆)를 떠나고,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라.

신문과 방송도 조심해야 한다. 필자는 TBS eFM의 프로그램 K Ride를 종종 듣는다. 중간에 공익광고가 나온다. 3월에 들은 한 공익광고는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를 소재로 삼아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려고 했다. 독립문은 조선이 청의 정치적 간섭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서재필의 주도로 건립되었다. 하지만 이 광고는 중국을 특정하지 않았다. 서대문형무소, 유관순 열사의 언급과 함께 함성도 나오고, 일제하 저항을 기린다. 중국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시간적 제약 때문이라고 담당자는 해명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공영방송이 일부러 가짜뉴스를 생산한다면 그건 최악이다. 구성원 중 누가 먼저 나설까?

홀로 깊이 생각했던 한 분의 덕성으로 불교는 존재한다. 과거의 십악을 다 들추는 것은 아프다. 하지만 ‘내가 먼저 십악을 줄이지’하고 결심하지 않으시려나. 부처님의 탄생게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고요히 사유하면서.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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