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의 인물열전] 독립운동의 선구 예관 신규식 평전] 황성신문에 논설 기고

김삼웅 2021. 5. 1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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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말 구국언론의 역할을 해오던 『황성신문』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장지연의 시일야 방성대곡(오늘을 목놓아 운다)의 논설을 통해 일제 침략을 통렬히 폭로했다.

신규식은 1908년 1월 9일자 논설란에 신년 신문이란 기고문을 통해 신문의 중요성을 일깨우면서 경영의 어려운 여건 속에 시달리는 기자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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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회] 독자들에게 이 신문을 살리자고 호소한다

[김삼웅 기자]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皇城新聞)>에 장지연이 쓴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아래 칸에는 ‘5조약청체전말(五條約請締顚末)’이라는 제목으로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 과정을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 나무위키
 
한말 구국언론의 역할을 해오던 『황성신문』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장지연의 「시일야 방성대곡」(오늘을 목놓아 운다)의 논설을 통해 일제 침략을 통렬히 폭로했다. 통감부가 이를 트집잡아 갖은 탄압을 저질러 신문이 폐간의 위기에 놓였다. 

신규식은 1908년 1월 9일자 논설란에 「신년 신문」이란 기고문을 통해 신문의 중요성을 일깨우면서 경영의 어려운 여건 속에 시달리는 기자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 신문을 살리자고 호소한다. 논설 중 두 대목을 소개한다. 

지금 유럽과 아시아의 이른바 열강들은 신문의 발달로 문명의 선구(先驅)되지 않음이 없는데, 미국과 독일이 가장 많고 영국과 프랑스가 그 다음이다. 그러나 우리 동방은 예의 문물로 곧잘 일컬어지고 있지만, 신문사에 이르러서는 적막강산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로다.

다행히도 황성신문사를 창립하니, 봄날 천둥소리에 잠자던 것들이 모두 일어난 듯함이라. 정대한 의를 논하고 삼엄한 붓을 들어 내외ㆍ원근ㆍ거세ㆍ대소의 일들과 사람들의 권징(勸懲)ㆍ억양(抑揚)ㆍ시비(是非)ㆍ훼예(毁譽)를 널리 탐색하여 신속히 알리고, 공(公)과 실(實)에 근거하여 벼슬아치와 양반들, 하인과 아녀자들이 이로 말미암아 계몽되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하고 일당백(一當百), 적은 수효로 많은 수효를 대적한단(寡敵衆) 말이 어찌 오늘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겠는가. 

저(규식) 역시 귀지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이 남에게 뒤지지 않아 구독 10년 동안 차라리 하루 끼니를 먹지 않을지언정 하루도 안 읽을 수 없었으니, 나 같은 비천함과 우둔함으로도 느낄 수 있으니, 귀관(貴館)의 은혜가 그 또한 크지 않았겠습니까. 

근래에 귀관에서 날마다 게고(揭告)한 글 열람하자니, 나도 모르게 크게 고함치고 이어 장탄식을 하였도다. 신문을 창간하는 일이 어찌 작은 이익을 꾀하기 위함이겠습니까. 큰 발분에서 나온 것이기에 이러쿵저러쿵 논쟁이 자자한 것은 전적으로 미몽을 각성시키고자 하는 것이지 단연코 다른 뜻이 아닐 것이다.

지묵비, 인쇄비, 우편료 및 제반 재정의 경우에는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는 것이 아닌즉, 그 대금을 취하여야만 경비를 보충해서 겨우 정간과 폐간을 모면할 수 있거늘, 어찌 대금의 적체가 이다지도 심한가. 이런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고하니, 외인(外人)들에게는 듣지 못하게 할 것이요, 우리 동포에게 바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귀관의 고심과 지성을 저버리는 일은 논할 것도 없거니와, 또한 해외에 살고 있는 형제들에게도 부끄럽지 않기를 바람에서입니다. 저 수만 리 이역의 외로운 발자취로도 4천년 조국을 잊지 않고 힘든 노동으로 얻은 작은 푼돈으로, 추운 몸 실오리 걸치고 굶주린 배 곡기로 채울 생각 할 겨를 없이 신문사를 설립하고 학교를 세워 서로 계몽하였으며, 의연금을 내지(內地)의 각 신문사에 기부하기에 이르렀으니, 충애의 정성과 단결심이 어찌 이와 같을까? 

우리 내지에서는 사람마다 자금을 갹출해서 기부하여 곳곳에서 신문을 발간하고 학교를 설립한다는 것은 따라갈 수도 없는 일이어니와, 어찌하여 이미 발간한 신문을, 구독하고 대금을 연체하고, 한 번도 눈에 대지조차 않는 사람들이 많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이 한 가닥을 영원히 끊어지게 하려 하니 이는 진실로 무슨 마음인고, 재삼 생각해도 이런 이치는 만무한지라, 구독하는 동포가 모두 타고난 애독자이니 어찌 대가를 아까워하여 마련할 마음이 없었으리오. (주석 2)

주석
2> 『전집②』, 1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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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독립운동의 선구 예관 신규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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