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브람스', 전문가는 찡그리고 관객은 감동했다

장지영 2021. 5. 1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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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과 브람스의 가곡으로 만든 주크박스 오페라.. 창작오페라에 새로운 전기
브람스와 슈만의 가곡으로 만든 국립오페라단의 신작 '브람스'. 국립오페라단 제공

코로나19로 공연예술 장르 전체가 위기다. 굳이 위급 정도를 따지자면 오페라는 여러 장르 가운데 가장 앞자리를 다툰다. 장르의 특성상 작품 한 편당 높은 제작비가 들면서도 장기공연이 어려워 티켓값을 낮추기 어려운 오페라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위기였다.

오페라의 뿌리가 깊지 않은 한국은 더욱 심각하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가 2018년도를 조사한 ‘2019 공연예술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시장의 규모는 약 8232억, 이 중 티켓 판매 비중은 3917억 원으로 추정됐다. 그리고 티켓 판매액 가운데 뮤지컬이 64.1%인 2511억원으로 압도적인 1위에 올라 있고, 오페라는 59억 원으로 1.5%에 그치며 최하위에 머물렀다. 예경이 2019년 6월 25일부터 공연예술통합 전산망을 운영하면서 보다 정확한 수치가 집계되기 시작했는데, 그해 하반기 티켓 판매액이 1940억 원(연간은 5276억 원 추정)이다. 이중 뮤지컬은 1390억 원, 오페라는 32억 원으로 각각 71.6%와 1.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인 2020년을 보면 전체 매출액은 1303억 원으로 줄었지만, 뮤지컬 쏠림은 증가해 83.5%나 된다.

젊은 층에게 공감 얻지 못하는 오페라의 위기

장르의 형식만이 아니라 내용 면에서 오페라가 젊은 층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전통적인 오페라가 담고 있는 가부장적인 가치관과 감상적인 스토리가 지루하기 때문이다. 특히 젠더 관점에서 여성 캐릭터를 남성의 구원자 또는 희생양, 아니면 팜므파탈 등 단선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20세기 후반부터 계속되는 이어지는 위기 속에서 전 세계 오페라계는 충성도 높던 관객의 고령화에 맞부딪힌 후 젊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젊은 관객을 개발하고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뮤지컬을 오페라단(극장) 레퍼토리에 포함하는 것이다.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와 뉴욕 시티 오페라가 1984년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스위니 토드’를 공연한 뒤 뮤지컬을 레퍼토리로 하는 오페라단이 늘었다. 특히 영미권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며 손드하임, 거슈윈, 로저스&해머스타인 2세, 쿠르트 바일 등의 작품이 선호된다. 시카고 리릭 오페라의 경우 코로나19 이전 2018~2019시즌엔 레너드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올리는 등 점점 레퍼토리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

뮤지컬 배우들의 정통 오페라 무대 출연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미국 오페라단들은 아예 1990년대 이후 마이클 존 라키우사 등 뮤지컬 작곡가들에게 적극적으로 신작을 의뢰하고 있는데, 이런 작품에는 뮤지컬 배우들이 성악가들과 나란히 출연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는 근래 브로드웨이 최고 여배우로 꼽히는 켈리 오하라가 2년에 1번꼴로 출연하고 있다. 오하라는 2014년 출연한 오페레타 ‘메리 위도’, 2016년 바로크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 2018년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까지 점점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은 오하라의 공연은 최근 매출 부진에 시달리는 MET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의 '브람스'의 한 장면. 브람스는 슈만에게 발탁돼 음악가로서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됐지만 평생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관객의 눈높이나 가치관에 맞춰 오페라계에서는 내용과 형식에서 동시대성과 실험을 추구하는 흐름도 등장했다. 치정과 격정의 드라마가 많은 과거 오페라와 달리 현대 오페라는 인권, 추리, 공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 2016년 영국 BBC가 뽑은 위대한 현대 오페라 6편에 포함된 작곡가 제이크 헤기의 ‘데드맨 워킹’(2000년 초연) 등은 전통적인 오페라 형식을 지키면서도 현대 사회에서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다. 이들 작품은 원래 문학 작품으로 먼저 알려진 뒤 영화화 등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것이 특징이다. 아니면 로버트 윌슨 연출 ‘해변의 아인슈타인’과 장 꼭토의 무성영화에 음악을 더한 필립 글래스처럼 여러 작곡가는 기존의 형식을 부순 실험적인 스타일의 오페라를 선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작곡가들은 오페라라는 용어 대신 ‘음악극’을 선호하기도 한다.

창작오페라 ‘브람스’를 둘러싼 논쟁

최근 전 세계 오페라의 상황을 길게 이야기한 것은 국립오페라단의 신작 ‘브람스’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13~1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 ‘브람스’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관점에서 로베르토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의 관계를 다룬 작품이다. 브람스가 자신을 발탁한 슈만의 가족과 가깝게 지내면서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평생 연모한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국립오페라단의 ‘브람스’는 그동안 흔히 볼 수 있었던 오페라가 아니다. 창작이지만 슈만과 브람스의 가곡을 주로 활용한 ‘주크박스 오페라’로 이해하면 쉬울 듯하다. 뮤지컬계에서 ABBA의 노래로 만들어진 ‘맘마미아’ 같은 주크박스 뮤지컬을 연상시킨다. 앞서 국내에서도 주크박스 오페라와 비슷한 ‘오페라 콜라주’라는 이름 아래 모차르트, 도니체티 등 유명 아리아들을 뽑아서 만든 ‘카사노바 길들이기’ 같은 작품이 만들어진 바 있다. 이번에 국립오페라단이 젊은 작곡가 전예은, 뮤지컬 프로듀서 한승원과 손잡고 주크박스 오페라에 도전한 셈이다. 완성도가 높고 인기까지 있는 창작오페라가 거의 없는 한국 오페라계에서도 이제 뮤지컬 장르의 문법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뮤지컬 제작사 hj컬쳐스를 이끄는 한승원은 그동안 ‘빈센트 반 고흐’ ‘살리에르’ ‘파리넬리’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등 예술가를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을 만들어 뮤지컬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프로듀서 가운데서도 예술적인 부분에 깊이 관여하는 편인 한승원은 이번 오페라에서는 아예 대본과 연출을 직접 맡았다. 그리고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레드슈즈’로 호평받은 전예은이 작곡과 편곡을 맡았다. 슈만과 브람스의 기존 가곡 외에 기악곡을 성악곡을 활용했기 때문에 실제 창작곡은 2곡뿐이다. 2곡도 기존 브람스 음악을 모티브로 작곡함으로써 음악적인 통일성을 맞췄다. 인물들의 편지에 쓰인 구절들을 작곡가가 새로 창작한 곡의 가사에 사용한 것도 바람직했다.

'브람스'에서 브람스와 클라라의 도플갱어로 무용수들이 등장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환상 속에서 표현한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그런데, 이번 작품에 대해 관객과 오페라 전문가의 반응은 앞서 어떤 창작 오페라보다 차이가 나는 듯하다. 우선 이번 작품은 코로나19 방역 상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객석의 50%밖에 팔지 못하긴 했지만, 매진을 기록했다. 공연 전부터 브람스와 클라라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관심을 모았기 때문인데, 지난해 TV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공연 이후에도 관객의 상당수가 이 작품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노래는 독일어 가사지만 편지 읽는 것과 대사는 한국어로 처리해 관객이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며 슈만과 브람스 가곡의 아름다운 선율이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존 오페라의 틀을 깨려는 시도엔 호평을 보냈지만 ‘브람스’가 주크박스 오페라로서 캐릭터가 지나치게 평면적이면서 사랑에 대한 클리셰를 남발한다고 지적한다. 이번 작품이 근래 오페라 아리아 콘서트나 가곡 콘서트가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약간의 드라마를 추가하는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서정 오페라’라는 수식어를 달아 단순한 스토리에 대한 비판을 피하려 하지만 대사와 극적 전개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수많은 창작 오페라가 만들어졌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관객에게 사랑받은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국립오페라단이 이번 ‘브람스’를 시작으로 창작오페라 제작에 새로운 변화를 지속해서 가져올지 궁금하다. 지난 2019년 10월 취임한 박형식 국립오페라단 단장이 서울시합창단 출신이지만 정동극장,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안양아트센터, 의정부예술의전당 대표를 역임하며 오페라만이 아니라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 친숙한 것도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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