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들이 유튜브 보며 대리만족하는 마음, 이제 알겠네

오창경 2021. 5. 1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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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시골살이 도시 사람의 리얼 우렁잡기.. 이웃에 묻어가는 시골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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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경 기자]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의 삶을 지향하며 살아서 어린 시절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도시의 골목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고 술래잡기를 하기는 했지만 이사를 많이 다녀서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니 기록이 될 만한 기억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셈이다.

어쩌다 시골살이를 하게 되었지만 누군가 시골사용 설명서를 보여 준 것도 아니고 시골살이를 즐길 여유가 없기도 해서 그냥 도시의 삶과 다르지 않게 살았다. 마음은 아이들과 개울에서 물고기 잡기도 하고 싶었고 겨울이면 토끼몰이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야생의 시골 놀이도 해 본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옆에서 구경이라도 한 가락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은 몰랐다.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도시에서 친척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하여 우리 집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게임으로만 세상을 접해본 사내 아이들 세 녀석을 데리고 족대를 들고 동네 개울로 갔다. 올망졸망한 물고기들이 개울 물 속에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손만 넣어도 잡힐 것 같았다. 아이들은 물고기들을 잡아 올릴 꿈에 부풀었다. 물속을 첨벙거리고 다니면서 신나게 족대로 피라미 떼를 쫓았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도통 아이들에게 잡혀주지 않았다.

처음엔 개울에서 물장난을 하는 것으로도 즐거워했지만 피라미들이 약을 올리듯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세 녀석들은 게임보다 재미가 없다고 투덜대면서 족대를 거뒀다. 몸도 정신력도 나약한 아이들에게 추억이 될 야생체험을 하게 해주려던 계획은 시골살이 자격 미달자의 코치 때문에 실패를 했다. 마당에서 삼겹살 구워 먹고 텐트 치고 자는 캠핑 체험 외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시골 놀이를 찾지 못했다.

족대로 물고기를 잡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고 피라미의 생태를 알아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런 놀이를 하고 자란 원조 시골 사람의 자문이 필요했지만 그때는 마땅한 인맥이 없었다.

최근 우리 동네에도 퇴직을 하거나 도시살이를 끝내고 귀촌이나 귀향을 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소시적 시골에서 좀 놀아본 그들은 제대로 시골살이를 즐길 줄 알았다.

"오늘 우리집 앞 방죽에서 우렁을 한 바구니 잡았거든. 우렁 쌈장을 만들테니 상추쌈에 밥 먹으러 와요."

일치감치 사업을 접고 귀향을 한 동네 지인은 제대로 야생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우렁이요? 어디에서 우렁을 잡아요? 우렁을 먹는 것보다 우렁잡이에 저도 좀 끼워주시면 안될까요?"

시골에 살지만 한번도 우렁을 잡아본 적이 없는 나는 우렁 쌈밥보다 우렁잡기를 하고 싶었다.

"주말에 서울에서 친구들이 온다고 했어요. 그때 친구들과 같이 우렁잡이를 할 거예요. 그때 같이 하시면 돼요."

중년의 친구들의 우렁 사냥
 
▲ 우렁잡기  소년시절을 공유한 세 중년의 우렁잡기
ⓒ 오창경
 
▲ 잡아온 우렁 씻기 보호색으로 이끼와 진흙이 묻어있는 우렁을 가볍게 씻어준다음 삶는다.
ⓒ 오창경
 
주말이 기다려졌다. 직접 우렁을 잡아서 해먹는 리얼 야생의 기분을 나도 느끼고 싶었다. 시골에 살면서도 TV에 나오는 자연인들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나는 시골 속의 도시 사람이었다.

얕은 물이 고여 있는 저수지 가에는 사람 키보다 큰 갈대밭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갈대를 헤치고 들어간 곳에 물이 있었고 가장자리에 우렁이 있다고 했다. 자동차로 지나다니면서 힐끗 쳐다본 풍경 속에 우렁 서식지가 있는 줄은 몰랐다.

바지 장화를 입은 친구가 저수지로 걸어 들어갔고 한 친구는 저수지 가장자리에 쭈그리고 앉자마자 우렁이를 건져내었다. 내 눈에는 돌멩이로 보였던 것이 우렁이였다. 어느새 내가 본 우렁이 중에서 가장 큰 우렁이들이 양동이에 한가득 들어 있었다.

선뜻 저수지 물에 손을 담그기도 그렇고 신발에 진흙을 묻혀가며 우렁이를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기사를 핑계로 사진만 찍어댔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지 않은 일은 하기가 쉽지 않다.

소년 시절을 함께 보낸 중년 친구들의 우렁 사냥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논밭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에 우렁을 잡거나 민물새우 등의 반찬거리를 잡는 '수렵'에 해당하는 일은 소년들이 맡았다. 나물을 뜯는 '채취'의 일은 소녀들이 했다.
 
▲ 우렁 껍질 까기 우렁을 까는 중년들의 모습이 많이 해본 듯 익숙하다.
ⓒ 오창경
 
인류가 원시 부족이었을 때부터 해왔던 수렵, 채취, 어로 등으로 생계를 이어왔던 일을 이 중년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더 이상 생계를 위해 산과 들로 다닐 필요는 없었지만 고향 마을에서는 몸이 기억하고 있는 일이 많았다.

개인 동영상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는 소년이었던 시절 고향 마을에서 했던 놀이와 추억을 재현하며 즐기는 영상을 주로 찍는 사람이 있다. 댓글을 보면 고향을 떠나 해외에 사는 사람들이 더 열광하고 대리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로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살았던 중년들이 수렵, 채취 원시의 삶을 더 동경한다.

논 냄새가 확 풍기는 우렁 한 양동이를 물에 삶았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우렁이를 건져내었다. 다음 작업은 이쑤시개로 우렁이 살을 발라내는 일이었다. 중년의 사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야아! 우렁 각시가 이 속에서 나올 만하겠다. 엄청 크다!"
"양식하는 것들도 이렇게 큰 것들이 없는데, 뭘 먹고 이렇게 컸지?"
 
▲ 드디어 직접 잡은 우렁이로 끓인 우렁쌈밥 우렁잡기에서 우렁 쌈밥이 되기까지 전 과정의 마지막인 우렁쌈밥 상차림. 소박한 밥상이지만 다시 쓰는 그들의 시골라이프를 풍성하게 해준 밥상이었다.
ⓒ 오창경
 
정말로 우렁이들은 몇 년 묵어서 우렁각시로 변신할 것처럼 컸다. 그동안 우렁 쌈밥 식당에서 먹었던 우렁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릴 적에 엄마한테 이렇게 우렁을 잡아다 주면 반찬 거리가 생겼다고 참 좋아했는데."
"지금보다 더 바짝 졸여서 짭짤하게 강된장 끓여서 호박잎 따다가 쪄서 쌈 싸서 먹으면 진짜 맛있었지."

소년 시절을 공유한 중년 사내들의 추억담이 구수했다. 그날 함께(?) 잡았던 우렁이살은 얼마나 쫄깃하고 감칠맛이 나는지 그런 우렁이 맛을 처음 맛보았다. 시골 사람들이 우렁 된장찌개에 어떤 그리움이 있는 것처럼 말할 때마다 이해를 하지 못했던 의문이 풀렸다. 우렁 껍질 안에는 찰지고 구수한 시골의 맛과 소년들의 역사가 웅크리고 있었다.

요즘 시골마을에는 귀촌이나 귀향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다시 쓰는 시골 라이프에 묻어가는 재미에 덩달아 나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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