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양다리는 직장인도 춤추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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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수 기자]
어릴 때부터 양다리는 나쁜 거라고 배웠다. 그럴 능력도 안 되지만 한 사람만 바라봐야지, 둘 이상의 사람을 어떻게 동시에 만날 수 있냐면서. 실제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오긴 했다. 청년 시절부터 결혼을 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항상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자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양다리'의 의미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꼭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양다리'가 허용되는 것일까? 일과 삶에 있어서도 해당되는 건 아닐까? 그러고보니 '주경야독'이라는 옛말도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하는 '양다리'의 원조 격으로 보였다.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의 어느 기관으로부터 자문요청이 들어왔다. "집은 경기도지만 직장은 서울인데, 제가 적합할까요?"라고 물었다. 내게 요청을 한 담당자는 "경기도에 거주하시니 괜찮습니다"라고 흔쾌히 아무 문제 없다는 듯 얘기했다.
몇 달 후, 서울의 어느 기관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자문요청이 들어왔다. 똑같이 질문했다. "직장은 서울이지만, 집이 경기도인데 제가 적합할까요?" 역시나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경기도에 거주하지만 직장이 서울이니 괜찮다는 답변이었다. 순간 양다리의 진수를 느꼈다. 이런 것도 도덕적인 양다리구나 하면서.
이 내용을 개인 SNS에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다. "정말 좋은 양다리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등등의 댓글이 달렸다. 집이 경기도라고 서울 업무를 볼 수 없는 게 아니다. 그와 반대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이치로,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며 주 업무의 '본캐'를 갖고 있다면, 퇴근 후 혹은 주말을 이용해 '부캐'를 가질 수 있고, 때로는 '부캐'를 '본캐'만큼 성장시킬 수 있다. 이것도 엄연히 말하면 '양다리'의 범주 안에 들어갈 것 같다.
세상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예전과 달리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를 반영하듯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주 업무로는 평생을 먹고 살 수 없을 거란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더니, 최근엔 정설이 되었다.
▲ 양다리의 힘 책 양다리의 힘이 출간되었다 |
ⓒ 혜화동 |
최근 '양다리' 철학을 글로 엮어낸 책을 읽었다. 제목은 '양다리의 힘' 이다. 이 책의저자는 EBS 프로듀서인 김민태씨로, 프로듀서를 하면서 동시에 여러 책들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프로듀서이자 작가로 활동하다보니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양다리' 애찬가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서는 '양다리' 전략을 사용하되 '안전이 확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예전의 나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이 전공으로 평생을 한 우물만 파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다른 사람들이 '공무원'과 같은 다른 길을 권해도 내 시야는 이미 직진하고 있었다. 직장에 취업해 일을 하던 중에도 오직 내가 걷고 있는 길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시야는 정면만 향하고 있었다.
"인생은 넓다.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만이 길이 아니다. 다른 길도 생각해라. 많은 꿈이 있으면 많은 가능성이 생긴다. 주위에 관심을 가져라. 한 번뿐인 인생 값어치 있게 살려면 당신의 천재성을 깨워야 한다." - 97p
그래서 지금은
직장생활을 이어가며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 타이틀을 갖게 된 지는 오래됐다. 또 어떤 매체의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갖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정말 부족하지만 '글'로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 쾌감을 느낀다.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단 말인가? 사람들은 간혹 '작업치료사 이준수'보다, '시민기자 혹은 칼럼니스트 이준수'로 기억해준다.
"솔비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도 미처 몰랐던 잠재력을 발견하고 심지어 직업으로까지 연결했다. 그것도 아주 안전한 방법으로 말이다. 이만하면 적어도 자아실현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아닐까." - 82p
앞으로의 나
주위에서 버킷리스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첫 손에 꼽는 것이 있다. 바로 작가로 데뷔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꿈꿔왔던 일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왔다.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힘든 날들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그 꿈을 포기하기 싫었는지 주말마다 개인 노트에 일기 쓰듯 차곡차곡 글을 모아두고 있다.
전공을 살려 장애인의 보건의료에 관한 철학을 늘어놓는 식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의 방향과 이것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큰 괴리감으로 다가오는지 말이다. 정책과 현장의 중간 지점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글을 주로 쓰고 있다.
이런 글들을 쓰면서, 평소 내가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공부하며 새롭게 알게 되었고, 현장가의 정체성과 더불어 정책가로서의 재능도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잔 근육들이 자연스레 생겨 내 주장에 탄탄한 이론적 배경이 되어주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언급한 이어령 선생님의 꿈과 가능성에 대한 충고, 솔비와 권지안의 행복한 동거 사례가 주는 교훈이 나의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안전을 확보한 안전한 전략, 앞으로 양다리의 힘을 믿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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