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기자, 탐험가.. 이 학교에선 무엇이든 다 됩니다

이민희 2021. 5. 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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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마을학교 이야기 3] 마을과 학교가 손 잡고 만드는 마을교육과정 이야기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위험 한 가운데 놓인 농촌의 현실이 위태롭습니다. 마을교육공동체를 통해 농촌의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교육은 지역 재생 발전의 핵심 요인입니다. 지역의 교육이 살아야 지역의 삶은 희망을 꿈꿀 수 있습니다. 현장 '활동가'의 눈으로 그려낸마을교육공동체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깨움 마을학교'의 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이민희 기자]

'와글와글 묘량 이야기'. 아이들이 만드는 '마을신문' 제호다. 묘량중앙초등학교 6학년 학생 10명이 마을신문기자로 활동한다. 난생처음 만들어보는 신문의 제호는 전교생 스티커 투표로 결정했다. 신문의 개념, 기자의 역할, 신문제작 이론, 취재활동론, 기사작성론, 사진촬영법 등 이론 교육도 받았다. 

"어떤 기자가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아이들은 재기발랄하게 대답했다. '똑똑한 기자' '거짓말하지 않는 기자' '똑부러진 기자' '발빠른 기자' '씩씩한 기자' '솔직한 기자' '정보수집왕 기자'. 마음속에 저마다의 '기자상'을 품었다. 한 손에 취재 수첩을 들고 본격적인 출동 준비를 마쳤다. 작은 시골 마을 최초의 신문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손끝에서, 발바닥에서 탄생하게 될 것이다. 
 
▲ 어린 농부들의 농사 이야기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만드는 '어린이농부학교'.
ⓒ 이민희
 
4학년 학생들은 '어린이 농부학교'에서 첫 수확을 했다. 직접 키운 청경채가 제법 자랐다. '희망농장'의 작물들이 커갈수록 아이들의 손끝도 여물어간다. 아이들은 흙을 밟으며 농작물을 심고 가꾸면서 '나는 자연과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수확한 청경채는 각 가정의 저녁 밥상에 올랐다. 이날 밥상머리의 이야깃거리는 농부학교였다.  

5학년은 산으로, 습지로 동네를 누볐다. 철쭉꽃이 만발한 장암산에 올랐다. 산의 정령들이 아이들을 맞이했다. 꽃향기 머금은 바람이 인사를 건넨다. 소나무 편백나무 빽빽한 숲이 넉넉하게 아이들을 품는다. 숲속과학교실에서 생태밧줄놀이를 하고 나무 그늘 아래서 도시락을 먹으며 꽉 찬 하루를 보냈다. 마을 습지 탐사도 나갔다. 습지 식물과 동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다 보니 시간이 모자라다. 아이들은 동네 숲과 습지가 기후위기 시대의 파수꾼 역할을 한다는 것도 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간 '마을' 

아이들이 자주 학교 담장을 넘어야 한다. 더 많은 아이들이 더 자주 학교 밖에서 배우고 뛰어놀았으면 좋겠다. 그 기회와 여건을 만들기 위해 '묘량마을교육과정'을 계획했다. 깨움마을학교와 묘량중앙초등학교 협업의 결과다. 

올해 7년차인 '깨움마을학교'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연중 운영한다. 저녁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한 동아리 활동, 마을 교육 프로그램 활동을 해 왔다. 아이들이 입시경쟁체제의 희생자가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받는 인격체로, 마을의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 마을학교를 만들어왔다. 

해를 거듭할수록 고민이 생겼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 수업과 프로그램 활동으로 보낸다. 그것도 모자라 하교 이후 학원에 가기도 한다. 대한민국 학교 교육 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놀 시간, 쉴 시간, 잘 시간, 생각할 시간을 빼앗아 프로그램을 욱여넣었다. 시간을 빼앗았다는 것은 '권리'를 빼앗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놀 권리, 쉴 권리, 잘 권리, 생각할 권리, 행복할 권리. 그래놓고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모순이고 비극이다. 

어른들이 만든 시간표 쫓아가느라 바쁜 아이들에게 '마을학교'마저 프로그램을 보태야 할까? 우리는 '마을학교 프로그램 자체를 마을교육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마을학교 활동이 프로그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마을교육과정이라고 부르든, 방과후 프로그램이라고 하든, 아니면 그냥 학교 교육이라고 부르든 간에 상관없었다. 내용만 정해지면 자연스럽게 형식은 꼴을 갖추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마을교육공동체' 안에서 학교와 마을이 '따로국밥'으로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마을 교육이 학교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교육과 결합하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마을 교육은 사변적으로 흐르거나 일회성 체험 활동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다양하게 어울려 부담 없이 참여하므로 마을교육과정은 보편성과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다. 

마을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공동체
 
▲ 산으로, 습지로! '마을생태과학교실'에서 놀며 탐험하며 배우는 아이들
ⓒ 이민희
 
학교의 '상'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현 학교 체제는 자본주의 초기 대량생산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근대의 산물이다. 화석연료의 종말과 제로 성장의 시대,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예측불가능한 생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역량을 기를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산업화 시대 필요한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 성적으로 가치를 측정하고 점수로 서열을 매기는 방식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시대 흐름에 조응해 교육과정을 혁신하고 교실의 풍경이 달라져야 한다.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교육과정이 아니라, 개별화되고 삶에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교과서라는 형식에 갇히지 말고 자율적으로 배움의 내용을 구성해나가야 한다. 이는 지역사회와 결합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과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추상적이다. 이 관념의 언어가 현실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어야 할까? 아이를 '키운다'라는 관점이 아니라 아이가 '성장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해보자. 학교가 마을과 괴리된 섬으로 존재하고, 마을이 학교에 무관심하다면 반쪽짜리다. 학교 뿐만 아니라 온 마을이 모두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터전이어야 한다. 이것이 배움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다. 

배움이 지역사회로 확장되려면 학교와 마을의 상시적인 협력구조가 작동해야 한다. 우리 지역의 아이들을 우리 지역 안에서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 토론한다. 지역 교육의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계획한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교육의 목표, 내용, 방법의 체계를 세운다면 그것이 곧 '마을교육과정'이다. 

묘량마을교육과정은 참여하는 아이들, 학교 교사, 마을 교사, 동네 어르신들, 학부모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협동의 예술이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아니다.

생전 호미 한번 잡아보지 못한 학교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농사지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알았다. 마을 교사는 학교 선생님과의 협업을 통해 마을교육콘텐츠의 내용적 수준을 보완하며 혁신해나간다. 어르신들도, 학부모들도 참여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새로운 배움의 가치를 마을교육을 통해 알아간다. 

마을교육은 수평적인 배움의 네트워크다. 학교와 마을이 관계망을 촘촘히 엮여나간다면, 마을교육과정은 매우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발현된다. 그런 관계망, 학습과 성장의 생태계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배움은 삶이 된다. 마을 안에서 좌충우돌하며 겪어낸 경험들이 이후 아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교육은 연결이다. 배움은 관계의 산물이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아이들을 어떤 관계망에서 자라게 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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