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양어깨에 저승사자가 타고 있는 응급 중환자실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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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71)
봄이다. 전공의들이 한 년 차씩 진급했다. 중환자실에도 새로운 주치의가 배정됐다. 1년간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한 주치의가 떠났고, 그 자리에는 이제 새파란 애송이가 앉아 있다. 뭘 하고 있는 건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아무튼 웃는 모습이 보기 좋은 친구다. 해마다 새로운 주치의를 맞이하다 보니, 이제 저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뻔하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니 어서 빨리 내 환자를 봐주세요.”
하지만 주치의는 며칠 만에 웃음을 잃었다. 완전히 풀이 죽었다. “아무래도 저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 봐요.” 낙담한 목소리. 그럴 만도 하다. 요 며칠 많은 환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하필 주치의가 새로 바뀐 이후에 말이다. 살려서 집으로 보낸 환자보다 죽어서 장례식장으로 보낸 환자가 많다며, 그는 홀로 자책했다. 날마다 어김없이 한 명씩 환자를 잃고 있다며 책상에 고개를 처박았다. 이번엔 내가 미소 지을 차례였다. 싱긋 웃으며 주치의에게 한마디 건넸다. “여긴 죽은 사람 살리는 곳이 아니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놓치지 않는 거로 충분해.”
그의 선배도, 그리고 그 선배의 선배도 모두 똑같았다. 지금은 저렇게 뒤통수만 긁적이고 있지만, 이곳에서 1년이 지나면 뿌리가 단단한 의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마치 의학의 진리를 통달한 마냥, 어쩌면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호기롭게 외칠지도 모르겠다. 그래. 바로 나처럼.
응급 중환자실. 여기에서 1년을 보내고 나면 어지간한 환자에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게 된다. 그도 그럴 게 응급실 환자 중 가장 심각한 환자를 모아 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죽지 않게 돌 볼 정도의 실력이 되면? 응급실에서 어떤 환자를 맞이해도 두려움이 없게 된다. 이곳에는 정말 별의별 환자가 있고, 주치의는 앞으로 1년간 그들과 동고동락하게 될 것이다.
가장 먼저는 심장마비 환자를 보게 될 것이다. 심장이 멎었으니 한번 죽었다 살아난 환자다. 당연히 성한 곳이 있을 턱이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체 전부를 통달하지 못한다면? 단 1시간도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아슬아슬 생사의 줄타기가 매분 벌어지므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몇 날 며칠 날밤을 꼬박 새울 테지만, 안타깝지만 그중 많은 수를 속수무책 잃게 될 것이다. 또 많은 수는 결국 의식 없는 식물인간이 될 텐데, 주치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난데없는 철학적 고민에 술잔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두 발로 걸어 병원을 나서는 환자가 생기다 보면, 아마도 그때엔 의사하길 잘했다는 보람도 한 번쯤은 느끼게 될 것이다.
약물중독 환자도 있다. 한꺼번에 다량의 약물을 음독해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다. 여러 편의점을 전전하며 산 진통제를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은 학생, 날마다 혈압약을 차곡차곡 모아서 한 번에 삼켜버린 노인, 잡초를 죽일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초제를 굳이 입으로 들이킨 중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자기도 모르는 새 유독 가스를 흡입한 청년까지. 죽고자 자살을 시도한 환자를 살리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주치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스로 묻게 될 것이다. 병원비도 없는 가난한 자, 목숨 걸고 일하다 쓰러진 자를 보며 마음 찢어지는 날도 많을 것이다. 경제적 이유로, 치료 효과가 좋은 약이 아니라 가격이 싼 약을 검색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의사로서 회의감이 들기도 할 것이다.
환경손상 환자도 있다. 굳게 닫힌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혼수상태로 실려 온 자, 예기치 않게 물에 빠져 폐에 공기가 아닌 물이 들이찬 자, 작열하는 더위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자, 얼어붙는 추위에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체온이 떨어진 자. 뱀에 물리고, 복어 독에 마비되고, 버섯에 취하고, 독초를 섭취하는 등등.
세상에는 정말 온갖 종류의 환자가 쉬지 않고 생겨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중 의사도 부담을 느끼고 손사래 치는 힘들고 어려운 중증 환자는 결국 응급의학과 의사의 몫이 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어느 의사도 맡지 않고 서로 미루려 하는 환자는 세상에 부지기수로 많고, 그들을 감당하는 것이 응급의학과 의사의 숙명이란 것을 체념하듯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1년이 흐를 것이다.
주치의는 여전히 울상이다. 그래도 이제 죽는 환자가 이틀에 한 명꼴로 줄었단다.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깨 아프지 않냐? 네 양어깨에 저승사자가 타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럼 어떡해요?”
“뭘 어떡해. 공부해야지.”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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