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아부 재주 많을수록 변심은 재빠르다

데스크 2021. 5.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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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모시기 절대군주 그 이상
당 대표 주자들의 윤석열 기대기
주눅 들지 않는 자기 확신 가져야
경기도 의왕 철도박물관 대통령 전용객차 휘장. @데일리안 DB

우리 정당 및 정당정치의 나이는 해방의 역사와 함께 한다. 그러니까 76세가 된 셈이다. 공자는 70세가 되니까 마음 가는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더라(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고 했다(논어, 위정편).


공자의 경우다. 일생을 통해 학문을 닦고 제자를 가르치고 치국의 도를 궁구(窮究)하던 성인이 자기 삶의 궤적을 그렇게 술회했다. 범인으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경지라고 하겠다. 한국 정당정치의 나이를 생각하다가 떠 올린 ‘공자 말씀’인데 세월이 제법 많이 흘렀다.

대통령 모시기 절대군주 그 이상

정당과 정치인들은 그간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고 경험도 많이 쌓았다. 아주 무디지 않고, 너무 우둔하지 않다면 지금쯤은 원숙해졌을 법하다. 그런데 실제 우리 정당들의 모습은 그런 기대를 너무 비켜가고 있다. 하긴 정당이 철들었다고 할 만한 상태에 이른 예는 나라 밖에서도 찾기가 어렵다. 정치란 것이 기본적으로 일방적 폭압이 아니면 경쟁·투쟁의 구조 속에서 이뤄지고 진행되는 책략의 상호작용에 불과하다(공자의 가르침과 같은 덕치德治·인치仁治는 그 때나 지금이나 실현이 무망(無望)한 이상일 뿐이다).


그래서 너무 시끄럽고 지나치게 역동적이라는 점은 이해한다고 하자. 더 못 봐 줄 것이 알랑거리며 비위를 맞추는 언행이다. 특히 집권당 구성원들이 그렇다. 대통령에 대한 무한(無限) 아부와 맹목적 충성은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간지러울 지경이다.


대통령은 군주와 아주 다르다. 그런데 집권세력 내 유력자라는 사람들의 대통령 모시기는 절대군주 그 이상이다. 야당 정치인들이나 언론들이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심리경호대가 총출동하는 양상을 보인다. 명색이 자유민주국가 집권당 소속의 정치인이 스스로 직언·반대의 권리를 반납하고 아부의 수치(羞恥)를 감내하려는 심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니 어쩌랴(그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좋겠다).


이유는 뻔하다.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그걸 지키기 위해서, 아직 발탁되지 못한 사람은 지금이라도 한 자리 얻으려고 마음에 있는지 없는지 자신도 헷갈리는 아부를, 열정적으로 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런 사람들일수록 방향전환이 신속하다. 내년 대통령이 바뀐 후에야 말할 것도 없고 여당 대선 후보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날 올 4분기 무렵이면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벌써 다른 주인에게 충성 맹세를 하느라 바쁠 터이다(‘왕좌’에 익숙했던 문 대통령 몫으로는 상실감 배신감만이 남는다).


여당 정치인들이야 누리는 것, 누리고 싶은 게 있으니 그런다 치고 야당의 유력 정치인들까지 아유(阿諛)의 재주를 뽐내고 나서는 까닭은 도대체 뭔가.

당 대표 주자들의 윤석열 기대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구지검에 3차례 근무한 인연으로 자주 만났다. 서울에서 사는 집도 같은 아파트여서 자주 봤다. 심지어 KTX에서 만나서 (윤 전 총장을) 대구지검까지 태워준 적도 있다.”(조선일보 21. 5. 16)


이름까지 소개할 필요는 없겠다. 다들 잘 알고 있는 국민의힘 소속 다선 중진의원이다.


“제가 (검사를) 사직하던 날 마지막으로 뵙고 나온 분이 윤 전 총장이다. 그때 윤 전 총장이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했다.”(조선일보 같은 기사).


초선이지만 ‘문 목장의 추·윤 결투’ 과정에서 정치적 두각을 나타냈던 같은 당 의원이다.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두 사람의 이런 말은 아부라고 하기보다는 ‘명성 편승’이라고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알랑거림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스스로 내는 빛에 자신이 없으니 남의 빛을 자기 이미지인 것처럼 받아서 반사하자는 것인데, 당 대표직을 맡겠다는 인사들이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서야.


윤 전 총장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발군의 정치 스타임에는 틀림없다. ‘그를 얻으면 정권을 탈환한다’는 인식이 국민의힘 안에 확산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렇지, “윤 전 총장하고 인연이 있으니까 나를 대표 시켜달라. 그러면 윤 전 총장을 반드시 영입하겠다”는 식의 언급을 대표 경선 출마자가 한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당의 위신까지 실추시키는 태도가 아닌가.


윤 전 총장이 개인적인 연고나 친소에 따라 정치적 입지를 정할 사람인지 부터 알아보고 말할 일이다. 만약 그런 인물이라면 기대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친구 따라 강남 갈 사람이 아닌데, 나하고 친하니까 데려올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윤 전 총장의 처신과 선택을 대단히 어렵게 하는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그건 전체 야권의 전력약화로 이어진다.


윤 전 총장은 정치의 지형과 상황을 잘 파악해서 나름대로 진로와 진입 방법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주변에서 이런 저런 의견을 제시하거나 도움말을 주는 것은 좋지만 자기 편의대로 윤 전 총장의 이미지를 재구성해버리지는 말아야 한다.

주눅 들지 않는 자기 확신 가져야

국민의힘의 입장에서도 이런 자세는 용인되기 어렵다. 제1야당으로서의 체통이 있다.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이겨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도 했다. 아무리 군색해도 그렇지, ‘윤석열 바라기’ 정당을 자처할 일인가. 윤 전 총장이 정당 및 정치세력에 대해 선택권을 가진 것처럼 국민의힘도 20대 대선 당 공천후보 결정권을 갖고 있다. 당당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한 두 사람의 예일 뿐이지만 경선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저마다 ‘윤석열 마케팅’에 나설 우려가 없지 않다. 쓴 소리는 일종의 백신이다. 주자들은 자신감 자존감으로 무장하고 자신의 빛을 더욱 밝혀 가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남의 빛에 의존하면 언제까지나 반사적 존재가 되고 만다.


중국 당나라 때 선사 마조 도일(馬祖 道一)의 일화다.


어느 날 젊은 시절의 대매 법상(大梅 法常)이 찾아와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었다. 마조 선사는 “마음이 곧 부처이지”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깨달음을 얻은 대매는 깊은 산중에 들어가 수행을 이어갔다. 훗날 마조가 그를 시험해 보기 위해 한 스님을 보냈다. 그 스님이 대매에게 “마조 선사로부터 어떤 가르침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대매는 “마음이 부처라는 가르침을 받고 이 산속에 와서 산다”고 대답했다. 그 스님이 딴죽을 걸었다.


“선사가 요즘은 다른 말을 하던데요?”

“뭐라고 합디까?”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대매는 심드렁하게 말을 받았다.


“그 늙은이가 뭐라고 하든 나는 마음이 곧 부처요.”


이 말을 전해들은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매실이 익었구먼”(조오현 편, 선문선답).


정치지도자를 하려면 이런 종교적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흔들림 없고 주눅 들지 않는 자기 확신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해서 어설프게 축약해 옮긴다(사족이지만 필자는 불교도가 아니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데일리안 데스크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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