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올드무비㊷] 세계 최고의 팜파탈과 옴파탈이 만났다
어느 배우의 얼굴을 우리가 안다고 할 때, 입술만 보여 줘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을까. 매우 드물지만 가능한 배우가 있다, 안젤리나 졸리가 그렇다. 영화 ‘오리지널 씬’(감독 마이클 크리스토퍼, 수입 비테크놀로지, 배급 시나브로엔터테인먼트, 2001)은 졸리의 움직이는 입술을 클로즈업한 채 그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감독 테일러 쉐라던, 수입·배급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2021)의 개봉에 즈음해 지난 4일 한국 언론과 가진 화상 기자회견에서 “한국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밝힌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한국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얘기하고 우리 배우 마동석을 재능 있는 동료이자 친절한 친구로 말해서 더욱 예뻐 보인 건 아니었다. 20년 세월을 비켜선 느낌은 ‘대체 불가능한’ 육감적 매력에서 뿜어 나왔다.
안젤리나 졸리가 ‘역대급’ 팜파탈(치명적 매력의 여자)이라면, 안토니오 반데라스 역시 최강의 옴파탈(치명적 매력의 남자)이다. 두 배우의 이러한 매력은 다양한 작품들에서 뭇 남성들이 그녀를 향해 돌진하고, 뭇 여성의 마음을 빼앗는 모습으로 활용됐다. 누구의 마음이든 흔들 수 있고 누구의 마음이든 얻을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 ‘오리지널 씬’은 그 결과를 보여 준다.
쿠바에서 사는 루이스 안토니오 바르가스(안토니오 반데라스 분)는 미국에서 오는 줄리아 러셀을 마중 간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가씨가 새벽 6시에 배에서 내리면, 3시간 뒤인 오전 9시 결혼해야 하기 때문이다. 줄리아가 보내 준 사진을 들고 하선하는 여인들의 얼굴을 살피는 루이스, “당신이 바르가스인가요?”라고 묻는 여인(안젤리나 졸리 분)의 모습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사진 속 수수한 모습과는 딴판이다. “미안해요, 제 얼굴에 끌려서 다가오는 남자는 바라지 않았거든요”. 루이스도 말한다. “저도 속인 게 있어요. 커피 수출회사 직원이라고 했는데, 사장입니다”. 줄리아가 말한다. “돈 보고 달려드는 여자는 바라지 않으셨던 거군요”.
알고 보니 절세미녀, 알고 보니 재력가인 두 사람은 곧바로 결혼식을 올린다. ‘이런 결혼도 가능해?’ 어리둥절한 관객에게 영화는 한 발 늦춰 배경을 설명한다. 사실 두 사람은 만나는 건 처음이지만, 루이스가 볼티모어 신문에 신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낸 것을 계기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결혼에 이르렀다. 식은 올렸지만 수줍음이 많으니 시간을 달라는 줄리아, 당신이 허락할 때까지는 다가서지 않겠다는 루이스. 줄리아는 자신을 배려하는 루이스에게 마음이 끌린다. “아내 감은 진실하고 성실하고 아이 잘 나으면 된다”던 루이스도 줄리아에게 한눈에 반해 무엇이든 해주려 한다.
“행복한 결혼이란 없다, 행복한 죽음이라는 말이 없듯이 행복과 결혼은 양립할 수 없는 단어”라고 주장하는, 루이스의 동업자 알란 조단은 이런 말도 한다. “무언가를 계속 주고 싶다면 사랑이고, 계속 받기만 하고 싶다면 욕정이다”. 그의 말에 대입해 보면, 루이스의 마음은 ‘사랑’이다. 재력에 꽃미남 독신으로 자유로이 살던 루이스는 이제 줄리아만 바라본다, 손짓을 기다린다. 사랑에 빠져버렸다.
드디어 줄리아가 다가섬을 허락한다. 완벽하게 하나 되는 두 사람, 줄리아를 아끼는 손길 하나에서도 배려가 느껴진다. “이렇게 행복한 적은 없었어!”, 루이스는 줄리아와의 하루하루가 꿈만 같다.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아내! 인 건 맞는데, 정말로 전 재산을 훔쳐 달아났다. 그 와중에도 잃어버린 재산이 아니라 줄리아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음에 눈물에 흘리는 루이스. 어떻게든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사설탐정과 찾아 나서는데, 정작 줄리아를 찾은 건 탐정이 아니라 루이스다. 줄리아를 본 순간 또 한 번 무장해제, 그저 내 곁에 머물기만을 루이스는 바란다.
그 꿈이 이뤄지기까지에는 숱한 역경과 수난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줄리아가 숨기고 있는 과거 아니 끔찍한 오늘의 현실, 줄리아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거는 루이스가 과연 줄리아를 지옥의 땅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줄리아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구원해 줄 남자인가, 자신을 던져서라도 지키고 싶은 사랑인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겪는 두 사람을 보며, 그런 가운데서도 ‘함께 있기’만을 바라는 두 연인을 보며 제목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오리지날 씬(Original Sin, 원죄)을 지었기에 이토록 가혹한 운명에 마주 서야 하는가. 사랑이다, 사랑한 죄. 당연히, 사랑이 죄라는 얘기는 아니다. 두 사람이, 처음에는 루이스가 나중에는 본명이 드러난 ‘보니 캐슬’이 겪어본 적 없는 처참하고 비루한 현실과 형벌과도 같은 상황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행복해한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사랑은 피할 수 없는 것!
어찌 보면 ‘사랑’ 없이도 잘만 이루어질 것 같은 치명적 매력의 남녀가 도리어 사랑 하나에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건다. 둘이 함께 있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감수하려 하고 어떤 대가든 치르려 하는 모습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사랑’이라는 것의 실체가. 진짜 사랑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또렷이 전달될 수 있는 이유, 바로 지구 최강의 마성의 매력을 지닌 안젤리나 졸리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따로 있어도 그 섹시미가 감당하기 어려운데 함께 어우러지니 눈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그림, 구스타프 클림트의 ‘연인(키스)’처럼 아름답다.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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