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하자 들이닥친 원주민들.. 진흙탕 개싸움 한번 해봐? [프로골퍼의 좌충우돌 마을기업 도전기]

노일영 2021. 5. 1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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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의 좌충우돌 마을기업 도전기 2]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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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영 기자]

우리 마을에 생긴 '지리산의식주연구회'는 2019년의 밤 생산량 감소와 그로 인한 소득 저하를 2020년에는 절대로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체가 결성되던 그 밤에 모인 주민 5명이 사실상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관계의 회복이었다.

원주민들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분쟁이 되고 원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 간의 대립이 표면에 드러났다. 농가 소득의 하락 같은 경제적 이유로 촉발된 것이다. 인간 삶의 조건이 물질적 토대를 초월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이 물질적 토대로 완전히 환원되는 것도 아니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가난했어도 친밀감을 바탕으로 주민들의 정서적 공동체성은 끈끈하게 이어졌다. 어찌 보면 공동의 경제 활동을 통해 관계를 치유하고 회복하자는 것이 지리산의식주연구회가 만들어진 첫 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연구회의 두 번째 모임에서는 마을에 어떤 종류의 갈등과 대립이 있는지 토론을 해봤다. 참으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것들이 쏟아져서 놀랐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한 행동이 이웃에게 상처를 주고 내적 갈등의 불씨로 자리 잡는다는 걸 알게 됐다. 한정된 지면에 다 옮길 수는 없어서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과 원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 간의 갈등 사례를 구술의 형식을 통해 한 가지씩만 적어 보겠다.  
 
 음천마을 주민들 밤 줍는 모습
ⓒ 노일영
    
[사례1] 원주민 사이의 갈등

오른쪽 어깨가 약간 찌그러진 뒷모습이 분명 소평댁이더만. 그래서 남의 알밤에 왜 손대느냐고 고함을 버럭 질렀다 아이가. 근데 그 여편네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차피 길바닥에 떨어진 거 아이가. 도락꾸(트럭)가 밟고 지나가는 거보다야 내가 줍는 게 낫지."

이 지랄을 하더라고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니미, 나이 80을 먹은 노인네가 찌그러진 깡통 같은 어깨에 밤이 든 자루 하나를 메고 뒤뚱거리며 냅다 도망을 치는데 돌아버리겠더라꼬. 욕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뻔했는데, 나보다 연배가 높으니까 일단 참았다 아이가. 그 할마씨 밤나무 있는 데가 우리 땅을 거쳐서 지나가야 하는데 우짜겠노.

마누라가 설거지를 끝내고 밤 주우려고 와서는 내 면상을 보더니 뭔 일 있냐고 묻더라꼬. 그래서 도로 근처에 떨어진 알밤 주워 가는 인간이 소평댁이라 캤지. 처음엔 안 믿더라꼬. 소평댁이 아니라 중평댁이 의심스럽다 카데. 그래서 내가 아이다, 소평댁이 도로에 떨어진 밤을 줍는 거 내가 이 눈으로 똑똑히 봤다 안 캤나.

어데 그뿐이가. 하루는 저기 뒤냇골에 비탈 경사가 심한 곳에서 겨우 균형을 잡고 밤을 줍고 있는데 누가 고함을 질러뿌데.

"이 양반아, 그건 가꼬 가면 안 되지."

고개를 들어보니까 산등성이 중간쯤에서 창번이 양반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더라꼬. 아, 그래서 내가 이 양반아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해샀노, 여기 이 밤나무는 내 꺼라 캤지. 그랬더니만 아, 그 양반이 이래 지껄이더라꼬.

"니는 그 나무 훨씬 아래쪽에서 밤을 주워야 되는 기라. 거기 밤송이는 다 여기서 떨어진 거 아이가. 그짝으로 굴러갔다고 자네 꺼이 되는 게 아이지."

우와,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동. 니미, 그래서 나도 핏대를 좀 올렸다 아이가.

"이 양반아! 그라믄 여기 있는 이 밤나무 밤은 여기 없단 말인 기가?"

그러니까 그 새끼가 또 뭐라 카더라꼬.

"그건 내 알 바 아이고. 거 있는 건 다 여서 굴러간 기다. 고마 저 밑으로 내려가라 마."

순간적으로 누굴 패 쥑이뿌고 싶은 생각이 든 거는 그때가 처음이라꼬.

**********

사실 밤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곗돈을 떼먹고 줄행랑치는 총무처럼 얄밉다. 봄부터 가을까지 나뭇잎과 뿌리와 줄기를 실컷 착취해 놓고 후두둑 후다닥 땅으로 도주하면서 데굴데굴 정처 없이 떠돌기까지 한다. 가을날 시골의 평화를 박살 내는 악의 축이 바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밤들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밤한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땅 위에 누군가의 소유를 의미하는 가상의 선을 그은 것은 인간들이니까. 밤은 그저 자신의 속성대로 인간이 만든 경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땅 위를 자유롭게 방랑할 뿐이다.

처음에 나는 떨어지는 밤들을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똥별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귀농을 했으니 그 정도의 감성을 사치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서 살게 되면, 자동차의 앞유리창을 더럽히는 새똥에서도 프랙털 구조(작은 부분이 전체와 같은 모양을 한 구조)의 아름다움을 읽으려 드니까.

어쨌거나 밤을 팔아서 제법 목돈을 손에 쥐게 될 때면, 밤들이 떨어지는 게 슬롯머신에서 동전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늘과 땅과 밤이 화면에 일렬로 놓이면서 잭팟이 터지는 느낌이 드는 건, 시골에서 돈을 벌기가 워낙에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역시 경계를 가로지르는 알밤이 골칫덩이로 느껴지기 시작한 건 사실 시골살이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부터였다.
 
 밤비료를 나누는 모습
ⓒ 노일영
  
[사례2] 원주민-귀농·귀촌인 갈등

아니, 땅을 샀으면 측량을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측량 한 번 했다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저를 원수로 여기면 제가 여기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경계 측량을 신청하고 2주 정도가 지나니까 측량팀이 왔어요. 기사들이 GPS 측량장비를 설치하는 동안 아내와 저는 톱으로 밤나무 가지들을 잘라 냈죠. 측량 경계 쪽으로 시야를 확보하려면 필요한 작업이라더군요.

측량 기사 한 분이 붉은색 경계 말뚝들이 들어 있는 배낭 하나와 망치 하나를 제게 건네면서 그러더군요. 제가 직접 말뚝을 박아야 경계를 정확히 알 거라고. 그러면서 제 땅이 일제강점기 이후로 측량을 하지 않아서 제가 알고 있는 땅의 경계와 좀 많이 다를 수도 있다고.

그래서 제가 물었죠. 제게 이 땅을 판 사람이 얘기한 것보다 땅 크기가 훨씬 많이 줄어들 수도 있는지. 그러니까 그분이 그러더라구요. 줄어들 수도 있고 커질 수도 있는데, 복불복이라고. 그러면서 측량 결과에 대해서는 양해를 좀 해달라더군요. 자기들은 측량 결과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경계 측량이 진행되는 동안 늘 심심한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군요. 주민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 촌구석이라 흘레붙은 개들만 있어도 구경꾼들이 몰려들 지경인데, 일제강점기 이후 처음으로 측량을 한다니 얼마나 재미난 구경거리였겠습니까. 측량 기사의 지시에 따라 제가 땅바닥에다 말뚝을 하나씩 박을 때마다 곳곳에서 탄식과 참견과 고함이 터져 나왔어요.

측량 현장은 마치 각본 없는 생방송 리얼 버라이어티 쇼나 운동 시합 생중계 같았죠. 낮술을 한잔 걸친 불그레한 얼굴로 한 손엔 소주병을 든 이현승(가명)씨의 고함은 비명에 가까웠어요. 그도 그럴 것이, 측량을 하고 있던 제 전답 두 필지가 그 양반의 땅 사이에 끼어 있었기 때문이죠.

경계 말뚝 62개를 꽂는데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지만 마을 주민 누구도 자리를 안 뜨더라구요. 바닥에 퍼질러 앉기도 하고 나무에 기대기도 하고 술을 마시면서도 다들 두 눈만은 부릅뜨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살벌하더군요. 제 땅의 경계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곳저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튀어나와서 당황스럽더라구요.

"뭐 할라꼬 측량을 하노. 그냥 땅 살 때 들은 대로 그 크기로 알고 있으면 되지."
"돈이 참 많은 갑네. 땅 판 사람 말 안 믿고 저 카는 거 보면."

측량 결과는 저를 도시에서 온 싸가지 없는 새끼로 만들기에 충분하더군요. 백 평 정도의 이현승씨 밭 한 다랑이가 제 땅이 되고, 쓸모없는 산비탈의 제 땅 서른 평가량이 이현승씨 소유로 바뀌었으니까요. 당혹해한 건 저뿐만이 아니라 측량 기사들도 마찬가지였죠. 이현승씨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시비를 걸기 시작하자 기사들은 재빨리 짐을 싸서 자리를 뜨더군요.

측량팀이 부리나케 떠나고 난 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죠. 처음엔 사실 측량의 결과가 지나치게 편파적이라 나 역시 관습에 무릎을 꿇고 백기를 들고 싶었어요. 누군가가 그냥 우회적으로 친절하게 항복하라고 한마디만 해줬다면 버티는 척하다가 웃으며 투항했을 겁니다. 귀농하기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도 늘 관행에 굴복했으니까요.

그런데 다들 저를 노려보기만 할 뿐 말을 안 하더라구요. 그건 마치 동네 주민들이 침묵을 통해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이 측량은 무효다 뭐 이런 침묵이었죠. 제가 직장에서 그런 꼴 당하기 싫어서 시골로 내려온 건데 이게 뭔가 싶더니, 갑자기 가슴 속에서 뭔가 훅 올라오더라구요. 그래, 진흙탕 개싸움 한번 해보자 이런 마음이 확...

**********

원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의 갈등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측량을 통해 땅의 경계가 바뀌는 부분이었다. 귀농·귀촌인들로서는 자신이 돈을 들여 산 땅의 크기를 명확히 알고 싶은 게 당연하지만, 원주민들의 관점에서는 오랜 세월 관습적으로 알고 있던 토지의 경계가 갑자기 변하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것이라고 알고 오랜 세월 농사를 지은 땅이 측량을 통해 난데없이 남의 것으로 변해 버린다면, 농부의 처지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리산의식주연구회의 회원들은 토론을 통해 이런 종류의 수많은 갈등을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을지부터 의논했다. 사실 별다른 뾰족한 수는 없었다.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세월을 통과하며 워낙에 앙금이 깊었고, 원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의 갈등을 초래하는 문화적 차이는 너무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을을 파괴로 몰아가는 갈등들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함께 노동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마을 주민들이 연구회의 결정을 수용할지 거부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 다음주 월요일(5월 24일)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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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노일영 기자는 프로 골퍼로 KLPGA 정회원입니다. 현재 지리산의식주연구협동조합 이사장과 마을기업 대표, 함양군 백전면 음천마을 이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주간 함양>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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