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외반증은 편한 신발이 '약'입니다" [헬스조선 명의]
'족부질환 명의' 서울대병원 이동연 교수
과거 프랑스 중세시대 귀족 남성의 유골을 조사한 결과, 한 가지 공통적인 질환의 흔적이 발견됐다. 바로 ‘무지외반증’이다. 무지외반증이란 특정 원인에 의해 ‘무지(拇指, 엄지발가락)’가 두 번째 발가락 쪽으로 과도하게 휘는 것으로, 자주 신는 신발의 종류, 착용 습관 등이 병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프랑스 귀족 남성의 유골에서 공통적으로 무지외반증의 흔적이 나타난 것 또한 남성이 굽이 높은 신발이나 불편한 신발을 신던 당시 시대적 배경과 연관돼 있다. 무지외반증은 신발의 영향이 큰 질환인 만큼, 치료 역시 신발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편한 신발이 곧 약’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이동연 교수를 만나 무지외반증의 원인, 치료법과 발 건강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들었다.
-무지외반증은 신발 모양과 신는 습관에서 비롯되나?
무지외반증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유전적 요인이다. 부모 중 한 명, 또는 둘 다 무지외반증이 있을 경우 자녀에게도 무지외반증이 생길 수 있다. 다른 한 가지가 신발의 영향이다. 하이힐이나 바닥이 딱딱한 신발을 즐겨 신는 등의 습관이 있으면 발 모양에 영향을 주게 된다. 유전적 요인으로 무지외반증 성향이 있는 사람은 어떤 신발을 신느냐에 따라 질환의 진행 정도가 결정된다.
-신발 외에 무지외반증을 악화시키는 요인은?
특정 습관이 무지외반증을 악화시킨다는 연구결과는 아직까지 없다. 류마티스 관절염, 과체중 등이 무지외반증을 유발하거나 진행 속도를 높인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보다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원인이 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직업적으로 보면 하이힐을 오래 신거나 오래 서있어야 하는 직업이 무지외반증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발생 빈도가 궁금하다. 늘어나는 추세인가?
신발의 영향이 큰 질환인 만큼, 현대식 신발 착용이 늘수록 발생빈도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 비해 기능성 신발이 많이 나왔다고 해도, 전반적으로는 구두, 하이힐, 플랫슈즈 등을 많이 신고 있다. 또 무지외반증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환자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과거에는 무지외반증을 단순 변형으로 보고 방치했다면, 이제는 많은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 진단·치료 받고 있다.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병원, 의사도 늘었다.
-여성 환자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환자 성별·연령은 어떤가?
여성에서의 발생 비율이 2배 이상 높고, 수술 받는 환자 또한 여성이 훨씬 많다. 신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관리가 안 돼 각도가 더 휘어지다보니, 젊은 층보다는 나이가 있는 환자들이 병원을 많이 찾는다.
-치료받는 환자도 대부분 고령자들인가?
무지외반증 치료를 가장 많이 받는 여성은 30대 후반~40대 중반 사이 여성이다. 아직 하이힐이나 플랫슈즈 등을 신을 일이 많은데, 20대와 30대 초반 때와 달리 발 탄력성이 떨어져 이 같은 신발을 신으면 통증, 불편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편한 신발을 신는 것만으로도 통증과 변형이 완화되는 만큼, 이 시기를 지나면 치료받지 않고 신발을 바꾼 후 경과를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는 증상이 약한 경우로, 중증 이상의 심한 무지외반증일 때는 연령에 상관없이 치료받아야 한다.
-발 변형 외에도 나타나는 증상이 있나?
무지외반증으로 인해 엄지발가락의 휜 정도가 심한 경우 엄지발가락에 체중이 실리지 못하고 다른 발가락 쪽에 옮겨져, 2~4번째 발가락 아래가 눌리고 신경이 부어오를 수 있다. 또 뼈가 닿으면서 중족골 아래에 통증이 생기거나, 튀어나온 부위에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신발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이 같은 증상은 해결할 수 있다.
-피부에 문제가 되진 않나?
발이 압력을 이겨내려 하다보면 신발과 자주 접촉하는 부위와 발바닥 아래에 굳은살이 생긴다. 문제는 계속해서 발에 체중이 실리고 신발과 닿다보니, 굳은살이 더 튀어나오고 통증도 더 오래, 악화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굳은살만 깎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발에 압력이 덜한 신발을 신어야 한다. 굳은살이 생겨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발을 제대로 딛기 어렵거나 신발을 벗은 채 생활하는 게 어렵다면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걸음걸이에도 영향을 줄까?
휘어진 각도가 40도를 넘어선 중증 무지외반증은 보행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이 경우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 중증 미만, 경도 무지외반증은 발 변형은 있어도 보행의 차이는 없다. 무지외반증으로 보행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는 환자는 많지 않다.
-경도 무지외반증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봐도 되나?
그렇다. 의사마다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젊은 환자(경도 기준)에게는 수술을 권하지 않고 있다. 수술 후 원하는 신발을 신고 실제 치료 효과도 좋을 수 있지만, 자연경과를 지켜봤을 때도 수술 시기를 미루고 후회한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당장 생명에 지장을 주거나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수술 시행 여부를 보다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판단 기준은 의사마다 다르다. 수술 결과가 좋기 때문에 수술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엄지발가락이 휘어 있다. 어느 정도 변형이 있을 때 치료해야 하나?
무지외반증 진단 기준은 휘어있는 각도가 20도 이상일 때다. 20도가 넘으면 무지외반증으로 보고, 30도가 넘으면 수술 치료를 고려한다. 휘어진 각도가 40도가 이상이고 엄지발가락이 다른 발가락으로 올라탔다면 수술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60대 여성의 통계를 보면 10~11도 정도 휘어있기 때문에, 10~15도는 질병으로 보기 어렵다. 다만, 환자 육안으로는 이것보다 각도가 휘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수술 기준은 각도인가?
그렇지 않다. 환자의 치료 의지도 고려해야 한다. 불편함이 없어도 환자가 발 모양에 콤플렉스를 갖게 돼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 튀어 나온 부위에 통증이 느껴진다거나 연관 부위 질환·통증이 생긴 경우에도 수술이 시행될 수 있으며, 무지외반증이 평발과 함께 진행된 경우 역시 증상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치료를 고려해봐야 한다.
-어떤 검사들이 시행되나?
기본적으로 X-RAY 검사와 발바닥 신경 상태를 보기 위한 초음파 검사를 시행한다. 수술 필요성을 보기 위해서는 추가 검사를 통해 발바닥 압력을 평가한다. 압력이 바깥으로 치우치는 경우 보행 이상이나 연관 통증이 생길 수 있다.
-수술 방법은?
‘교정절골술’은 튀어나온 뼈를 깎고 틀어진 뼈의 방향을 돌려 고정해주는 수술이다. 다른 위치로 옮겨져 있는 뼈는 당겨서 원위치 시키고 좁아진 부위는 공간을 늘려준다. 쉽게 말해 무지외반증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변형된 발가락 뼈 모양을 원상태로 되돌린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수술 방법은 진행 정도, 발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수술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수술 후에도 굽이 높은 신발을 신거나 구두를 오래 신는 등의 습관은 지양하는 게 좋다.
-교정기로는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나?
교정기, 운동치료 모두 증상 완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변형이 교정되진 않는다. 교정기를 쓰고도 불편함이 지속돼 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다. 증상 완화를 위해 교정기를 사용한다면 편한 신발을 함께 신을 것을 권하고 싶다.
-발 건강이 중요한 이유는?
과거 경제적인 여유가 없던 시절에는 발이 불편한 것을 질환으로 여기지 않았다. 무슨 신발을 신어도 움직일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제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발 건강의 중요성은 매우 높아졌다. 여가 시간이 많아지고 운동, 등산, 여행 등 다양한 외부활동을 즐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지외반증을 비롯한 족부질환을 적극 치료하는 환자가 많아진 것도 같은 이유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의 중요성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발 건강을 지키기 위해 조언한다면?
발과 관련된 대부분 질환이나 불편함은 편한 신발을 고르고 착용하는 것에서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신발에 발을 맞추지 말고 발에 맞는 신발을 신어야 하며, 특히 중년부터는 조금이라도 불편함이나 통증이 생겼다면 발을 보호할 수 있는 신발을 신는 게 좋다. 평소 스트레칭, 마사지, 깔창 사용 등을 통해 관리해주는 것 또한 질환 자체를 치료하진 못해도 발과 관련된 많은 증상을 조절·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동연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 정형외과 임상조교수, 임상부교수, 임상교수로 재직 중이며, 정형외과에서 ▲발 ▲발목 관절염 ▲스포츠손상 ▲당뇨발 ▲족부변형 기형 등 다양한 족부질환 진료하고 있다. 또 국제사업본부장을 맡아 쿠웨이트, UAE,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등 서울대병원 해외 진출·협력, 해외 의사 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지휘하는 동시에, 대한족부족관절학회·대한소아정형외과학회·대한정형외과학회 정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2014년에는 ‘방사선 영상과 족부동작 분석 검사와의 상관관계’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제5회 세계족부족관절학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고 학술상인 최우수 논문상(학회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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