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거나 무시당하거나 끼지못한다, 제1야당 대표 수난사

허진 2021. 5.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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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홍준표·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중앙포토


한국 정치사에서 제1야당 당수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과 맞섰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1997년 12월 헌정 사상 첫 수평적 정권 교체 이후 야당이 된 한나라당을 이끌었던 총재와 대표의 면모도 그랬다. 1997년과 2002년 두 번이나 대선에 나섰던 이회창 전 총재, 2004년 4월 탄핵 역풍 속에서 긴급 투입돼 총선을 진두지휘한 뒤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을 얻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이름이 새누리당을 거쳐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바뀌는 동안 대표들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특히 최근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이정현·홍준표·황교안 대표 등 3명의 전직 대표들은 잇따라 수난을 겪고 있다.


전당대회 거친 이정현·홍준표·황교안, 잇따라 수난

이정현 전 대표는 새누리당의 마지막 대표였다. 현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서 유일한 호남 출신 대표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그는 2016년 8월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지지층의 결집으로 대표에 당선됐다. 그러나 한 달여 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하자, 이 전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국정감사 보이콧과 함께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전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7일 만에 단식을 중단한 채 병원으로 후송됐다. “목숨까지 바친다”고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졌고 대표에 당선된 지 넉 달이 지난 2016년 12월 그는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이듬해 1월에는 인명진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자진 탈당 요구를 받고 당을 떠나야 했다. 지난해 4·15 총선 때는 당초 서울 종로 출마를 노리다 영등포을로 옮겨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3.5%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2016년 12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국회에서 일주일째 단식 중이던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방문해 단식 중단을 권유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2017년 5월 대선에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섰던 홍준표 전 대표는 그해 7월 전당대회에서 대표가 됐다. 그러나 이듬해 6·13 지방선거에서 궤멸적인 패배를 당하자 이튿날 “우리는 참패했고 나라는 통째로 넘어갔다”며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지난해 4·15 총선 때 경남 양산을에 출마하려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의 ‘험지 출마’ 요구를 받았다. 공관위와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한 홍 전 대표는 양산을에서 컷오프를 당했고, 결국 탈당 뒤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에 대해 당의 시선은 곱지 않았고 총선 뒤 당을 이끈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그의 복당을 허용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거쳐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뒤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황교안 전 대표는 2019년 2월 전당대회에서 당선됐다. 그는 탄핵을 거치면서 부도 상태에 놓였던 보수 진영에서 차기 대선 주자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4·15 총선에서 당이 대패한 데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맞붙은 서울 종로에서도 본인이 큰 차이로 낙선하면서 대표직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홍준표, 10일 복당 선언했지만 일주일째 당내 논란

이렇게 불명예 퇴진한 3명의 전직 대표 중 홍준표·황교안 전 대표는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10일 국민의힘 복당을 선언했지만 일주일째 별다른 진전이 없다. 6월 11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초선 그룹의 지지를 받고 있는 김웅 의원과 거친 설전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홍 전 대표는 16일에도 페이스북에 “남의 둥지에서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부화하자마자 제일 먼저 같은 둥지에 있는 원 둥지 새의 알을 밀어내어 떨어트리고 자기가 원 둥지 새의 새끼인양 그 둥지를 차지한다”며 자신을 피해자에 비유하는 글을 썼다. 하지만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당내 일부 주자들 사이에서 불필요한 언쟁을 벌이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면서도 “홍준표 의원 복당 문제는 의견 수렴 중”이라고만 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 복당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총선 패배 뒤 1년여 만에 본격 정치 재개에 나선 황교안 전 대표도 당내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해 최근 미국에 방문한 그는 현지 특파원들과 만나 “국민의힘 소속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있는 서울·부산·제주 등에라도, 굳건한 한·미 동맹의 상징적 차원에서라도 백신 1000만회 분에 대한 지원을 (미국에) 부탁했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당내에서조차 “백신까지도 편가르기 도구로 이용하는 전직 총리의 어설픈 백신 정치”(장제원 의원)라는 비판을 받았다.


홍준표, “황교안과 묶어 반대하는 건 무슨 억하 심보”

홍준표·황교안 전 대표가 동병상련을 겪고 있지만 그렇다고 서로 도울 처지도 못된다. 국민의힘 내에선 “‘도로 한국당’, ‘도로 영남당’이 우려된다”(김근식 전 비전전략실장)며 두 사람을 싸잡아 경계하는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황 전 대표는 공개적으로 홍 전 대표의 복당에 찬성 목소리를 냈지만, 홍 전 대표는 15일 “질 수밖에 없었던 탄핵 대선, 그리고 지방선거를 지휘했던 저와 이길 수밖에 없었던 지난 총선을 막장 공천으로 지게 만든 사람을 한데 묶어 반대하는 것은 또 무슨 억하 심보냐”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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