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동네·재개발 아파트 공존.. 노원 백사마을 새로운 실험

김재중 2021. 5. 1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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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보전사업, 재개발과 연계
계단길 등 도시재생으로 원형 유지
아파트단지 '임대·분양 통합' 조성
젊은층 유입으로 마을 활력 기대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산 104번지 ‘백사마을’의 현재 모습(왼쪽 사진)과 백사마을 정비사업 조감도. 서울시는 이곳에서 주거지 보전과 개발을 동시에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시 제공


보전에 방점을 둔 도시재생과 전면철거 방식의 재개발이 공존할 수 있을까. 지난 6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산 104번지 ‘백사마을’ 주거지 재생사업 추진 현장을 취재하러 가면서 내내 머리에 맴돌던 질문이다.

불암산 밑자락 구릉지에 자리한 백사마을은 1967년 서울 도심 개발에 내몰린 철거민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됐다. 2018년 기준으로 550세대 가운데 80% 이상은 60세 이상 고령자, 72%가 임차인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주민들은 가족처럼 서로 정을 나누며 살아왔다. 백사마을은 도시의 무분별한 팽창을 막기 위해 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지어진 지 50년이 넘은 노후주택이 많아 정비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2008년 개발제한구역 해제이후 재개발사업이 추진됐지만, 사라져가는 저층주거지를 보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서울시는 2011년 백사마을 주거지 보전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사업시행자(LH)의 잦은 설계변경 요구, 주민간 갈등으로 사업이 장기간 표류했으나 올해 3월 서울시가 총면적 18만6965㎡의 ‘백사마을 재개발정비사업’ 사업시행계획을 인가하면서 본 궤도에 오르게 됐다.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주거지보전사업’ 유형을 도입, 재개발 사업과 연계해 백사마을 고유의 정취와 주거·문화생활사를 간직한 지형, 골목길, 계단길 등의 일부 원형을 보전하기로 했다. 주거지 보전사업은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예정된 4만832㎡ 부지에서 진행된다.

서울시는 2018년 정비사업 추진을 위한 거점공간으로 ‘104랑 재생지원센터’를 열었다. 회의실 교육장 카페 등을 갖춘 열린공간으로, 주민들에게 이 사업에 대한 홍보·교육과 공동체 활성화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센터는 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생활문화유산을 수집해 마을전시관을 만들 계획이다. 신동우 104랑 재생지원센터장은 “백사마을엔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녹아있다”며 “주민 30명을 인터뷰해 기록화하고, 그들이 사용한 물건 600점을 수집해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사마을 주거지 보전사업은 땅의 보전, 삶의 지속을 통한 마을 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신 센터장은 “지역 잠재력을 활용해 공동체가 살아있는 마을을 복원하고, 저렴하고 질 좋은 주거공간을 확보하는게 우선 과제”라며 “나아가 주민에 대한 사회적 경제 교육과 마을공동체 회사 설립, 다양한 주민공동이용시설 활용으로 자족형 마을을 운영하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센터는 3단계의 마을 자족형 운영 로드맵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백사마을에 맞는 건축 디자인이 나올 수 있도록 ‘특별건축구역’을 지정해 15명의 건축가를 배치한다.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되면 건축법에 규정된 일조권 등 일부 규정을 배제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 백사마을 정비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이민아 건축사는 “구릉지에 비계획적으로 형성된 가옥이지만 일조권 침해가 없도록 지혜를 발휘한 원형을 최대한 참조하려고 한다”며 “주민들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건축으로 가능한 것, 행정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 등을 고민하면서 설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원형 가옥 가운데 두채만 보전하고 나머지는 철거한 뒤 원형을 최대한 살려 전시할 계획이다.

주거지 보전사업 부지를 제외한 14만6133㎡에는 기존 주택을 철거하고 최고 20층의 아파트 단지와 기반시설이 들어선다. 주목할 대목은 소셜 믹스(Social Mix)와 에이지 믹스(Age Mix)다.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를 통합하고, 신규 입주민으로 젊은층을 조기 선정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다. 새 사업시행자로 선정된 SH공사는 임대단지와 분양단지가 분리되지 않고 톱니바퀴 형식으로 맞물리도록 조성할 계획이다. 또 예술인 활동가와 대학생 등 청년들에게 입주 기회를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 센터장은 “영국에서도 소셜믹스가 성공한 사례가 10%도 안된다. 일반 재건축이나 재개발 지역에는 맞지 않는 개념”이라며 “협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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