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석 (5) '산본 집성촌' 통해 신앙의 삶 시작.. 행복했던 시절

서윤경 2021. 5. 17.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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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금성사(현 LG전자) 가전연구소의 HDTV 팀장으로 복귀했다.

그때를 나는 '산본 집성촌' 시절이라 말한다.

어머니는 1990년대 초반 1기 신도시였던 경기도 군포시 산본에 집을 마련하셨다.

지금 내가 신앙의 삶을 사는 것도 우연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산본 집성촌' 시절을 통해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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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다니며 아들들 주께 인도한 할머니
여호수아처럼 기도하고 이뤄내신 어머니
어머니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목격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는 1991년 5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금성사(현 LG전자) 가전연구소의 HDTV 팀장으로 근무했다. 박 대표의 이름표와 달력에 금성사 마크가 선명하다.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금성사(현 LG전자) 가전연구소의 HDTV 팀장으로 복귀했다. 당시 일상을 떠올리면 행복했다. 그때를 나는 ‘산본 집성촌’ 시절이라 말한다. 어머니는 1990년대 초반 1기 신도시였던 경기도 군포시 산본에 집을 마련하셨다. 나와 형제들도 자연스럽게 본가 근처에 모여 살았다. 집성촌이란 말이 나온 이유다.

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고 우연은 없다고 본다. 지금 내가 신앙의 삶을 사는 것도 우연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산본 집성촌’ 시절을 통해서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다니던 어머니가 산본으로 이사하며 집 근처 순복음엘림교회로 옮기면서 교회에 출석하시게 됐다. 엘림교회는 매 주일 위성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연결해 예배 드렸다. 아버지는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가슴 깊은 울림을 경험했고 이후 실업인모임에 가입해 봉사했다.

아버지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당신의 어머니이자 나의 할머니는 시골에서 어렵게 교회에 다니셨다. 당시 사람들은 기독교를 제사도 드리지 않는 ‘막돼먹은’ 종교라 여겼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는 교회에 다니며 자기 아들들을 예수님께 인도하셨다.

아버지는 할머니 영향 반, 어머니 영향 반으로 교회에 가시게 됐다. 나 역시 한국에 와 산본에 살며 부모님과 엘림교회에 출석했다.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유학 시절 미국에서 교회에 다닌다는 내 얘기에 기뻐하셨다. 한국에 돌아가면 어머니 교회에 다니겠다는 약속이 절로 나왔다.

어머니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도 목격했다. 아들의 고등학교 배정을 앞두고 있었던 일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맏손자가 집과 가까운 학교에 배정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다. 원치 않은 추첨 결과가 나왔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섭섭함을 드러내며 투정을 부리셨다. 그리고 끝까지 매달리셨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교육 당국은 기존 추첨을 무효로 하고 재추첨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기도가 이뤄졌다.

성경엔 두 가지 기도 유형이 있는 듯하다. 여호수아 10장 12~14절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무조건 매달린다. 반대로 마태복음 26장 39절을 보면 예수님은 본인이 원하는 걸 기도하면서도 결과는 하나님 뜻대로 하라고 하신다.

어머니는 평소 적극적인 성품대로 여호수아처럼 기도하셨고 여호수아처럼 이뤄내셨다.

그럼에도 내 신앙에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성경은 주일 목사님 설교 때나 읽었고 헌금도 주일헌금이면 충분했다. 회사 월급이 오르면서 십일조 내기는 점점 어려워 졌다. 타협점을 찾은 게 선교헌금이었다. 선교헌금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신 조 목사님 말씀을 핑계 삼아 십일조는 거르고 선교헌금만 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으로 신앙생활의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 건 내 신앙의 씨앗이셨던 어머니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때문이었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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