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기력 북돋고 심신 다스린 전통 약재, 뇌 손상 예방 효과도 밝혀져
각종 옛 의서·문헌에 용도 명시
스트레스 받은 뇌 보호에 유용
“몸의 나쁜 기운을 제거하고 치료되지 않은 나머지를 고친다. 부드럽게 효능을 취해 이익은 있고 손해는 없다.”(송나라 의서 『본초연의』)
“상체에 열이 많고 하체는 차가운 상열하한(上熱下寒), 천식·변비, 소변이 약한 증상 등에 처방한다.”(명나라 본초학 연구서 『이시진』)
“정신을 맑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켜 주며 위를 따뜻하게 하고 기를 잘 통하게 한다. 간 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으며 허리를 따뜻하게 하고 근육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기침·가래를 가라앉힌다”(명나라 의서 『본초강목』)
“뜨겁고 맛이 맵고 독이 없다. 찬 바람으로 마비된 증상이나 구토·설사로 팔다리에 쥐가 나는 것을 고쳐주며 정신을 평안하게 한다.”( 『동의보감』)
옛 의학 서적에는 침향(沈香)에 대해 이렇게 기록돼 있다. 몸의 기력을 북돋고 심신을 안정시킬 때 으뜸으로 쓰였다. 기록을 찾아보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세월을 거쳐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약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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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동의보감』 등에 기록
그만큼 침향은 역사적으로 아주 귀하게 여겨졌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골품제 신분 계급의 사회생활 양식상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제약이 기록돼 있는데,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하는 품목에 침향이 포함됐을 정도다. 송나라 사신이 고려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고려도경』 에는 송나라의 신종이 1079년에 당시 중풍을 앓고 있던 문종(고려 11대 왕)의 질병 치료를 위한 약품 중 하나로 침향을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현대인에게는 그리 친숙한 약재가 아니다. 녹용·인삼보다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그래서 아직도 침향이 ‘향나무를 물에 수십 년간 담갔다가 말린 것’이라고 아는 사람도 있다. 침향을 침수향(沈水香)이라고도 불렀던 데서 생긴 오해다. 원래 침향은 침향나무에 상처가 나거나 세균·곰팡이에 감염됐을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하는 수지(樹脂·나뭇진)가 짧게는 10~20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굳어진 것을 말한다. 단순히 동물이나 식물의 일부 부위에서 유래한 약재와는 다른 부분이다.
따져보면 침향은 일상에도 녹아 있다. 불상 앞에서 피우는 향이 침향이고, 염주는 침향나무로 만들어졌다. 침향나무 특유의 항균·방충 효과도 있어 장례 물품으로 쓰였다.
침향의 건강 효과는 체내 기운을 잘 다스리는 성질에서 나온다. 첫째, 올라오는 병의 기운을 내린다. 그래서 구토·기침·천식·딸꾹질을 진정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둘째, 몸에서 잘 배출되지 못하는 것을 개선한다. 복부 팽만, 변비나 소변이 약한 증상에도 효과적인 이유다. 한의학에서는 침향에 기를 내리고 속을 따뜻하게 하는 효능과 기운을 콩팥으로 모아 단단하게 하고 잘 배출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본다.
이런 효능은 침향에 함유된 핵심 성분 때문이다. 연구를 통해 밝혀진 핵심 성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베타셀리넨(β-Selinene)’이다. 베타셀리넨은 만성 신부전 환자의 증상을 호전시키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만성 신부전 환자가 침향을 섭취했을 때 식욕부진과 복통, 부종 등의 증상이 호전됐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침향에 있는 베타셀리넨이 신장에 기운을 불어넣고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둘째는 ‘아가로스피롤(Agarospirol)’이다. 아가로스피롤은 신경을 이완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천연 신경안정제’로 불린다.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시켜 주기 때문에 불면증 극복에도 도움을 준다는 보고가 있다.
게다가 침향은 잠재성이 풍부한 약재이기도 하다. 기존 효능 외에 스트레스로 인한 뇌 손상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된 것이다. 지난해 8월 국제분자과학회지 온라인판에는 대전대 대전한방병원 동서생명과학연구원 이진석·손창규 교수팀의 연구결과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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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중 스트레스 호르몬 농도 줄여
이진석·손창규 교수팀은 수컷 쥐 50마리를 10마리씩 다섯 그룹으로 나눠 스트레스를 가하지 않은 한 그룹을 제외하고 네 그룹에 매일 6시간씩 11일 동안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를 가한 뒤 침향 추출물의 농도를 달리해 투여했다. 그리고 쥐의 뇌 조직과 혈청을 적출해 혈중 코르티코스테론(스트레스 호르몬) 및 뇌 해마의 손상도를 비교 분석했다. 코르티코스테론은 쥐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분석 결과, 일반 쥐의 코르티코스테론 농도는 스트레스를 받기 전보다 5.2배 증가했다. 그런데 침향 추출물을 높은 농도(80㎎/㎏)로 투여한 그룹은 뇌의 활성산소가 현저히 줄었다. 혈중 코르티코스테론 농도도 유의하게 감소해 실험 전 수준에 가깝게 회복됐다. 연구팀은 “스트레스는 뇌의 면역 세포인 ‘미세아교세포’를 과활성화해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하고 이로 인해 생성된 염증이 뇌의 산화적 손상을 일으키는데, 침향 추출물이 미세아교세포의 활성을 억제해 이러한 손상을 막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뇌 손상을 침향이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침향이 건강에 이로운 약재지만 ‘과유불급’이다. 적정량을 섭취해야 한다. 따라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안전성을 확인한 침향 배합 제품을 섭취하는 것이 도움된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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