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 효과? 아트부산 출품작 완판 행진

이은주 2021. 5. 1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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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명 관람, 매출 350억 작년의 2배
미술품 구매에 대한 인식 달라져
최고가 23억..작품 선점 경쟁 치열
이건용 등 인기 작가는 대기 명단
아트페어가 인기 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13~1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부산에는 총 8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았다. 13일 전시장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 [사진 아트부산]

전시장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이 수십 미터 가량 줄을 섰다. 억대 작품이 속속 팔려나갔다. “이미 완판입니다”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건용 등 인기 작가 작품엔 다음 작품을 노린 대기자 명단도 등장했다. 13~16일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열린 아트부산 얘기다.

10회째를 맞은 아트부산이 역대급 성황을 이뤘다. 개막 당일 1만5000명 이상, 14일 2만 명, 15일 2만5000명이 전시장을 찾았다. 기록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아트부산 총관람객 수는 2만3000명. 16일 관람객까지 전체 관람자 수는 8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4배 가까운 수치다.

아트부산 포스터 앞 어린이. [사진 아트부산]

판매도 기록적이다. 매출 총 350억원으로 지난해 150억원보다 두 배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첫날 홍콩갤러리 SA+ 부스에선 현대미술 거장 루치오 폰타나(1899~1968) 그림이 11억원에 판매돼 오픈 당일 판매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후에도 이 갤러리는 샤갈 그림을 200만달러(22억6000만원)에 판매해 이번 아트부산 최고가 기록을 냈다. 해외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에선 독일 작가 다니엘 리히터의 2018년 대작(‘Sick music’)이 8억원에, 영국 조각가 앤서니 곰리의 작품이 6억원에 팔렸다. 타데우스 로팍은 지난해엔 독일 표현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작품을 18억원에 판매한 바 있다.

지난해 처음 참여해 ‘완판’ 기록을 낸 독일 베를린 페레스 프로젝트는 올해도 ‘완판’ 했다. 첫날 부스의 작품 16점을 모두 판매했고, 둘째 날부터는 현재 베를린에 있는 작품 목록을 보여주며 판매했다. 도나 후앙카의 대형작품이 네 점 이상 팔렸고 올로 살바도르, 니콜라스 그라피아의 작품도 팔렸다. 영국 작가 레베카 에크로이드의 조각 작품은 국내 첫선임에도 첫날 젊은 컬렉터에게 판매됐다. 페레스 프로젝트 조은혜 디렉터는 “요즘 컬렉터들은 해외 자료를 미리 공부하고 오는 분들이 많다”며 “올해는 작품이 배송되는 중에 출품작 목록을 보고 예약한 손님이 많았다. 좋은 작품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했다.

갤러리현대 부스에서 이건용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는 사람들. 이은주 기자

국제갤러리에선 추상화가 유영국의 ‘작품’(1978)이 7억원에 판매된 데 이어 단색화가 하종현의 3억원짜리 회화 두점이 판매됐다. 한 점당 1000만원인 신진 작가 박진아의 작품도 걸자마자 3점이 완판됐다. 스위스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우고 론디노네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1억5000만원이 넘는 조각과 2억원이 넘는 대형 회화가 모두 팔렸다.

남다른 인기를 과시한 작가는 이건용이다. 리안갤러리에선 1억5000만원짜리 등 이 작가의 작품 5점이 모두 판매됐다. 갤러리현대에서도 2억1000만원짜리 대형 회화가 판매된 데 이어 1000만~2000만 원대 드로잉 작품 19점이 모두 판매됐고, 컬렉터 대기자 명단도 만들어졌다. 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는 “이건용 작품은 없어서 못 팔았다는 말이 맞다. 이우환·박서보 다음 주자로 컬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2030 밀레니얼 세대 컬렉터를 겨냥한 스탠갤러리와 기체갤러리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김정윤(스탠), 옥승철(기체) 등 작가들은 이미 인스타그램 등에서 팬덤을 확보한 이들이 여럿이다. 김정윤은 특히 스트리트 패션과 스니커즈 매니어들 사이에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로, 지난 4월 개인전을 열어 ‘완판’했다. 옥승철 그림은 MBC ‘나혼자산다’에 출연한 래퍼 사이먼 도미닉의 집에 걸려 있어 주목받았다. 갤러리 스탠 송인지 대표는 “개막 후 한 시간 내 작품 90%가 팔렸다. ‘대기’ 주문을 받았다”고 했다.

코로나19 와중에 역대급 흥행을 기록한 아트페어 열기에 미술계에서도 놀라는 분위기다. 아트부산에 앞서 지난 3월 화랑미술제, 4월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도 각각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김은경 갤러리 아키 디렉터는 “코로나19로 여행을 가지 못한 사람들이 이젠 명품 가방보다 미술품을 찾는 분위기다. 최근 집과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젊은 세대는 미술품을 통해 나의 안목과 취향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더욱 강해져 앞으로 미술품에 대한 관심은 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학고재 갤러리 우정우 실장도 “ 컬렉터 층도 기존의 50~60대 중장년층에서 20~40대까지 넓어진 것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며 “예전엔 미술품을 어렵게 대했지만, 요즘엔 더 가볍고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최근 이슈가 된 ‘이건희 컬렉션’ 효과도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트부산 변원경 대표는 “최근 이건희 컬렉션이 알려지면서 미술품 컬렉션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했다”며 “기존 컬렉터들은 더 좋은 작품을 찾는 경향이 뚜렷해졌고, 막 미술품을 사기 시작한 이들도 미술품 구매에 더 관심이 뜨거워졌다”고 전했다. 변 대표는 “과거엔 유명작가의 B급 작품도 많이 샀으나 요즘은 그 작가의 최고 작품을 찾는다”며 “미술품 구매는 개인 사치가 아니라, 작가를 후원하고 사회 전체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란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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