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남의 집 딸이 되어 라면을 먹었습니다

오창경 2021. 5. 1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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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먹구 가실래유?".. 외로운 사람들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창경 기자]

작년 인구주택총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장애인 부부가 있다. 내가 속한 의용소방대에서는 화재 취약 가구를 선정해 화재 보험을 들어주는데, 이들 부부가 선정되어 다시 찾아갔다.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신체 장애가 있는 남편과 정신지체 장애인 아내 순자(가명)씨가 부부로 사는 집이 있다. 남편은 오랜만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을 만났는지, 잘 모르는 상대인 나와의 대화를 반가워했다.

개인정보 때문에 민감한 사항까지 줄줄이 말해주며 내 발길을 자꾸만 잡았다. 자격증만 있는 사회복지사이지만 오지라퍼에 가까운 나는 알량한 지식으로 그의 하소연에 공감을 해주었다. 시골 마을에는 종종 이런 케이스가 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순자씨는 내가 가져간 라면 박스를 만지작거리며 뜯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라면은 끓일 줄 아세요?"
"밥하는 거랑 라면 끓이는 것은 할 줄 알아유. 반찬은 못 혀유."

순자씨한테 물었지만 남편이 대답을 했다. 반찬과 김치는 옆동네에 사는 누님이 가져다주기도 하고 동네에 친척들이 많이 살아서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양쪽 다리가 불편해서 주로 전동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지만 부모에게 물려받은 농지가 제법 있어서 기초수급자는 아니었다. 생활이 윤택하지는 않았지만 먹고 살만은 했다.

사회적인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어도 그들의 깊은 외로움은 '사람의 공감'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사회복지 제도가 그들의 정서적인 공백까지는 채워주는 못 한다.

"라면 먹고 가실래유?"

이 로맨틱한 대사를 이런 사투리로 듣게 될 줄 몰랐다. 라면 박스를 만지작거리던 순자씨는 이미 박스를 뜯었고 냄비에는 물이 끓고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나올 타이밍을 놓쳤다.

"라면만 보면 환장한당게유. 벌써 물 끓이고 있잖유."

나는 그날 순자씨네 집에서 라면을 먹었다. 삼겹살 집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지만 그들이 끓여주는 라면을 함께 먹었다. 라면 맛은 잘 몰랐지만 그들의 정서적인 허기를 채워주기는 한 것 같았다. 의용소방대장이 라면 한 박스를 사가지고 가라고 했던 이유가 있었다.

'일회용 가족'이 함께 먹은 라면 한 그릇   
 라면
ⓒ unsplash
그날 후 나는 다시 한번 라면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며칠 전, 어버이날이었다.

"부탁 좀 하나 들어줄래요?"

적십자 회원인 동네 지인의 전화였다. 적십자에서 어버이날에 면별로 취약계층에게 가져다 줄 라면이 나왔다고 했다. 비혼을 선택한 삶을 살고 있는 친구에게 가끔씩 적십자에서 나오는 구호품을 가져다주고 있는데 친구가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져다주면 친구에게 도움을 받고 산다는 부담이 덜 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어버이날에 가장 외로운 친구에게 라면이라도 가져다주고 싶다는 친구의 부탁이었다. 그렇게 찾게 된 비혼의 그는 물론 나도 아는 사이였다.

한때 지리산에서 수행자의 삶을 살다가 환속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구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치매를 앓는 모친은 때론 행동이 괴팍해졌다. 끼니 때마다 아들이 해주는 밥은 먹지 않겠다고 밥상을 밀어내고 고성을 지르곤 했다.

살아온 생의 대부분을 잊었지만 장가도 가지 않고 수행자도 되지 못한 아들에 대한 회한만은 잊지 않은 것일까. 모친은 비혼으로 환갑이 넘은 아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사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내가 찾아갔던 날도 모자의 말다툼이 한창이라 듣고 있기가 민망한 상황이었다.

"엄마, 딸이 왔네. 라면도 사가지고 왔어."

그가 나한테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졸지에 그 집 딸이 되어 버렸다.

"이게 워쩐 일이다냐? 서울서 내려올라믄 먼디 밥은 먹고 온겨?"

앉은 걸음으로 다가와 손을 내미는 노모의 손을 잡아주었다.

"얘야, 라멘이라도 끼리라. 먹고 가게..."

딸(?)의 등장으로 모자의 말다툼은 일단락이 되었고 조촐한 라면 밥상이 차려졌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집의 딸이 되어 라면 한 그릇을 맛있게(?) 먹어야 했다. 노모의 따스한 눈길과 아들의 애처롭고 미안해 하는 눈빛을 받으며 라면 한 그릇을 비웠다.

노인 장기 요양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었지만 결혼도 하지 못하고 수행자도 되지 못한 그는 어머니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마지막까지 직접 모시고 싶어서 자처한 일이라고 했다.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내 가족과도 잘 먹지 않는 라면을, 이런 사연을 가진 가족들과 먹었다. 얼떨결에 그들의 일회용 가족이 되어서 함께 먹는 라면 밥상을 받았다.

라면은 로맨틱한 사랑 고백용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에게 정서적인 허기를 채워주는 한 끼가 되기도 한다.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라면의 세계를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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