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골든글로브 보이콧..낡은 권위주의에 무너지는 美 평론 권력

김용현 2021. 5. 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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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성·인종차별 논란에 오스카·그래미·골든글로브 차례로 논란..개혁조치에도 시청자 이탈로 권력해체 가속화
그래이 어워즈 홈페이지 캡처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이었던 그래미 어워드와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미국 대중음악계와 영화계를 각각 대변해 온 시상식의 의사결정은 밀실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부패했고, 대중문화의 바로미터 역할을 상실했다고 대중들이 느끼기 때문이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매년 방송해온 미국 NBC 방송은 지난 10일 내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중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골든글로브의 폐쇄성과 불투명성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다.

지난 2월 제78회 시상식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주관 기관인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의 비리 돈 잔치를 폭로한 것이 기폭제였다. 지난 HFPA의 회원들은 2019년 패러마운트 영화사의 협찬으로 프랑스 파리에 호화 외유를 다녀왔다는 의혹과 더불어 지난 2년 동안 회원들이 HFPA로부터 받은 200만 달러가 윤리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HFPA 회원 중 흑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영화 '미나리' 감독과 출연 배우들. AP연합뉴스

영화 ‘미나리’가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 영화로 분류되면서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던 이유기도 하다. 작품상 후보 등 본상 부문 모두에서 배제되면서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은 후보에 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골든글로브의 부패에 대한 문제 제기는 들불처럼 번졌다. 스칼렛 조핸슨은 성명을 통해 “과거 HFPA 회원들로부터 성차별적인 질문을 받았고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며 보이콧을 촉구하기도 했으며, 톰 크루즈는 과거 골든글로브에서 받은 트로피 3개를 모두 반납하기에 이르렀다. 워너브러더스를 비롯한 할리우드 대형 제작사와 영화 홍보 대행사들의 보이콧 선언도 잇따랐다.

골든글로브는 문제가 불거지자 이달 초 회원 숫자를 늘리겠다는 것을 개혁안으로 들고 왔다. 올해에는 20명, 내년까지 50% 회원 숫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로 인한 부패, 인종차별 등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맷 데이먼은 이를 두고 지난 13일 “골든글로브가 사라진다고 슬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골든글로브가 HFPA의 부패로 망가진 것처럼 그래미 어워드는 ‘비밀위원회’의 폐쇄성이 스스로를 망쳤다. 마땅히 언급되거나 후보에 올라야 하는 아티스트들이 번번이 좌절하면서다.

캐나다 가수 위켄드. 인스타그램 캡처

캐나다 출신 가수 위켄드(The Weeknd)는 2020년 ‘블라인딩 라이츠(Blinding lights)’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무려 57주나 10위권에 머무르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래미 어떤 부문에서도 후보로 오르지 못했다. 위켄드는 “그래미는 부패했다”고 울분을 토하고 그래미 보이콧을 선언했다. 원 디렉션 출신의 제인 말리크는 ”뇌물을 주지 않으면 후보로 오를 수 없는 시상식”이라고 일침했다.

1989년 조직된 그래미의 ‘비밀 위원회’는 신원이 비밀에 부쳐진 15~30명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이들은 후보 지명 과정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가수 방탄소년단. 하이브 제공

방탄소년단의 수상 불발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방탄소년단은 2020년 두 장의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앨범과 싱글 차트 1위 세 곡 등의 성적을 냈지만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만 후보로 선정되고는 수상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미는 흥행을 위해 방탄소년단의 시상식 공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시상식 내내 ‘곧 BTS가 나온다’고 광고하면서 가장 마지막에야 ‘다이너마이트(Dynamite)’ 무대를 볼 수 있었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는 논란 끝에 지난달 30일 비밀 위원회를 없애고 1만1000여 회원의 투표로 후보를 지명하는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개선안을 제시했다.

평론 권력의 해체 수순을 밟을지 아니면 개혁을 택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대중문화계의 평론 권력에 사람들이 점점 귀를 닫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미는 올해 미국 내 시청률 2.1% 평균 880만명의 시청자를 모으면서 지난해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만 해도 시청률 5.4%로 평균 1870만명의 시청자를 동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시청률에 반해 오히려 그래미에 대한 관심은 감소한 것이다.

골든글로브의 추락은 더 심각하다. 올해 690만명을 모으면서 지난해보다 63%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1840만명이 시상식을 시청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영화 산업이 얼어붙으면서 콘텐츠의 양과 질이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수용자들이 TV 앞 권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에선 벗어난 모양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로이터연합뉴스


골든글로브 논란에 앞서 백인우월주의 논란에 휩싸인 아카데미 시상식은 몇 년간 지속적인 개혁 조치를 감행했다. 지난 2015~2016년 오스카 연기상 후보가 모두 백인으로 선정되면서 ‘너무나 하얀 오스카(#OscarsSoWhite)’ 운동이 전개됐다. 그러자 아카데미 측은 투표권이 있는 소수 인종 회원 비율을 2018년 16%까지 늘렸다. 여기에 59개국 출신 영화 관계자 842명을 새 회원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다만 정치적인 올바름을 선택하는 것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시청한 사람은 985만명으로 지난해 2360만명에 비해 58% 감소했다. 오스카가 ‘정치적 성향’을 띄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않다. 다양성을 포용하면서 사회적 문제들을 담은 작품을 조명하는 것이 호평을 받는 동시에 인기를 떨어뜨리게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

이를 보면, 다양성을 말하면서 경쟁 논리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대중문화 시상식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번 미국 영화계 인종차별 논란의 최전선에 섰던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최고가 아닌 최중이 되고 싶다”고.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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