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KCC와 손잡은 라건아 향한 '이중잣대'

이준목 2021. 5. 16. 12: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장] '국내 선수 자격' 입장 내세운 KBL, 귀화제도 본래 취지 돌아봐야

[이준목 기자]

귀화선수 라건아가 다시 한번 전주 KCC와 손을 잡고 3년 더 KBL 코트를 누비게 됐다. KBL은 지난 13일 10개 구단을 대상으로 특별귀화선수 드래프트 신청을 마감한 결과, KCC만이 단독으로 라건아 영입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14일 예정된 드래프트 행사는 취소됐고 KCC와 라건아간 계약이 진행됐다. 라건의의 계약 기간은 2024년 5월까지 3년이다.

라건아는 2012년 리카르도 라틀리프라는 이름의 외국인 선수로 KBL에 진출했고, 2018년 초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같은 해 국제농구연맹(FIBA)으로부터 국가대표 자격을 승인받아 현재 남자농구 대표팀의 주축 멤버로 활약중이다. 귀화 후에는 2018~19시즌 특별귀화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뛰다가 2019년 11월부터 트레이드로 KCC 소속이 됐다.

라건아는 KBL에서만 무려 통산 9시즌을 활약하며 4회의 정규리그와 챔프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소속된 세 팀(현대모비스, 삼성, KCC)를 모두 1차례 이상 챔프전으로 이끌었고, 플레이오프도 삼성 시절 2017~18시즌 단 한 시즌만 빼고는 빠짐없이 개근했다. 올 시즌도 정규리그에서 평균 14.3점 9.1리바운드)을 펼치며 KCC를 정규시즌 1위와 챔피언결정전에 진출시키는 데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다.

라건아가 앞으로도 최소 3년간 KBL에서의 경력을 이어가게 되면서 누적 기록면에서 프로농구의 역사를 새롭게 쓸 가능성도 높아졌다. 라건아는 현재 통산 득점은 8,554점으로 역대 7위에 올라 있다. 현재의 페이스를 감안할 때 역대 KBL에서 서장훈-애런 헤인즈-김주성-추승균 등 단 4명밖에 없었던 1만 득점 고지를 밟게 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라건아는 KBL 역대 외국인 선수 누적 득점 1위 헤인즈(1만 878점)와는 2300점, 통산 1위 서장훈(1만 3231점)과는 4677점 차이다. 라건아가 앞으로 KCC와의 3년 계약기간 동안 54경기 기준으로 평균 15점 정도만 꾸준히 올린다고 해도 마지막해에는 헤인즈의 기록은 넘어설 수 있다. 또한 라건아가 얼마나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며 오랫동안 KBL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느냐에 따라 서장훈의 기록 경신도 도전해볼 만하다.

리바운드 기록은 당장 다음 시즌에 경신이 유력하다. 라건아는 현재 정규경기서 4893개의 리바운드를 잡으며 1위 서장훈의 5235개를 불과 342개 차이로 추격하고 있다. 커리어 평균 10.9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한 라건아이기에 부상만 아니라면 다음 시즌 후반기쯤에는 서장훈의 기록을 추월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라건아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동메달, 2019 농구월드컵 본선출전과 25년만의 세계대회 1승 달성 등에 기여했다. 빅맨으로서는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체격과 투쟁심을 바탕으로 내노라하는 외국 선수들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증명했다. 향후 3~4년은 대표팀의 에이스 자리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한국농구에서 큰 업적을 세운 라건아임에도 그의 신분을 둘러싼 국내 농구계의 이중잣대는 아쉬움을 남긴다. 검증된 실적과 여전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라건아 영입을 위한 드래프트에 구단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것은 비용 문제와 복잡한 특별 규정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라건아는 현재 귀화를 완료한 엄연한 한국인이지만 KBL에서는 완전한 국내 선수도, 그렇다고 외국인선수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현재 KBL은 전력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 라건아를 국내선수가 아닌 외국인선수로 분류하고 있다). 라건아를 영입하는 구단은 외국인 선수 2명을 추가 보유할 수 있지만 샐러리캡(1명 45만 달러, 2명 합계 55만 달러)이 제한되는 핸디캡을 감수해야 한다. 라건아가 없다면 외국인 선수에게 투자할수 있는 연봉 최대치는 1인 최대 65만 달러까지 올라간다.

만일 KCC마저 라건아를 지명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에서 뛰기 위하여 귀화까지 한 데다 대표팀의 에이스인 선수가 다시 타 리그를 전전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귀화선수라는 이유로 소속팀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라건아와 KCC의 이번 계약이 끝나면 만 35세가 된다. 그동안은 2023-24시즌 이후가 될 계약 만료 시점인 2024년에는 만 35세로 국내선수 자격을 얻는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KBL이 지난 14일 라건아와 KCC의 계약 체결식에서 이를 반박하면서 논란을 예고했다. KBL 측은 계약서에 두 차례 드래프트를 하면서 특별귀화선수 관리규정을 따른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35세 이후에 국내선수로 분류한다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밝힌 것이다. 

2018년 라건아가 특별귀화를 통해 국가대표가 되는 절차를 밟을 당시 35세가 되면 국내선수 자격이 주어진다고 KBL과 구단들이 확인됐던 부분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KBL은 KCC와의 3년 계약이 끝날 무렵에 10개 구단 이사회를 통해 라건아의 신분 문제 등 새로운 계약 관련 내용을 논의할 것이며 그때가서 국내선수로 볼지, 외국인 선수로 볼지에 대해서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3년 뒤가 되어도 라건아의 신분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는 이는 귀화선수에 대한 역차별에 해당한다. 단순히 돈을 많이 받고 뛴다고 해서 직업선택의 자유나 국내 선수로서의 정당할 권리마저 빼앗을 수는 없다. 이것이 귀화제도의 본래 취지에 맞는 운영인지 한국농구계가 이 질문에 성의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할 때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