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인, 강팀·강타자·에이스 맞대결 선호..타고난 승부사
2021 KBO리그는 원태인(21·삼성)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감은 원태인이 보여주는 괴력의 원천이다.
원태인은 지난 13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의 주중 3연전 3차전에 선발 등판, 7이닝 동안 5피안타 4볼넷 무실점을 기록하며 삼성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4월 13일 대구 한화전 이후 6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3자책점 이하 투구)를 기록했고, 모두 승수를 챙기며 시즌 6승을 마크했다. 다승 부문은 2위권(4승)에 2승 차로 앞서 있다. 평균자책점은 종전 1.18에서 1.00까지 낮췄다. 0점대 평균자책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놀라운 성장세다. 원태인은 1차 지명(2019) 유망주다. 데뷔 2년 차(2020년)에 풀타임 선발을 소화할 만큼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 이런 배경과 전력을 고려해도 예상보다 훨씬 가파른 성장세다. 2017시즌 데뷔 3년 차였던 롯데 박세웅이 전반기에 다승 1위(평균자책점 2.81)에 오르며 유망주 돌풍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원태인은 당시(2017년) 박세웅이 7경기에서 남긴 성적(4승2패·평균자책점 1.91)보다 더 빼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원태인은 13일 KT전 호투 뒤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난해와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인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패스트볼의 구위와 제구력이 좋아졌고, 슬라이더를 스트라이크를 잡는 공뿐 아니라 결정구로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구위와 결정구가 생기자, 다른 구종의 구사 효과도 좋아졌다. 특히 체인지업은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 던져도 상대 타이밍을 완벽하게 빼앗아낼 만큼 위력이 배가됐다.
멘털 성장도 주목된다. 원태인은 이날 인터뷰 내내 설렘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친한 사이라고 전한 KT 간판타자 강백호와의 승부에서 엿보인다. 원태인은 삼성이 1-0, 1점 앞선 7회 말 2사 1·2루 위기에서 강백호를 상대했다. 이 승부에서 그는 살짝 웃어 보였다.
이에 대해 원태인은 "(강)백호 형은 현재 KBO리그 최고 타자(타율 0.403·12일 현재 1위) 중 한 명이 아닌가.. (안타나 홈런을) 맞더라도 너무 긴장하지 않고 즐기려고 했다. 자신감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피해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만약 (포수) 민호 형이 백호 형을 거르고(고의4구) 가자고 했다면 거부했을 것 같다. 나는 백호 형과 대결하고 싶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투구 수는 103개. 체력과 근력 저하가 우려되는 숫자다. 원태인은 "나는 위기에서 구속이 더 올라가더라. 물론 1구, 1구 전력으로 던지지만 유독 그런 (위기) 상황에서는 아드레날린(부신수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생긴다고 할까. 백호 형이 상대였기에 힘이 더 났다. 물론 직구는 1개(3구 승부 중)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올해는 6·7회 더 좋은 공을 던진다고 생각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에이스급 맞대결을 즐긴다. KT전 상대는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 현재 1선발이자 지난해 15승 투수다. 원태인은 "솔직히 상대 에이스랑 붙는 게 더 재미있다. 나는 잃을 게 없다. 오히려 힘겨운 경기 양상을 통해 배움이 있을 것이다. KT전도 에이스랑 붙어서 더 좋은 투구가 가능했다. 정작 친구나 또래와의 승부가 더 부담스럽다"라고 웃어 보였다.
박빙 상황을 즐기는 투수. 야구팬이라면 같은 날(13일) 몇 시간 전에 비슷한 말을 한 투수를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메이저리거 류현진(토론토)이다. 류현진은 애틀란타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3승을 거뒀다. 이날 애틀란타 선발은 신성 맥스 프리드도 6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류현진과 '투수전'을 합작했다. 류현진 경기 뒤 "이런 상황이 조금 더 집중력이 생긴다. 점수 차이가 벌어지면 나도 모르게 설렁설렁 던질 수 있다"라고 했다.
류현진은 "모든 투수가 투수전에서 더 잘 집중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그런 상황에서 1점을 주는 데 부담을 느끼는 투수도 많다. 일단 원태인은 현재 한국인 투수 중 최고로 평가받는 류현진과 비슷한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원태인은 이제 3년 차다.
원태인은 2019년 3월 30일 두산과의 홈 데뷔전에서 삼성이 2-1로 앞선 9회 초, 선발 백정현에 이어 마운드에 올랐다. 데뷔 3경기 만에 세이브 상황에 나선 것.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오재일에게 역전 3점 홈런을 맞고 블론 세이브와 패전을 기록했다. 이 경기 뒤 '공 하나의 소중함'이라는 문구와 교훈을 얻은 날짜(2019.3.30)를 모자챙 안쪽에 새겼다. 원태인은 이튿날(3월 31일) 경기도 9회에 마운드에 올라 전날 상대한 박건우·김재환·오재일을 상대로 삼자범퇴 이닝을 만들었다.
올 시즌 원태인은 순항 중이다. 좋은 결과가 나오다 보니 자신감이 붙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선천적인 승부사 기질도 비범하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다. 박빙 상황을 즐기고, 더 좋은 상대와 맞붙길 바란다. 2021년을 자신의 시간으로 만들고 있는 원태인. 가장 큰 원동력은 남다른 투쟁심이 아닐까.
안희수 기자 An.hee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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