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사천에서 우보 박남조 시인 '시비' 제막식 열려
뉴스사천 강무성 2021. 5. 1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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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시 남양동 출신 시조시인 우보 박남조(朴南祚, 1909~1989) 선생을 기리는 시비 제막식이 스승의 날인 15일 오후 1시 30분 신수도 선착장 일원에서 열렸다.
황인성 위원장은 "박남조 선생은 삼천포의 문화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에도 신수도에서 13년 동안 야학과 계몽운동을 하며 주민과 함께 하신 분"이라며 "우보 선생이 발자취와 삶을 기리고, 후세에 그 뜻을 알리기 위해 시비를 건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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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신수도 주민 '야학·계몽'에 힘쓴 선각자
[뉴스사천 강무성]
▲ 남양동 출신 시조시인 우보 박남조(朴南祚, 1909~1989) 선생을 기리는 시비 제막식이 스승의 날인 5월 15일 오후 1시30분 신수도 선착장 일원에서 열렸다. |
ⓒ 뉴스사천 |
[뉴스사천=강무성 기자] 경남 사천시 남양동 출신 시조시인 우보 박남조(朴南祚, 1909~1989) 선생을 기리는 시비 제막식이 스승의 날인 15일 오후 1시 30분 신수도 선착장 일원에서 열렸다.
'우보 박남조 선생 시비 건립 추진위원회(위원장 황인성)'는 이날 선생의 시비를 세워, 우보 박남조 선생의 발자취를 되짚고 그의 정신을 기렸다.
▲ 기념사를 하고 있는 황인성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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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성 위원장은 "박남조 선생은 삼천포의 문화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에도 신수도에서 13년 동안 야학과 계몽운동을 하며 주민과 함께 하신 분"이라며 "우보 선생이 발자취와 삶을 기리고, 후세에 그 뜻을 알리기 위해 시비를 건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 우보 박남조 시인 시비 |
ⓒ 뉴스사천 |
▲ 우보 박남조 시인 시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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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조 선생은 경남사범학교 3학년 때 항일 운동을 하다 필화 사건으로 퇴학당한 후, 일제강점기 말까지 13년 동안 신수도에서 보명학회(普明學會)를 세워 신수도 주민 500여 명을 대상으로 야학과 계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 1990년 마루문학 창간호에 실린 우보 박남조 시인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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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인은 193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젊은 開拓者(개척자)'라는 단편소설로 입선하며 등단했다. 저서로는 1979년에 발간한 시조집 <바닷가에 살면서>, 1985년에 삼천포 민요를 손수 채집한 <내 고향(故鄕) 민요(民謠)>가 있다. 1955년 삼천포문인협회장, 1958년부터 1964년까지 3,4,5회 예총삼천포시지부장을 역임하는 등 사천 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오던 박 시인은 1989년 지병 악화로 타계했다.
▲ 박남조 시인 시비 건립추진위 단체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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