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날 닮아서 시들시들 한 거니?

김정연 2021. 5. 1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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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맞춤돌봄서비스 어르신들의 반려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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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 기자]

 시들시들한 게 아픈 날 닮은 것 같아 많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단다.
ⓒ 김정연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진행 전 선정조사 상담을 위해 어르신을 방문했을 때 우울하다고 말을 하지만 자신의 우울증은 인정하지 않았다. 모두 비슷한 말씀을 하시며 우울증이라고 하면 격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었다. 처음 경미한 상태에서는 그래도 내가 좀 우울한 것 같아, 마음이 좀 거시기 할 때가 있지, 이런 게 우울증이라고 하면 우울증이라고 볼 수 있지 라고 말씀하셨다.

노인 우울척도검사 결과에서 총 15점 중 11점 이상으로 우울점수가 중증우울로 나타났는데도 대부분이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난 우울증 없어, 내가 환자여? 그런 거 하려면 다음부터는 오지 마!"
"나한테 그런 말 하려면 난 이제 이런 거 안 할 거여."
"난 글씨 같은 거 쓸 줄 몰라, 나보고 이런 거 하라고 하지 마."

오늘은 반려식물에게 이름을 지어줄 거라고 하니 호통을 치며 안 하겠다고 했다. 준비물을 하나둘씩 꺼내놓고 '안 하시면 대신 해드리겠다'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슬그머니 네임펜을 손으로 잡으셨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뭐라 할지 모르겠다며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혼자말처험 "우리 손자 이름이 영희, 청수여" 라며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이름을 지어내는 것도 사연도 모두 다르다.

"우리 손주들이 미국에 있어서 이름을 자주 못 불러, 그렇게 손주 이름으로 해야겄네."
"나는 애들이 잘되면 그것으로 됐어, 애들이 먼저지, 아들딸 이름으로 지어줄 거여."

안한다고 뒤돌아서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버님은 그렇게 손주들 이름을 불러주셨고, 자녀들 걱정이 늘 자녀 이야기만 하시던 어머니는 아들 딸 이름을 붙여주며 정겹게 불러주셨다.

"야는 나 닮아서 시들시들 한가벼, 물도 잘 주고 햇볕도 쐬어 줬는디 왜 시들시들한 건지 모르겠네, 너는 날 닮아서 시들시들한 거니? 쑥쑥 잘 자라라고 '쑥쑥이'라고 지어줄게 쑥쑥 잘 자라거라."

최근 몸이 아파서 고생하시는 어머니는 화초가 아픈가 보라며 자신을 닮아 그런 것 같다고 물도 더 잘 주고 햇볕도 잘 쐬어서 튼튼하게 잘 키우겠다며 이름을 쑥쑥이, 튼튼이로 지어주셨다.

자녀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항상 기쁜 마음으로 너에게 물을 주는 시간을 기다린단다.
ⓒ 김정연
 
2020년 1월에 처음 만난 어르신은 건강하게 웃음으로 맞아주시고 집에 온 손님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벗지 않기에 아무것도 안 주셔도 된다고 했지만 극구 "그냥 가면 내가 화낼거여, 다신 오지 마!"라며 뒤따라 나와서 차에 오른 손에 요구르트를 쥐어 주셨다.

작년 봄 예쁜 미소로 맞아주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최근 찾아뵈었을 때는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겨우 입가에 미소만 살짝 띄운 모습이었다. 2021년 초에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입원기간이 끝나서 집에 돌아오신 후 재활치료를 하고 계시는 중이다.

최근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한 달간 입원하셨다가 자녀 집에 머물다 돌아오신 어르신은 처음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할 때만 해도 "내가 무슨 노인이라고 이런 서비스를 받아, 나 아직 멀쩡혀, 아직도 정정해"라며 장담하었다. 건강한 목소리와 밝은 얼굴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고 목소리에 힘이 빠지고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우울감이 높아지셔서 돌아오셨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프시다거나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시는 경우가 발생하면 마음이 너무 편지 않다. 일 년 넘게 겪어본 바에 의하면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우울감이 높아져서 돌아오시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며 갑자기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거나, 자녀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아픈 것조차 미안하다며 자녀에게 알리기를 꺼려하시고 숨기는 경우도 많았다. 절대 연락하지 말라며 재차 삼차 확인을 받으셔야 안심을 하셨다.

건강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기를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한참을 고민하다 드디어 이름을 지어주셨다.
ⓒ 김정연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전담사회복지사다. 전담사회복지사 한명이 담당하는 대상자는 240여 명을 맡고 있다. 그 중에서 우울증 검사 결과를 토대로 대상자를 선정하여 우울예방프로그램을 8회기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우울예방프로그램은 한국형노인우울척도간편검사(K-SGDS) 결과 총 15점 중에 6-15점에 해당하는 경증, 중증 우울증 대상자에게 3월 말부터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첫 회기를 시작하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상자 중 단 한명이라도 웃음을 찾으시고, 뒤돌아섰던 관심을 보인다면 한명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회기를 진행하고 나니 많은 분들이 조금씩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뒤돌아섰던 분도 '뭘 이런 걸 다하냐'며 핀잔이셨지만 네임펜을 손에 들어 글씨를 순수 적으셨다. '내가 환자냐'고 화를 내셨던 분은 손주가 보고 싶다며 손주 이름을 지어주셨다. 우울증이 심해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하셨지만 지금은 반려식물 보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지낸다고 말씀하셨다.

'집에 오는 것은 싫으니까 그냥 전화만 하면 안 돼'라고 하셨지만 지금은 30분 동안 함께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거듭되는 회기마다 점점 더 참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길 바라며 오늘 하루 누군가가 다쳤다거나, 병원에 입원하셨거나, 위급상황이 발행하지 않은 것에 감사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한 주를 끝마쳤다. 오늘도 대상 어르신들이 현재 건강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화분을 보면서 그림을 직접 그리시겠다며 꽃이 만개한 화분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셨다.
ⓒ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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