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징역' 정인이 양모, 판결문에 드러난 '잔인함'
'징역 5년' 양부 무책임함도 강하게 질타
[아시아경제 유병돈 기자]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들은 헌법상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무참히 짓밟은 비인간적인 범행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3부 이상주 부장판사는 14일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모 장모씨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단호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어내려갔다.
이 부장판사는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입양된 후 피고인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피고인의 잔혹한 정신적·신체적 가해 행위로 인하여 가늠할 수 없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공포심을 겪다가 피고인에 의하여 마지막 생명의 불씨마저 꺼져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 이 부장판사는 “피고인을 일반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함으로써 피고인이 저지른 이 사건 범행들에 대한 상응한 책임을 묻는 한편 피고인에게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참회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므로, 피고인에게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면서 “피고인 장OO을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이 고심 끝에 공소장 변경까지 해가며 적용했던 장씨의 살인죄를 포함해서다. 판결문에 드러난 양부모의 악행은 끔찍했다. 재판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이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읽어내려갈 때마다 오열했다. 살인죄가 인정될 때는 방청석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살인의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살인죄 인정한 재판부
재판부는 47페이지에 이르는 판결문의 상당 부분을 장씨가 정인이 복부를 가격해 어떻게 사망에 이르게 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할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다른 둔기 등으로 피해자의 복부를 가격하였다면 피해자의 배에 멍 등의 외관상 손상이 관찰돼야 하는데, 피해자의 복부에는 멍 등의 손상이 관찰되지 않는다”면서 “피고인이 손이나 발 등의 신체 부위로 피해자의 복부에 둔력을 가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의 사망 당시 운전을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손을 사용하기 불편한 상황이어서 손으로 피해자의 췌장 절단이나 장간막을 파열시킬 정도의 강한 둔력을 가하기는 어려운 상태였으므로, 피고인이 손으로 피해자의 복부에 둔력을 가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가 누워 있는 상태에서 강력한 둔력이 배 앞쪽에서 작용해 췌장 절단 및 장간막 파열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고, 다른 장기가 파열되지 않고 췌장만 절단된 점 등에 비춰보면 피해자의 복부를 발로 밟은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는 약 16개월의 여아인 피해자의 복부를 발로 강하게 밟았고, 복부 부위에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장기들이 위치하고 있어 피해자의 복부를 발로 강하게 밟을 경우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거나 예견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살해할 확정적 고의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살릴 마지막 기회조차 막았다”…무책임했던 양부
재판부는 양부 안씨에 대한 공소사실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안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양부로서 아내의 양육 태도와 피해자의 상태를 누구보다 알기 쉬운 지위에 있었음에도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학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납득할 수 없는 변명만을 하고 있다”면서 “아내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가 3회나 이뤄졌음에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아내의 기분만을 살피면서 학대를 방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질타했다.
또 “오히려 아내의 일부 범행에 동조해 함께 피해자를 자동차 안에 유기하기도 했다”면서 “아내의 학대 행위를 제지하거나 피해자에게 치료 등 적절한 구호 조치를 했더라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비난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해자의 사망 전날 어린이집 원장이 피해자의 악화된 건강 상태를 설명하고 피해자를 꼭 병원에 데려갈 것을 강하게 당부했음에도 이러한 호소조차 거부했다”면서 “피해자를 살릴 마지막 기회조차 막아 버린 점을 고려하면 엄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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