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상실과 발견

2021. 5. 15.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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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 미션영상부장


이 사람처럼 자신의 몸에 숱한 만성질환을 지니고 살았던 이가 또 있을까. 장중첩증으로 장 절제를 했고 자궁내막증에 따른 자궁 적출, 그리고 유방암으로 인한 절제 수술을 받았다. 망막 출혈 이후엔 세 번의 눈 수술을 받았는데 한쪽 눈은 실명했다. 신장은 25%밖에 기능하지 못했고, 장 신경세포가 죽어 있어 항상 네 종류의 약을 먹었다. 수십 년간 팔과 다리 수술을 받았다. 다리뼈는 퇴행해 무릎 아래 신경은 죽어 있었다. 어릴 적 앓았던 홍역 후유증으로 췌장이 망가져 45년을 당뇨 합병증과 싸워야 했다. 지난달 73세로 별세한 미국의 영성 신학자 마르바 던의 ‘고통 목록’이다.

던은 육신의 고통에도 캐나다 밴쿠버 리젠트칼리지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그의 책 ‘마르바 던의 위로’ ‘안식’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 ‘약할 때 기뻐하라’ 등은 자신의 질병을 공개하며 써 내려간 책들이다. 그는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기쁨과 희망을 찾았다. 그는 2007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고통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건강 문제로 내 현주소를 알게 됐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됐고 사람들도 의지한다. 내가 배운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고통은 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주권 가운데 행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과연 우리도 고통 앞에서 기다리며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있을까. 최근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노라면, 나의 경우 꽤 오랜 기다림이 필요해 보인다. 서울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된 손정민씨, 양부의 학대로 의식 불명에 빠진 2세 입양아, 음주 운전자에 의해 사망한 대만 유학생, 계속되는 위험의 외주화로 스러지는 제2의 김용균씨 소식은 착잡하기만 하다. 하루가 멀다고 들려오는 백신 접종 이후의 가슴 아픈 소식들, 그리고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살아 있었을 1884명의 생명(12일 기준)은 오늘 대한민국이 마주한 고통이다.

슬픔의 소식은 주변에서도 들려온다. 백신을 맞고 사경을 헤매는 지인 친척,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지인의 아버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신 친구의 어머니, 그리고 우리 곁을 영영 떠난 후배까지. 마음을 찢어놓는 소식에 즉시 기도를 드렸다. 주변 목회자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했다. 감사하게도 그들은 곧장 기도해주셨다. 하지만 치유와 소생을 바라는 이 모든 기도에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병상에 누워있었고 나사로처럼 무덤에서 나오지도 못했다. 하나님은 왜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듣기는 하는 걸까. 불온한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던은 어땠을까. 그녀 역시 같은 고민을 했다.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라는 책에서 던은 자신이 고통을 당하면서 문득문득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더 큰 이야기에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더 큰 이야기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멸시하지 않으며, 예수께서는 우리가 겪은 온갖 고난 속에 친히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던은 이렇게 고백했다.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그분의 고난보다 훨씬 크듯이, 우리도 그 이야기에 동참하면 슬픔에 함몰되던 데서 벗어날 수 있다.”

고금의 무수한 신자들은 더 큰 이야기의 증인들이다. 그 이야기는 1000년 로마 제국을 뒤바꿔놓기도 했다. 내세관이 없던 로마인들은 콜로세움에서 사자의 먹이가 되면서도 부활의 소망 속에 평온히 죽어가는 기독교인들의 얼굴을 보고 경악했다. 그들은 판테온(만신전·萬神殿)의 천장 구멍에서 내려오는 빛보다 더 밝은 광채를 보았다.

최근 짙은 황사가 한반도를 뒤덮었다. 다음 날엔 청정한 날씨로 바뀌었다. 같은 하늘 아래 상반된 날씨가 교차하는 게 신기했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슬픔과 기쁨이, 온탕과 냉탕이, 저주와 축복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일까. 슬퍼하고 있는 분들에게 주님의 위로를 전한다.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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