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러운 교사 조직 '암약' 의혹.. 진실은?

이도경 2021. 5. 15.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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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靑 게시판 '페미니즘 주입교육' 주장 파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밀스러운 교사 조직이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에게 암암리에 페미니즘 주입 교육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파문이 커지고 있다. 해당 청원은 어린이날이었던 지난 5일 올라와 ‘동의’ 20만명을 훌쩍 넘겨 정부 공식답변 요건을 충족한 상태다. 학부모 단체 등은 진위를 파악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교육부는 진상 조사를 하고 있으며, 경찰도 교육부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아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

“방해 학생 왕따, 부모 없는 아이 공략”

청원 내용만 놓고 보면 충격적이다. 제목은 ‘조직적으로 학생들을 세뇌하려 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수사, 처벌, 신상공개를 청원합니다’이다. 청원인은 “교사 집단 또는 그보다 더 큰 단체로 추정되는 단체가 은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인 사상(페미니즘)을 학생에게 주입하고자 최소 4년 이상 암약하는 정보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해당 교사 조직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내용을 캡처해 올렸다.

공개 내용은 심상치 않다.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비밀 인터넷 사이트가 있는데 기술적 문제(트래픽)로 로그인 없이 외부에서 볼 수 있는 임시 사이트가 만들어졌으며, 이 임시 사이트를 청원인이 우연히 접속한 것으로 보인다. 캡처 사진을 보면 “트래픽 이슈로 만들어진 임시 사이트” “원래 있던 자료를 임시 저장한 것이니 외부 유출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이트에 올라 있는 글의 교육 방식은 폭력적이다. 2019년 3월 25일 게시물을 보면 “한 명 이상인 집단이면 영상 시청 시 헤드폰을 착용하거나 대화를 자제토록 해 영상 얘기 및 토의를 방어하라. 오롯이 학생이 있는 그대로 잘 흡수하여 싹이 잘 자랄 수 있게 반복해서 지도 편달”이라고 했다. 2020년 1월 5일 게시물로는 영상 내용을 추정할 수 있다. “6~7세 미취학 아동과 저학년은 글보다 시각적 자료를 꾸준히 반복적으로 보여줘야” “영상 속 내용(시위·집회영상)을 자연스럽게 흉내 내도록 놀이로 유도” 등이라고 쓰여 있다. “교사는 청소년기 이전 아이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 때로는 아이들 간의 정치(?)에도 개입”이라고 했다. 청원인이 ‘세뇌’라고 주장하는 근거들이다.

학생 통제 방식과 학생 포섭 방식을 다룬 부분도 상식을 벗어난다.

2018년 9월 27일 게시물을 보면 “제어가 되지 않는 학생일 경우 (중략) 자연스럽게 따돌림당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 “되도록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부모가 있어도 부재하다고 판단되는 아이들(조부모 양육 또는 보육원)”이라고 했다.

사이트의 글을 토대로 추정하면 해당 조직은 교사 동아리 수준으로 보기 어렵고(“교사와 같이 회원 수가 300명 넘을 경우” 등), 자금력이 있으며(“학교 밖 교육 시 장소 대여료는 본부 전액 부담” 등), 교육 프로그램 조직이 체계적(여러 자체 교육자료가 소개돼 있고, ‘시니어’로 불리는 관리자 존재)이다. 호칭에서 여성을 앞세우는 ‘학모부’ ‘모부’와 통상적인 ‘조부모’를 혼용하는 점도 눈에 띈다.

교육부, 거짓에 무게… 하지만 파장에 ‘촉각’

교육부는 해당 사이트가 거짓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청원인이 “현재로서는 사실인지 아닌지 명백하게 확인이 되지 않았다”라고 언급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울러 청원인이 누구인지 아직 파악되지 않았고, 캡처 자료가 조악하며 교사들이 통상적으로 쓰는 용어와 거리가 있다는 점도 거짓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교육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실 관계자는 “요즘 가정 형태가 다양해 양육자란 표현을 많이 쓰는데 게시물에 등장하는 ‘모부’ ‘학모부’ 같은 단어는 처음 본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교사들이 비밀 조직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 관계자는 “동아리나 연구회 등을 만들어 얼마든지 당당히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데 (페미니즘을) 국가보안법으로 금지한 것도 아니고 지하 조직을 만들 이유를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피해 제보가 없다는 점도 신빙성을 낮춘다고 했다. 정부와 시·도교육청으로 들어오는 민원과 제보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교육부 교원정책과 관계자는 “청원 올라오고 1주일 지났다. 철저히 조사해 엄단하라는 민원은 여럿 있었지만 ‘내 자녀가 당했다’ ‘우리 선생님이 그렇다’ 등의 내용은 한 건도 없었다. 이쯤 되면 피해자가 나와야 정상”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찰 수사로 일부라도 사실로 확인되면 교사 신뢰를 전제로 추진하는 정책들이 타격을 받게 된다. 문재인정부는 학생의 교육 프로그램을 편성·운영하고, 교과서 등 교재 선정에서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2022년 고시되는 새 국가교육과정에선 국가가 교육과정의 세부 내용을 규정하지 않고 학교와 교사에게 맡기는 ‘대강화’가 추진된다. 고교학점제도 학교와 교사들의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자율성 확대가 꼭 필요하다.


현 정부 국정과제인 ‘교과서 자율발행제’도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학생을 가르칠 교과서를 학교와 교사가 직접 제작해 활용하는 기회를 늘리는 정책이다. 교사 자율성 확대와 맞물려 교실에서 다양한 참고자료 혹은 교사 자체 제작 자료의 활용 빈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관계자는 “교사에게 자율성을 주는 건 교사 마음대로 가르치라는 게 아니다. 자율성이 커지는 만큼 책무성도 커져야 한다”며 “새 교육과정이 완성되면 현장 적용 전까지 2~3년 동안 자율성에 비춰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교사 연수가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실체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음모론’으로 남는 상황이 최악이다. 예컨대 사이비종교에 심취했거나 극단적 이념 성향을 보이는 교사들이 확대된 자율성을 악용해 학생을 도구화하는 상황을 학부모는 가장 우려한다. 학부모 신뢰를 상실하면 교육 정책들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며 철저한 사실 규명을 촉구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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