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역지 소년원.. 쌍욕 일삼던 아이들 점차 순한 양으로

2021. 5. 14. 19: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적 야성을 회복하라 <2>
황성은 대전 오메가교회 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이 2004년 8월 대전의료소년원에서 비전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첫 사역지는 대전의료소년원이었다. 여름과 겨울 캠프를 이용해 원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2003년 전국엔 10개의 소년원이 있었다. 그중 대전의료소년원은 지적 장애와 약물 중독, 육체적 질병이 있는 원생들이 모인 곳이었다. 어머니는 오랜 시간 이곳을 섬겼다.

2003년 한일장신대 신대원에 입학하면서 대전의료소년원 캠프 사역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학교에 함께 다니던 동기 4명과 시작했다. 소규모로 시작된 캠프였는데 점차 소문이 나면서 스태프가 많아졌다. 아이들은 3박 4일 캠프 중 의자를 집어 던지고 주먹질을 했다. 쌍욕은 다반사였다. 그곳의 거친 아이들을 상대하려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했다. 그래서 금식도 여러 차례 했다.

소년원생에게 제공할 간식과 스태프의 잠자리, 식사를 준비할 재정도 필요했다. 숙소는 인근 교회 교육관을 빌리거나 소년원 내 공터에 텐트를 쳤다. 감사하게도 캠프에 놀라운 은혜가 임하자 청년들이 2만~3만원의 회비를 내고 스태프로 참석했다. 악기나 음향기구는 주변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

오전 9시 시작한 캠프는 저녁 9시가 되어 끝났다. 그리고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스태프를 위한 집회를 또다시 열었다. 다음 날 사역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말씀과 기도에 집중했다.

새벽 늦게까지 진행된 스태프 집회에는 놀라운 은혜가 있었다. 회개와 방언이 터졌다. 수많은 어둠의 영이 떠나갔다. 악한 것에 중독돼 있던 청년들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스태프들도 하나둘 깨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삶을 내어 드리는 헌신자가 나타났다. 마치 과거에 방황하던 내가 기도원 집회를 통해 자아가 깨진 것처럼 말이다.

청년들은 말했다. “내 평생에 누군가를 위해서 이렇게 집중하며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원생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안일했던 저의 삶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저에게 섬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태프 집회를 새벽까지 한 뒤 다음 날 소년원 집회를 인도했다. 그때는 2~3시간밖에 눈을 붙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기쁘고 행복했다. ‘이렇게 사역하다가 죽어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 채 방황하던 제가 소년원생들을 섬기며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소년원생을 상담하다 보면 마음 깊숙한 곳에 가정에 대한 상처를 대부분 갖고 있었다. 깨진 가정에서 성장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부모를 향한 깊은 원망과 상처가 있었다. 사실 그들은 죄를 일찍 들킨 죄인이고, 우리는 아직 들키지 않은 죄인일 뿐이었다.

2008년 겨울이었다. 방화범으로 소년원에 들어온 아이가 있었다. 캠프 내내 부모님께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1년 넘도록 부모님과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던 친구였다.

캠프에서 많은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유독 그 친구는 힘들어하며 집중하지 못했다. 캠프 마지막 날 그 친구가 사라졌다. 한참을 찾았다. 무대 뒤 창고에 있었다. 아이의 손에는 형광등이 있었다. 자해하려고 하는 그 아이를 데리고 나와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다. 간절히 기도해주며 위로했다. 훗날 그 아이는 출소했고 부모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이가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16년 여름, 캠프 마지막 날이었다. 강단에서 원생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예수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강단으로 올라오십시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마이크를 잡고 크게 선포하세요.”

무모한 제안이었다. 소년원은 그들 나름대로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었다. 게다가 교도관들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마이크를 잡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런데 원생들이 하나둘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캠프를 통해 아버지를 용서하게 됐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나도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그들의 신앙고백이 이어졌다.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아이들, 기쁨과 환희에 차서 믿음을 고백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날만 30명의 원생이 강단 위에 올라와 간증했다. 그곳에는 성령님이 운행하고 계셨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음을 증명하셨다.

나는 대전의료소년원 사역으로 청년과 다음세대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고 헌신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받는 자의 기쁨이 무엇인지 배웠다. 아무리 깨진 인생일지라도 성령님이 회복하지 못할 인생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다른 데 있었다. 소년원 캠프 사역을 통해 평생 동역자들을 만난 것이다. 지금 오메가교회의 사역자들은 모두 소년원 비전 캠프에서 함께 울고 웃던 청년들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나의 ‘제자’이고 ‘영적 자녀’이며 소중한 ‘동역자’다.

황성은 목사(대전 오메가교회)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