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일 만에 마스크 벗은 미국.."실내서도, 사람 많아도 마스크 벗어도 돼"
실내·외, 소·대규모 행사 마스크 없이 참여 가능
확진 감소 등 과학에 근거, 정치적 압박도 역할
"식당은 되고, 공항은 안 되는 건 비과학적" 비판
미국이 마스크를 벗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던 지난해 4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한 지 400여일 만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인 7월 4일까지 성인 70% 백신 접종을 완료해 "바이러스로부터 독립하겠다"는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간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은 대부분의 실내와 실외 활동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새로운 지침을 CDC가 13일(현지시간) 내놨다. 사회적 거리 두기도 하지 않아도 된다. 코로나19 대유행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로셸 월렌스키 CDC 국장은 이날 백악관 코로나19 대응팀 브리핑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실내와 실외 활동에 소규모 또는 대규모 인원에 관계없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 두기도 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멈췄던 활동들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서 "일정 부분 정상으로 돌아오게 된 이 순간을 우리 모두 기다려왔다"고 덧붙였다.
월렌스키 국장은 마스크 명령을 완화한 근거로 ▶확진자가 지속해서 감소하고 ▶백신 접종 효과가 과학적 데이터로 나타나고 있으며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양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는 점을 꼽았다.
미국 내 하루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3만6000명대로, 1월 중순의 10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사망자는 지난 1월 하루 3000명에서 최근 600명대로 확 줄었다.
CDC는 미국에서 사용하는 세 종류 백신이 변종 바이러스까지 어느 정도 막는 효과가 있고, 백신 접종 후에도 감염되는 '돌파 감염'은 극히 드물며, 설사 감염되더라도 심각성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마스크 완화 지침에는 몇 가지 예외가 있다. 항공기와 버스, 기차 등 대중교통 이용 시에는 계속해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 의료시설이나 요양시설 등도 아직은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CDC는 아직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은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중증 또는 경증을 앓거나 사망에 이를 위험이 있으므로 계속해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즉각 백신을 맞을 것을 촉구했다. 마스크 지침 완화는 백신 접종을 독려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
13일 기준으로 미국 인구의 35.8%인 1억1900만 명이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1회 이상 접종한 사람은 1억5400만 명(46.6%)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접종 속도가 확 떨어져 그 수를 늘리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가 고심하고 있다. 4월 중순 하루 최고 338만 명까지 접종했으나 최근에는 209만 명으로 감소했다.
CDC는 과학에 기반을 둔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정치적 압력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CDC 결정은 전날 저녁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틀 전 상원 청문회에서 CDC가 지나치게 신중한 나머지 백신 접종이 상당히 진행됐는데도 국민 행동을 과도하게 제약한다고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비판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이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신 접종을 완전히 마쳤는데도 백악관 행사에 늘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나타나 출입기자들이 이유를 캐묻기도 했다. 지난달 화상으로 열린 기후정상회의 때는 모니터를 통해 다른 나라 정상들과 대화하면서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과학에 기반을 둔 정책을 펴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였던 마스크를 바이든 정부가 내려놓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1년을 넘기면서 국민 피로감이 쌓이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날 CDC 지침 개정은 코로나19 사태에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CDC 발표 직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오늘은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운 대단한 날"이라며 "많은 미국인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백신을 맞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치하했다.
이어 "접종을 완전히 마쳤다면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면서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내가 약속한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실내에서부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로즈가든으로 걸어 나왔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을 향해 "당신은 멋진 미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벗으니 비로소 서로의 미소를 볼 수 있게 됐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하지만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상황에서 마스크 지침을 섣불리 완화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불특정 다수의 대중과 접하는 필수 직종 종사자들은 CDC 지침이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백신 미 접종자를 통제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슈퍼마켓과 유통업 근로자 노조는 "마스크 없는 정상으로 복귀를 누구나 염원하지만, 오늘 CDC 지침은 혼란스럽다"면서 "백신을 맞지 않고 마스크 쓰기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쉽게 노출되는 필수 근로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로런스 고스틴 조지타운대 법학센터 국장은 "슈퍼마켓과 식당, 체육관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지만 공항과 항공기 안에서는 써야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과학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월렌스키 국장은 "지난 한 해 우리는 바이러스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면 제한 조치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대통령 최고 의료 고문인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 알레르기 감염병 연구소장은 "현재의 코로나19 대유행 단계를 끝내고 나면 통제(control)와 제거(elimination)의 중간 단계쯤에 있게 될 것"이라며 "아마도 통제에 더 가까울 가능성이 있는데, 제거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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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백신 지원서 한국 우선 순위"
한편 정부 관계자는 14일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지원과 관련해 한국을 우선순위에 두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한ㆍ미 정상회담에 즈음한 한 양국 간 백신 협조와 관련해 “한ㆍ미 간 백신 협력 사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 중이며, 미국은 한국의 백신 요청 및 협력 제안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그는 또 “한ㆍ미 정상회담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한 뒤에 양국 백신 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가 도출될 것”이라고 알렸다. 이에 따라 21일 예정된 한ㆍ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백신 확보와 관련한 구체적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역시 한국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지원 문제를 “우선순위에 놓고 논의하겠다”고 밝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민주당 소속 앤디 김 하원의원은 지난 11일 백악관에서 해리스 부통령을 만나 한국에 대한 백신 지원을 요청했고, 해리스 부통령은 "현재까지 한국에 대한 백신 지원 계획은 없었지만, 지원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정진우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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