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경기도' 만든다던 GTX.. 부동산시장 불만 질렀다

이종선 2021. 5. 14.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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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경제] 논란의 수도권광역급행철도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가 완성되면 (수도권) 외곽의 통근시간이 단축되고 도심 지역 주택 수요가 분산되면서 도심의 주택가격도 안정화될 것이다.”

2009년 7월 경기도 주최 토론회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GTX 완성에 따른 파급효과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 서울 집값과 수도권 주민의 통근 편의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아온 GTX가 공론화된 지 12년, 그러나 2021년 GTX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발표된 GTX 노선을 따라서 집값이 급등하고, 역(驛) 설치와 노선을 두고 주민·지자체와 중앙 정부 간 신경전이 끊이지 않는다. 당초 2016년 착공이라는 계획이 무색할 정도로 이제 겨우 A노선 한 곳이 착공하는 등 사업 진행도 더뎌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심 직통…수도권 게임 체인저

GTX를 처음 불 지핀 건 김문수 전 경기지사다. 2006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수도권 교통망 개선을 담은 ‘뻥 뚫린 경기도’를 공약한 김 전 지사는 2009년 4월 동탄 신도시 주민들 앞에서 GTX 선포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지사는 “18분 만에 동탄에서 서울 강남을 돌파할 수 있다. 동탄에서 일산까지는 40~50분이면 도착한다”고 강조했다.

GTX 구상은 그동안의 수도권 교통에서 다소 혁명적 변화였다. 이전까지 수도권 외곽 철도 교통 인프라 개선 대부분은 기존 서울 지하철 노선을 연장하거나 국철을 지하철에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정차역이 많아 서울 도심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차역을 최소화하는 직통 노선이 GTX의 핵심이다. 지하 40~50m 대심도(大深度)에 건설해 민원이 적고 토지보상비가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계획대로 잘 추진되면 수도권 공간을 재편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었다.

사업 지연·곳곳에서 잡음

이명박정부는 2011년 제2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GTX 사업을 반영했지만, 당시 4대강 등 예산이 많이 투입되다 보니 착공 시기는 다음 정부인 2016년으로 미뤘다. 박근혜정부 시절에도 GTX는 예비타당성 조사와 일부 노선 연장 논의 등이 맞물리면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GTX가 속도를 낸 건 현 정부 들어서다.

2019년 국토교통부 대도시권 광역교통위원회 제안을 계기로 수도권 서부권을 동서로 연결하는 GTX-D 논의까지 불이 붙었다. 경기도와 인천·김포·부천·하남시 등 각 지자체가 연합해 과거 서울시가 2호선, 7호선 등의 혼잡도를 완화하기 위해 제안했던 ‘남부광역급행철도’를 바탕으로 한 D노선을 국토부에 제안했다.

그러나 지난달 국토부가 발표한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경기도 등의 제안과 다르게 발표되자 지역민들의 거센 반발이 뒤따랐다. 한 교통 전문가는 “김포에서 부천까지만 연결되는 노선은 엄밀히 말해 ‘광역교통’이란 명칭에 어울리지도 않는다. 도심까지 직통이 아니기 때문에 GTX라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D노선뿐 아니라 A, B, C도 노선과 정차지역 등을 두고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시는 A노선의 광화문역·시청역 복합역사, B노선의 경우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정차를 요구했고 서울 성동구도 C노선과 관련해 왕십리역 설치를 건의하고 나섰다. 서울뿐 아니라 구리, 춘천, 동두천, 안양 등 각종 지자체에서 역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핌피(PIMFY·수익이 기대되는 개발 사업을 자기 지역에 유치하려는 지역이기주의) 현상’이다.

여러 지자체 요구를 다 들어주면 GTX의 취지인 ‘도심 직통’이 무색해진다. 또 역 건설 등에 따른 비용 증대도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수도권 외곽과 달리 서울 도심에서는 오히려 주민 안전 등에 대한 우려로 GTX 공사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불거진다. C노선이 지나는 강남구 은마아파트 주민이나 A노선이 지나는 용산구 후암동, 강남구 청담동 주민의 반대 시위가 대표 사례다.

더 무서운 것은 GTX 노선을 따라 집값이 뛰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A노선이 지나는 경기도 고양시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지난해 4월 3억6032만원에서 지난달 4억4489만원으로 23.4% 뛰었다. B노선이 연결될 남양주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도 1년새 3억3335만원에서 4억1060만원으로 23.1% 올랐다.

장기적 안목 필요

이런 문제들은 결국 GTX가 너무 늦게 추진된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이미 도시가 다 들어온 뒤에 GTX를 깔면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들고 여러 이해 관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업타당성 조사 등을 할 때 경제성 평가 위주로만 접근하다 보니 사업이 지연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GTX를 최초 제안했던 이한준 전 경기도시공사 사장도 2019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10년 전 GTX 3개 노선을 착공해 개통했다면 지금처럼 서울 집값 폭등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정부가 GTX를 둘러싼 잡음과 국지적 부동산 시세 상승만 보지 말고 장기적 안목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 교수는 “수도권은 따지고 보면 상당히 넓은 곳인데, 2500만 수도권 주민들이 모두 강남만 바라보게 하지 않으려면 오히려 GTX 사업 추진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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