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태어났다고 자장가? 그 식상한 일, 내가 하고 있다

김용현 2021. 5. 1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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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 아버지가 된 싱어송라이터 권나무
싱어송라이터인 포크뮤지션 권나무가 지난 5일 그가 교사로 있는 충남 천안차암초등학교 인근의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권나무 3집 ‘새로운 날’의 앨범 커버. 천안=김지훈 기자


포크뮤지션 권나무는 소박한 기타 소리와 멜로디 위에 솔직함을 얹어낸다. 사람들은 맑고 따뜻한 그의 노래에서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아픔에 담담히 공감하는 가사에선 위로를 받는다. 권나무의 음악은 한국대중음악상에 포크 부문이 생긴 첫해인 2015년부터 2년 연속 올해의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에 선정됐다. 대형기획사의 아이돌 음악이 장악한 한국 대중음악 현장에서 그의 포크음악은 빛나는 존재감을 갖는다. 권나무를 지난 5일 그가 교사로 있는 충남 천안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권나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노래로 답하는 가수다. 스스로 보고 느낀 이야기를 진솔하고도 담백하게 풀어낸다. 그가 발표한 세 장의 앨범은 스스로를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치열한 기록이다.


2014년에 발매한 1집 ‘그림’은 “듣고 나면 애초에 노래가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한 글자 한 글자 목소리에 담아 실려 보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나무는 “(1집은) 제가 엄청 힘들 때 만든 노래라 결국 나를 위로한 노래였다”며 “나를 (뭔가로) 규정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다”고 말했다. 그의 노래에는 순수했던 유년 시절, 대학시절의 기쁨,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 등 자신의 삶이 녹아있다.

그는 물감을 흩뿌리듯 노래를 만들었다. 1집의 대표곡 ‘어릴 때’의 첫 소절은 ‘지나가는 사람 가득히 저마다 맘속에 레미레레 노래 부르는’이다. ‘레미레레’라는 순박한 노랫말로 잊힌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는 “‘레미레레’ 멜로디를 흥얼거리는데 곡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사로 동심의 언어를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다”며 “이렇게 하나의 영감이 떠올라 펼친 곡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1집 ‘그림’의 곡들이 미술관에 걸린 작품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그림은 해석될 뿐, 주장하지 않는다. 1집의 앨범 표지에는 초록색 위주의 파스텔톤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이 묻어있지만 자기주장이 두드러지진 않는다.

2집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에선 스스로의 벽을 깬다. 권나무는 “1집과 같은 태도로는 나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2집은 감정 자체를 더 부각하고 싶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많이 넣었다”고 말했다. 2집의 대표곡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는 제목에서부터 선언적인 목소리가 느껴진다. 가사에는 ‘사랑을 도망칠 때 자연스럽게란 말은 하지 마/ 사랑은 물과 같이 높은 곳에서 흐르지’라며 사랑에 대한 자기주장에 주저함이 없다. 덕분에 “위선과 자기애가 아닌 흐르는 사랑의 자연스러움을 노래한다”는 평을 들었다. 2집 앨범 표지 그림에는 석고 모양의 회색 산에 시퍼런 물이 찐득하게 흘러내린다. 맑고 시원하기보다 피곤함이 배어있다. 권나무는 “사람들은 1집보다 감정적이고 더 개인적으로 느껴져서 듣기가 힘들다고 했지만 그게 나였다.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권나무는 3집 ‘새로운 날’로 1집과 2집의 한계를 극복했다. 그는 “1집의 노래할 수 있는 편안함과 2집의 감정적인 질감 같은 것들을 세련된 멜로디에 담아보려 한 게 3집”이라며 “제가 느낀 것을 다 쏟아부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라고 설명했다. 3집 앨범 표지는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이 흩뿌린 물감처럼 짙게 삼각형을 이루면서 균형을 만든다. 원색이지만 흰색과 무채색이 사이사이를 채우며 조화를 이룬다.

이 앨범의 수록곡 ‘새로운 날’은 2020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후보에 오르면서 “그동안 수없이 이야기돼온 ‘사랑’을 다르게 말하는 방법을 아는 음악가다. ‘오래된 미래’로서 포크가 갖는 힘을 권나무와 ‘새로운 날’에서 발견한다”는 평을 들었다.

3집 수록곡 ‘러브 인 캠퍼스’(LOVE IN CAMPUS)에는 권나무의 새로운 관점이 잘 녹아있다. 가사에서 ‘배신을 쏟아버린 캠퍼스에/ 농약을 쏟아버린 화단에’처럼 부정과 긍정을 있는 그대로 나열하지만, ‘사랑을 사랑을 사랑을’이라며 위로를 전한다. ‘깃발’에선 ‘사람은 사람을 말해야 하지 않겠소/ 우리들은 여전히 봄을 노래해야 하지 않나’라며 직설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낸다.

권나무는 이달 어린이날 선물로 아이들과 함께 색종이 꽃을 오려 교실에 붙였다. 색종이를 두 번 접어 가위로 오려내면 자기만의 꽃이 탄생한다. ‘함께 숲이 되는 우리 반’이다. 권나무는 “펼쳐보면 다 예쁘고 다 다르다. 가치를 판단 받지 않는다”며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어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생각을 존중받기 싫어하는 아이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는 그의 신념과 닿아있다. 사람은 각자 고유하지만, 닮아있기 때문에 서로 위로를 받는다.

2019년 새해 첫날 3집을 내고 한 달 뒤 아버지가 된 권나무는 스스로 “척추가 사라진 것 같다”고 표현했다. 세상과 삶을 보는 기준이 아주 선명하던 시기는 지났다는 뜻이다. 아들 백겸이가 세 살이 되는 동안 ‘러브리 베이비’(lovely baby)라는 자장가를 데모로 만들어 공개한 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이가 태어났다고 자장가를 만드는 건 너무 식상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내가 하고 있었다”며 “중요했던 것들이 멀어지고 무시했던 것들에 의미가 생기면서 주장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나’에 대한 권나무의 이해는 아들을 키우며 한층 깊어졌다. 그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들이 큰 버스만 봐도 기뻐하는 지금의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나의 유년 시절 잃어버린 기억은 부모님이 갖고 있지 않나. 독립했다고 하지만 부모를 떼어놓고 나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를 이야기하며 가족을 생각한다면 사회에서 만나는 친구와 동료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나의 절반 정도는 타인을 통해 만들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권나무에게 3집은 하나의 완결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있고,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가위바위보를 삼세판 하는 것처럼. 그래서 4집은 못 만들 거로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다르다. 그에게 삶은 원이 아니라 나선이다. 그는 “삶을 멀리서 보면 반복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4집도 그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라며 “우리는 아직 젊고, 하지 못한 사랑과 노래가 많다”고 말했다.

천안=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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