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눈으로 본 사회 양극화는 뚜렷했다

김남중 2021. 5. 1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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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K-를 생각한다
임명묵 지음
사이드웨이, 368쪽, 1만7000원
1990년대생은 누구인가, 20대 남자들은 누구인가, 요즘 우리 사회의 주된 논점이다. 20대 대학생 임명묵씨가 쓴 사회비평집 ‘K-를 생각한다’는 90년대생을 지배하고 있는 경쟁과 압박감이 지난 몇십 년간 격화된 우리 사회의 양극화로 인한 그림자라는 걸 보여준다. 게티이미지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젊은 필자의 책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연말 출간된 ‘추월의 시대’는 1980년대생 30대들이 공동 저술한 책으로 “한국 사회가 사실상 선진국에 대한 추격을 완료하고 추월 단계에 진입했다”는 도전적인 해석으로 주목받았다. 이번에 새로 나온 ‘K-를 생각한다’는 1990년대생 20대가 쓴 책이다.

저자 임명묵씨는 1994년생으로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학생이다. 일간지에 시사 칼럼을 연재하는 등 ‘20대 세대론’의 주요 논객으로 활동하고 있다. 덩샤오핑 시대에서 시진핑 시대로의 전환을 다룬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을 2018년에 출간했다.

임씨는 이번 책에서 90년대생, 방역, 민족주의, 386세대, 입시 등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논쟁적인 5가지 주제를 자기만의 관점으로 읽어낸다. 특히 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라는 글은 당사자인 90년대생이 쓴 세대론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90년대생 논의에선 들을 수 없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저자는 20대가 맞이한 경제·사회적 조건을 양극화로 본다. 경제 환경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소수의 수출 대기업과 다수의 저임금 서비스업으로 나뉘었고, 사회는 자산 축적을 이루고 자녀들에게 이를 세습하는 상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으로 위계화됐다.

양극화와 계층화가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는 진단이야 새로울 게 없다. 그렇지만 90년대생을 양극화의 현실을 선명하게 마주한 첫 세대, 이 간극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세대로 정의하고 이들의 맞은편에 가장 평평한 조건에서 출발한 60년대생을 위치시킨 건 주목할만한 진단이다.

그렇게 보면 90년대생이 안고 있는 극심한 경쟁과 압박감의 수준이 이해될 수 있다. 저자는 학업경쟁, 취업경쟁, 자산경쟁으로 이어지는 ‘지위 경쟁’을 90년대생을 특징짓는 말로 꼽는다.

경쟁에는 스트레스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어릴 적부터 온라인 문화에 익숙한 20대들은 경쟁의 압박감과 피로감, 좌절, 분노 등을 주로 온라인에서 해소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는 온라인 콘텐츠와 커뮤니티가 왜 그렇게 투쟁적인 성격을 갖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청년들에게 너희는 왜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말하는 어른들은 “90년대생에겐 투쟁의 공간이 현실이 아니라 온라인”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주목해야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온라인 바깥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다. 4·7 재보선에서 나타난 20대 남자들의 몰표는 그 힘을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90년대생들은 경쟁에서 오는 피로나 좌절감을 달래는 방법으로 콘텐츠에 탐닉하며 감각적 즐거움을 찾는 경향을 보인다. 웹소설 웹툰 인터넷방송 유튜브 등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열광적 소비, 강력하고 때론 공격적인 팬덤 문화 등은 90년대생의 또 다른 특징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폭발적인 성장과 세계적 경쟁력을 견인한 요인이기도 했다.

경쟁과 압박감으로 요약할 수 있는 90년대생의 집단심리는 한국 사회가 추구해온 가치에는 별다른 관심이나 애착을 두지 않는 ‘탈가치’로 나타나곤 한다. 이들은 성공이나 결혼에도 이전 세대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저자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한다. “90년대생들은 그들이 이미 겪고 있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키울 모든 책임이나 간섭을 거부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고 “대신 90년대생의 지향에서 가치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지위 경쟁 혹은 감각적 즐거움이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90년대생을 개인주의적이라고 규정하는 해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90년대생이 보여주는 집단주의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모든 종류의 책임과 간섭을 거부하고자 하는 감정적 동기가 작동한 결과”라는 것이다. SNS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과시 경쟁, 인정 경쟁에 몰두하는 이 세대의 모습을 봐도 개인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90년대생이 공정이라는 가치에 유독 민감하다는 진단은 옳은 것일까. 저자는 불안한 90년대생에게 그나마 신뢰감을 주고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온 것이 국가 시스템이었다며 그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최소한의 장치나 제도들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는 심리가 20대 공정론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임명묵의 20대론은 양극화로 치달린 한국 사회의 지난 몇십 년이 그 시절을 보고 자란 20대들에게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바라보게 한다. 이런 극심한 계층사회, 위계사회를 만든 데는 그들의 부모인 586세대의 책임이 크다는 점, 90년대생과 가장 큰 인식 차이를 보이는 게 586세대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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