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동, 그 골목에 들어서면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2021. 5. 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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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원서동은 작은 동네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바라보면 바로 왼편에 위치한다. 창덕궁 서쪽 담에서 현대사옥 사이 북쪽으로 길게 뻗은 창덕궁 담과 맞닿아 있다. 넓은 의미의 북촌을 이야기할 때 계동, 안국동, 가회동과 함께 원서동 역시 북촌에 포함된다.

원서동은 말 그대로 창덕궁 후원 서쪽이란 의미로, 옛날에는 ‘원동’ 혹은 ‘원서동’으로 불렀다. 인근에 후원의 남쪽이란 뜻의 원남동과 맥을 같이한다. 예부터 창덕궁 옆이라 궁에서 일하는 나인이나 중인들이 주로 모여 살아 한옥이 많았다. 이후 도시 개발로 많이 변형되고 훼손되었지만 1983년 북촌 보존 계획이 수립되면서 한옥이 보존되기 시작했다. 원서동을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내리면 된다. 동네 입구는 ‘원서공원’이다. 이곳은 대치동으로 옮겨 간 휘문고등학교 자리로 주민들의 뜻에 따라 공원이 조성되었다. 고희동미술관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 화백은 1918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직접 설계한 한옥에서 41년간 생활했다. 이 가옥은 우리의 전통과 일본식 가옥 형태를 절충했다. 2004년 등록 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된 가옥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 곳간채를 두었지만 훼손되어 안채와 사랑채를 보수했다. 정면 7칸, 측면 2칸 반의 일자형 안채가 동향으로 자리 잡았고 ‘ㄷ자’형 사랑채가 안채를 감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ㅁ자’형 구조다. 사랑방 옆에 화실을 두었다. 고희동 선생은 미술 교육자이며 미술 운동가다. 일본에서 돌아와 서화협회를 발족, 미술 잡지를 발간했으며 15회의 전람회도 여는 등 한국 화단의 근대화에 앞장섰다. 미술관에는 자료실인 고경본실이 있다. 고경본은 고희동 화백의 셋째 딸. 그녀의 아들 최일성이 고희동 가옥 보존 기금을 희사한 것을 기려 전시실을 마련했다. 고희동 화백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영상과 부채를 든 자화상, 관을 쓴 자화상,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 있다. 또 고희동의 ‘사계산수도 8폭 병풍’과 심향 박승무, 소정 변관식 등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제2전시실의 주제는 ‘동양화가로의 회귀’다. 고희동 화백은 서양화가로 활동했지만 1920년경부터 동양화 특히 산수화를 많이 남겼다. 제3전시실의 주제는 금강산이다. ‘화조도’, ‘금강춘색도’, ‘옥녀봉도’ 등 금강산 배경 작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북쪽으로 길을 잡으면 백홍범 가옥이 눈에 들어온다. 1910년경 완성된 집으로 상궁이 살았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한옥과 1930년대 이후 근대적인 건축 재료를 활용한 과도기적 형태의 집이다. 가옥 이름은 문화재 지정 당시 소유주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집은 별채에 해당하는 곳이며 원래 안채 자리에는 양옥이 들어섰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작은 사랑채가 있고 맞은편에는 ‘ㄱ자’형 본채가 있다. 부엌문 위로 네 개의 창을 달아 빛이 들게 하였고 건넌방에는 유리문을 단 툇마루를 붙였다.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은 특이하게도 육각형이다. 백홍범 가옥에서 나오면 창덕궁 신선원전의 정문인 외삼문을 오른쪽에 두고 5겹 지붕이 독특한 한샘디자인연구센터가 보인다. 그리고 외삼문 아래는 청계천과 함께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빨래터가 있다. 이 빨래터는 궁인뿐 아니라 일반 백성도 사용했다.

북촌8경 중 북촌1경과 2경이 원서동에 자리한다. 계동에서 언덕길을 내려오면 양쪽의 나지막한 집들 사이로 창덕궁 담장과 그 담장 위에 얹힌 듯 보이는 전각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그림이다. 또 2경은 고희동 가옥에서 아랫길로 내려가면 보이는 각종 공방이 보이는 골목길이다. 이처럼 원서동은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서울에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타임머신 골목’이다. 잘 지키고 가꾸어야 할 우리의 자산이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서울역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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