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산책] "파리행 비행기 이륙합니다" 카페서 떠나는 해외여행

임주형 2021. 5. 1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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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하늘길 공항 콘셉트 카페서
해외여행 경험 되살려보기
항공사 직원 출신 대표
공항 테마 이색 카페 만들어
기념품·활주로 등 공항냄새 물씬
대리 만족..이것만으로도 위안"
항공사 직원 5% 할인 혜택도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변 카페 '그라운드타임'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코로나19가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을 뒤흔들기 시작한 지 1년을 훌쩍 넘겼다. 이제 마스크 착용, 출입명부 작성, QR코드 인증 등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행동 양식이자 숭고한 의식으로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론 낯설어져버린 것들도 있다.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에 이른 후 막혀버린 해외여행이 대표적이다. 주말이나 휴가를 활용해 국제선 여객기를 타느라 붐볐던 국제공항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기내식'을 경험하고픈 이들은 상실감이 크다. 자유롭게 세계의 휴양지나 관광지를 갈 날이 언제일까 꿈꾸기도 한다.

하늘길이 막혀버린 지금, 해외여행족들은 대안을 찾아 나선다. 무착륙 여행으로 여객기와 기내식을 경험하면서 면세점까지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티켓 확보 경쟁이 치열한 데다 강화된 방역절차로 인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어서다. 좀 더 쉽고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김포공항에서 가까운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변의 공항 콘셉트 카페 '그라운드타임'이라면 해외여행 경험을 되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땅에 있는 시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그라운드타임(Groundtime)'은 항공 용어. 공항에서 여객기가 이륙하기 전 잠시 활주로 인근에 대기하는 짧은 시간이 있다. 이때 복잡한 기계 덩어리인 항공기의 이륙 전 엔진 및 시스템 이상 여부를 철저히 점검한다. 이렇게 여객기가 하늘로 뜨기 전 여러 잡무를 처리하는 시간을 항공업계 종사자들은 '그라운드타임'이라 부른다.

공항을 연상케 하는 장식물들이 카페 내부 곳곳에 놓여있다.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손지선 그라운드타임 대표는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대기하는 것처럼 잠시 동안 휴식 시간을 주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카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비행기를 점검하는 이들에게 그라운드타임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일 테지만, 비행기나 여행객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붙였다고 한다.

손 대표는 지난해 8월까지는 항공사 직원이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항공업계 위기가 이내 몰려왔고 끝내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직장 경험을 살려 공항을 테마로 한 이색 카페 설립에 나섰다. 그는 "직장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카페를 차리고 싶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직장을 떠나 새로운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가 등을 떠밀게 만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라운드타임은 지난해 12월 열었다. 이제 막 4개월 된 카페인데, 공항과 여객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손 대표는 인테리어를 직접 고안했다. 여객기 창문을 닮은 작은 액자, 공항 활주로를 묘사한 바닥, 공항 수속을 처리하는 카운터와 유사한 가판대 등 그라운드타임의 실내 사물들에는 항공사에서 활동했던 손 대표의 기억이 녹아 있다. 이색적인 공항 콘셉트는 손 대표가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반영돼 있다.

공항 수속 데스크를 닮은 주문대.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그라운드타임의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에 게재된 공지문은 항공사가 고객들에게 전하는 안내문과 흡사하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마곡 그라운드타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로그에 게재된 글부터 공항 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자신을 그라운드타임의 기장이라거나 사무장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찾는 이들로 하여금 간접비행을 경험하게 해준다. "여행길을 책임지는 사무장의 마음가짐으로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실내를 '객실'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객기가 이륙하는 순간부터 도착지에 내려앉을 때까지 승객의 안전과 편의를 책임지는 비행기 기장과 같은 각오로 손님을 모시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나 할까.

이용 고객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카페를 방문한 고객은 "원래 이맘때쯤이면 일본 여행을 가곤 했는데, 지난해부터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 카페를 찾으면 최소한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느낌 정도는 얻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위안을 느낀다"고 말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에도 비슷한 소감이 잇따라 올라온다. 누리꾼들은 "공항을 닮은 신기한 콘셉트의 카페", "실제 비행기 여행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리만족은 가능하다", "비행기를 다시 탈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다니게 될 것 같다" 등의 호평을 하고 있다.

손 대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여전히 어려운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항공업계 종사자들을 위한 작은 혜택을 마련했다. 항공사 직원임을 증명하기만 하면 약 5% 할인을 해준다. 창업 직전의 업종에 여전히 몸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애틋한 정을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공항 활주로를 닮은 바닥 디자인.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몸에 익은 항공업계를 떠나 카페라는 새 영역으로 둥지를 옮겼지만, 손 대표는 찾는 이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보람을 얻는 일이라는 점에서 예전과 비슷한 업무를 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는 "2009년부터 11년간 항공사에서 근무했는데, 비행기를 타는 것도, 낯선 장소에 가는 것도,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을 보는 것도 모두 의미있는 일이었다"며 "지금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만족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 항공사에 근무하며 경험했던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은 하늘길이 막혀 있지만 언젠가 감염병은 통제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 것이고 비행기와 공항은 또 북적일 것"이라면서 "회복을 위한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그라운드타임이 머지않아 이륙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시적으로라도 여유로운 안식처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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