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소민의 슬기로운 예술소비] 줄리안 오피가 사색하는 뇌력 '거리를 걷는 사람들'
"걷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흥미롭고 역동적이며, 각기 다른 사람들의 걷는 모습은 마치 풍부한 색깔을 담고 있는 팔레트 같다." -줄리안 오피
줄리안 오피를 대표하는 작품은 도시를 바쁘게 걷고 뛰는 사람들을 표현한 작업 들이다. 그가 표현한 사람들의 패션은 제각각 개성이 뚜렷하지만 얼굴은 없다. 그는 “사람들은 세상을 눈으로 보지만 뇌로도 인식한다. 뇌는 절반을 보여주면 절반을 상상하며 세상을 바라본다. 휴대전화를 보며 걷는 사람의 뒤통수가 몹시도 강렬했다. 뇌에서 이해하는 세상을 관람객으로 하여금 경험하도록 초청하고 싶었다.” 라며 작품 속 텅 빈 얼굴은 우리의 상상의 뇌력에 온전히 맡겨진다. 동시에 개성과 익명성이 공존하게 된다.
위 작품은 '비 오는 날 사당동'으로 2014년 오피가 서울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재현한 것으로 이슈가 된바 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재로 한 작업으로 오피의 본국인 영국 런던의 행인들을 모델로 한 것이 시초였는데, 당시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였기에 런던 사람들을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당시 한국 사진작가의 도움을 받아 4-5개월에 걸친 작업으로 진행됐다. 구체적인 디렉션을 전달했고 당시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은 무려 3000여 장 이었다고 했다.
오피는 비 오는 날의 사당동 모습이 모국인 런던을 연상케 하면서도 반면, 대부분 휴대폰을 들고 있거나 액세서리가 장신구가 많은 것이 매우 인상적 이였다며 런던의 우중충한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했다. 그래서 런던 작업이 채색이 없고 그림자가 많다면 진행 중이던 작업들과는 달리, 서울은 조금 더 밝고 선명한 작업을 했다. 한편, 신사동을 찍은 사진을 받아 보았을 때의 느낌은 모든 사람들이 옷을 매우 잘 입어 흥미로웠고, 모두가 비주얼 록을 구축하기 위한 프로젝트라도 하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강남스타일'을 본 후의 첫 소감이였던 것이다.
런던에서 태어난 줄리안 오피(Julian Opie 1958~)는 앤디워홀 이후의 최고의 팝 아티스트로 불린다. 1979년~1982년 골드스미스 예술대학에서 공부하였고, 지금은 영국의 가장 유명한 현대 미술 작가 중 한명이다. 오피 작품의 특징은 경쾌한 선과 색으로 작품의 모티프인 인물이나 풍경의 디테일을 과감하게 생략하며 굵고 검은 선으로 단순화 시킨다. 이러한 이미지는 회화, 판화, LED전광판, LCD, LED, 렌티큘러 등의 다양한 매체로 구현되며, 전통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그는 사진을 디지털 화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하였고, 간결한 자신만의 언어로 발전시켰다.
오피는 고대와 최첨단을 넘나들며 다양한 기법을 탐구한다. 옛 서양 초상화, 이집트 회화와 상형문자, 현대의 표지판과 회사 로고에 나타난 기법을 차용해 현대적으로 표현하는데, 무엇을 표현 하느냐 만큼 ‘무엇으로’ 제작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유화·영상 등 일반적인 소재 외에도 비닐 소재, LED, 배너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작품의 주제가 노래 가사라면, 물성은 곡이다.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다 말할 수 없다.”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 작품은 즉각적 인식이 가능하도록 ‘공공표지판’이나 ‘기업 로고’처럼 단순화했다는 것이다. ‘줄리안 오피’의 회화는 18세기 초상화, 인기 만화, 일본 목판화 등으로 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방대한 미디어 기술을 사용한다.
1960년대 앤디 워홀에 의해 예술이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이후 팝아트 작가들이 쉴 틈 없이 등장했다. 영국 런던 출신의 작가 줄리언 오피(Julian Opie)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창작자의 내면을 외면화한 수많은 작품 세계들이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줄리언 오피의 존재감은 과히 독보적이다. 검고 굵은 윤곽선과 선명한 색채, 픽토그램처럼 단순하고 명쾌한 그림체는 그가 어떤 장르와 주제를 만나도 자신만의 개성을 뚜렷이 각인시킬 수 있는 안장과도 같다.”
2001년 줄리안 오피는 영국밴드 블러 ‘Blur’의 베스트앨범 커버 디자인을 하여 ‘뮤직위크 CADS’에서 베스트 일러스트 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그의 작품은 테이트모던, 빅토리아 & 앨버트 미술관, 오사카 국립 박물관, 뉴욕 현대 미술관 등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만나 볼 수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작품을 제작할 때 '내 방에 두고 싶은가?' 에 대해 스스로 질문한다고 언급한바 있다. 이를 통해 작업에 대해 관람객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접근하길 바라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BONUS NOTE:
줄리안 오피는 자신의 전시를 직접 기획한다. 작품뿐 아니라 관객이 입장해 퇴장할 때까지 겪는 경험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조율한다. 오피는 “전시를 기획할 때 전시장 밖에서 관객과 만나는 지점도 중요하게 생각해 포스터, 인터넷 판촉물 까지도 직접 제작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주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제목이 '신사동'이라고 하면 그것에만 집중해서 보는데, 오피의 작품은 그런 것과 상관이 없다. 그렇다고 그가 패션에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입은 옷의 브랜드는 중요하지 않다. 특정 장소와 패션, 색은 작업에 필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핵심은 아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수학적 알고리즘이다. 행인들을 묘사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꽤 복잡하다. 수천 장의 사진에서 인물들을 무작위로 골라 조합한다. 각각의 인물들을 악보의 음표라 생각하고 캔버스에 몇 명이나 채울 수 있는지, 남녀의 비율, 어깨의 높이 등을 꼼꼼하게 계산한다. LED 작품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인물들이 걷는 속도와 방향을 분석한다. 줄리안 오피는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화는 물론 조각, 미디어 아트를 넘나들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칠하는’ 전통 회화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회화’로 자신만의 아트 브랜드를 구축했다.
이러한 성공에는 골드스미스 칼리지의 스승 YBA를 만든 마이클 크랙-마틴(Michael Craig-Martin)의 가르침이 있었다. 마틴은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피는 그 가르침에 따라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정통 예술가의 고정된 프레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패션, 광고, 디자인, 애니메이션, 렌티큘러로 예술의 재료를 무한 확장시켰다.
"마틴은 예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시켜준 사람. 어린 학생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권한을 준 스승이었다."ㅡ줄리안 오피
물리적인 길을 걷다보면 끝나는 지점도 있겠지만, 우리 앞에 놓인 인생의 길은 마지막 그 순간 까지도 필사적으로 걸어야만 한다. 필자는 유학시절 뇌력도 체력 없이는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을 몸소 체득한 바 있기에 줄리안 오피의 작업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힘은 결국 뇌력이 아닌 체력이라 단언한다..
줄리안 오피는 “전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는 없다. 난 정말로 미술이 좋다. 작품이 완성되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봐줄 때 비로소 작업이 마무리 된다"고 전한다. 미칠 정도로 좋아해서 하는 일에는 최고가 될 수박에 없다는 진리가 그의 작품 속에 명쾌하게 담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뇌력이 국가 경쟁력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더욱이 체력관리에 심열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뇌력은 체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홍소민 이서갤러리 대표 aya@artcorebrown.com
데일리안 데스크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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