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으로 떠난다면.. 서울대공원 말고 여기도 가보세요
[운민 기자]
강남에서 가까운 부자동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물원이 있는 서울대공원, 경마장과 중앙정부청사 등 기라성 같은 수식어 덕분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과천을 모르는 분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인구도 10만 명이 되지 않아 도시가 쾌적하고, 서울 강북에서 강남 가는 것보다 오히려 과천에서 가는 길이 가깝기에 강남, 서초, 송파 강남 3구에 과천을 포함시켜서 '강남 4구'라고 일컫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과천 도시 자체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고, 이 도시가 담고 있는 역사와 문화가 과연 무엇이 있을까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시 한가운데로 양재천이 흐르고 있고, 청계산과 관악산으로 둘러싸여 쾌적한 도시환경을 자랑하는 과천으로 한번 떠나보도록 하자.
우리가 몰랐던 과천의 역사
과천은 종종 여러 기관의 조사에서 살기 좋은 도시 1위에 꼽히기도 한다. 물론 과천에 사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주민복지가 잘 꾸려져 있는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인구 10만이 안 되는 소도시에 훌륭한 수준의 동물원과 놀이공원 그리고 가장 규모가 큰 현대미술관이 모여 있다는 사실도 무시할만할 요소는 아니다. 과천시 면적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서울대공원이란 이름하에 많은 시설이 몰려있다. 과천이란 도시 자체는 과천 정부청사로 인해 생겨났지만, 그 이름의 유래와 역사는 생각보다 유구하다.
고구려 장수왕 시절부터 율목군(栗木郡)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율목이라는 이름 자체는 후에 과천이란 이름의 어원이 되었다. 율목이라는 단어는 '밤나무 열매[果]'를 내포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고려시대에 과주란 지명을 거쳐서 141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과천(果川)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도 과천 도시 한편에는 그 당시 왕이 머물기도 했던 객사인 온온사와 과천향교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오랫동안 독자적인 도시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던 과천은 일제강점기 부군면 통폐합 때 과천군이 폐지됨으로써 시흥군에 편입되었다. 그에 따라 과천면으로 이름이 바뀌어 한동안 시흥의 역사와 궤를 함께 했었다.
그러던 중에 60~70년대 서울이 급속도로 확장을 하게 되면서 과천의 역사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미 1963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에 편입되면서 잠정적인 서울 편입 예정지로 지정되었고 일명 '남서울 계획'에 속한 핵심 지역이었다. 예전에 창경궁 부지에 있던 동물원이 지금의 과천으로 옮기면서 서울대공원이란 이름을 아직까지 달고 있다는 사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1982년 과천에 정부 과천청사가 들어왔다. 주로 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가 들어왔었고, 세종시 이전 전까지 국가의 경제 관련 정책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일부 부서만 남은 상태에서 과천은 새로운 갈림길에 들어서 있다.
과천에서 으레 발길이 먼저 닿는 명소라 하면 서울대공원 아니면 경마장이겠지만 우선 역사의 향기가 가득 풍기는 장소로 먼저 발걸음을 움직여 본다. 한국의 어느 도시를 가던지 아름다운 장소는 있기 마련이지만 과천은 관악산 자락 아래 나무가 울창하게 자리해있다.
▲ 과천의 객사 역활을 했었던 온온사 과천 시내에서 멀지 않은 관악산 자락에 객사의 역활을 하면서 때로는 행궁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온온사가 자리하고 있다. |
ⓒ 운민 |
객사는 나랏일을 하는 중요한 인물의 숙소로 쓰이고,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놓고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의식을 치루기도 했던 장소다. 정조 임금 시기에 들어와서 정조가 수원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쉬기도 했던 역사가 남아있다.
정조는 과천 객사에서 머물 때 주위 경치가 쉬어 가기 편안하다 하여 '온온사'라는 현판을 내렸다 한다. 온온사는 임금이 능행길이나 사냥, 온천을 오가면서 행궁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해서 일반 객사보다 확실히 규모가 커 보였다.
지금도 온온사의 옆자리엔 과천 관아의 터로 추정되는 자리가 남아있고, 그 뜰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족히 몇백 년의 수령을 자랑할만한 나무들이 울창하게 온온사를 보호하고 있었다. 온온사의 틀 마루에 잠시 걸터앉아 과천의 역사를 피부로 느껴본다.
▲ 온온사 옆에 자리하고 있던 과천현 관아지 온온사의 옆자리에는 과천현 관아로 추정되는 자리가 남아있다. 과천은 조선시대 이후 임금이 지나다니는 중요한 길목에 있었기에 다른 곳의 관아보다 규모가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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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선생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과천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마지막까지 머물던 과지초당이 위치해 있다. 원래는 김정희 선생의 부친인 김노경이 과천에 마련한 별서였지만 추사 선생이 제주, 북청 등 험난했던 유배생활을 끝내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4년 동안 이곳에서 지내며 말년의 예술혼을 불태웠다.
▲ 추사 김정희 선생과 관련된 자료를 집대성 하고 있는 추사박물관 과천의 추사박물관은 추사김정희 선생이 관련된 자료들을 중점으로 전시하고 있다. 그의 삶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추사 김정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방문해야 할 장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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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선생은 우리에게 글 잘 쓰는 명필, 추사체의 주인공으로만 알려져 왔지만 그의 학문과 예술의 세계는 바다만큼 깊고 넓다. 추사는 금석학이란 학문을 통해 그동안 무학대사가 세운 비석으로만 알려졌던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신라시대의 비석으로 밝혀내기도 했고, 연행길 중 연경에서 만난 옹방강, 완원 등 청나라 문인들과의 꾸준한 교류를 하며 고증학을 우리나라로 소개하기도 했었다. 박물관은 2층으로 올라가 1층과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서 관람하는 동선으로 되어 있다.
우선 2층은 추사의 생애를 시기별로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전시가 꾸며져 있었다. 추사의 어린 시절의 글씨부터, 중국으로 연행길을 통해 수많은 문인들과의 교류의 흔적들 그리고 유배 시절 동안 완성한 불후의 명작 세한도의 설명도 세세하게 엿볼 수 있었다.
특히 말년 4년 간의 과천 생활을 통해 그가 마주한 현실과 시대적인 변화 그리고 추사의 인간적인 모습까지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이번엔 1층으로 내려간다. 주로 추사의 학문과 예술을 주제별로 보여주는 장소라 할 수 있다.
북학파의 영향으로 추사가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에 눈을 뜨는 과정과 조선 금석학 연구와 초의 선사를 비롯한 여러 계층과 교우를 그가 보냈던 서신을 보며 살필 수 있었다. 특히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추사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정말 인상 깊었다.
▲ 과천 추사박물관 옆에 자리하고 있는 과지초당 과지초당은 말년의 추사 선생이 4년 동안 머물면서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던 장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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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으로 과지초당으로 이동해본다. 새로 복원된 곳이라 고풍스러운 맛은 없지만 조그마한 연못과 한옥과의 조화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초당 내부는 현재도 다양한 문화 교육의 현장으로 이용되는 것 같아 보였다. 한옥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지나가는 봄의 기운을 마지막으로 만끽한다.
▲ 과지초당의 내부 과지초당의 내부는 현재도 사람들이 들어가 볼 수 있게 되어있다. 가끔 문화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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