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김치를 애국주의 소재로 이용하는 중국의 '문화공정'

2021. 5. 13.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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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주의와 경제 이익 노린 의도
감정 대응보다 내실부터 키워야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

중국이 왜 이럴까. 2020년 겨울에 시작된 김치와 파오차이(泡菜)의 원조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 백과사전에 “삼계탕은 중국 음식”이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한국에서 혐중(嫌中) 분위기를 키우고 있다. 김치와 삼계탕을 둘러싼 논쟁을 놓고 중국의 역사 왜곡을 지적하는 동북공정에 이은 문화공정·음식공정·김치공정·인삼공정이란 말까지 회자한다.

동북공정은 2002년 2월에 시작돼 2007년 초반 사업이 종료된 중국의 고대사 연구 국책 사업이다. 동북공정의 배경에는 21세기 들어 거세진 애국주의에 기반을 둔 중화 우월주의가 숨어 있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애국주의 고취 교육을 강화했다. G2로 부상하며 중국의 힘이 세지자 중화 애국주의는 ‘분노한 청년’(憤青)과 그보다 어린 세대를 지칭하는 ‘소분홍’(小粉紅) 같은 팬덤 민족주의 성향의 그룹을 낳았다. 정부의 조직적인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숭배 대상은 중국과 한족이다. 애국주의는 필연적으로 전통문화를 중시한다. 집단 정체성의 기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집단 정체성의 자양분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다.

김치가 중국에서 전국적인 이목을 끈 건 2003년 사스(SARS) 사태 때문이었다. 김치가 사스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한국 기업과 조선족이 만든 김치가 큰 인기를 얻었다. 당초 중국인들에게 파오차이는 사스 때 유명해진 한국식 김치를 의미했다. 이번에 논쟁이 된 파오차이는 쓰촨성(四川省)을 기반으로 한다. 2001년부터 파오차이 사업이 본격화됐지만, 파오차이는 중국에서 전국적인 음식은 아니다.

한국은 산둥성 일대에서 생산한 김치를 주로 수입한다. 산둥성 일대에서 생산한 김치는 그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다. 2017년 사드 보복은 중국 현지의 김치 산업에 타격을 줬다. 반한 정서가 대두하면서 표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포장지에 넣었던 한복 사진이 사라졌다. ‘한국식 김치’ 는 ‘동북지역 조선족식 김치’로 바뀌었다. 이처럼 “중국이 파오차이 종주국”이란 주장에는 애국주의에 더해 경제적 이익이 숨어 있다.

이번에 바이두가 삼계탕을 왜곡했지만 2018년까지도 바이두엔 ‘삼계탕은 한국 고유의 특색 있는 메뉴’라고 올라 있었다. 2000년 7월 보도에 따르면 광주 동구청은 자매결연 도시인 중국 광저우(廣州)에 삼계탕 전문점을 개설하면서 주요 재료와 반찬 등을 한국에서 공수했다고 한다. 광저우는 보양식의 천국이라 삼계탕과 비슷한 음식이 있다. 하지만 ‘비슷한 음식’이 ‘같은 음식’은 아니다.

삼계탕 문제는 인삼 문제의 연장으로 보인다. 중국은 세계 인삼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이다. 하지만 ‘한국 인삼=고급’이라는 인식에 밀려 중국산은 부가가치가 낮다. 10년 전부터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백두산의 중국식 표기를 따서 ‘창바이산(長白山) 인삼’ 브랜드를 육성하는 공정을 진행 중이다. 중국은 2017년 12월 ‘고려홍삼’에 대한 ‘지리적 표시 단체 표장’ 등록 거부 등 한국산 김치와 고려홍삼 등의 중국 시장 확산을 막기 위해 다양한 규제를 동원하고 있다.

중국의 애국주의 분위기가 갈수록 거세다. 동시에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전통 먹거리를 ‘중국 음식’이라고 왜곡하는 시도도 계속될 게 분명하다. 만우절 기사를 빙자해 “딤섬과 훠궈는 한국 전통 음식”이라는 감정적 대응은 해법이 아니다. 문화나 역사·영토를 둘러싼 감정싸움이 좋게 해결된 경우는 없다. 한국의 고유한 음식 문화와 역사에 대한 연구를 선행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나 국제표준화기구(ISO) 등재 등을 통한 다양한 브랜드 지키기에 나서야 한다. 더불어 재료와 조리법의 표준 제정도 서둘러야 한다.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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