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서주 습격, 유비 놓친 '절반의 승리'

2021. 5. 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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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박사의 '당신이 모르는 三國志'] (21)
관도대전 전야
3번째로 서주를 차지한 유비는 병사를 모으고, 관우에게 하비 지역을 맡겼다. 유비의 세력으로는 조조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그가 믿는 구석은 원소였다. 공손찬을 제거한 원소는 조조를 향해 전력을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이미 조조군은 관도까지 밀고 올라갔는데, 이것은 황하를 경계로 양군이 대치 상태에 돌입했음을 의미했다.

원소의 아들 중 장자인 원담이 서주 바로 북쪽 산둥 지역인 청주자사가 돼 있었다. 원소는 원담에 대해서는 평가가 박했다. 원담의 이복동생 원상을 총애했고, 실제 나중에 원상을 후계로 삼았다. 원담은 사치스럽고 아첨꾼에 약해 지도자로서 역량이 부족했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어리석은 지도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과거 유비가 공손찬 밑에 있을 때 유비와 함께 서주를 지원하기 위해 왔던 전해를 격파하고 공융이 다스리던 북해도 점령했다. 그는 원술이 죽기 전, 원소와 원술을 화해시키고 원술의 망명을 받아주도록 주선했다. 분명히 원담은 야심이 있고 군사적 재능도 있었다.

원담은 유비를 좋아했다. 유비가 과거 평원을 다스릴 때, 원담을 조정에 천거한 적이 있다. 그 은혜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이 난세에 은혜는 쑥스러운 말이다. 유비와의 동맹은 은혜가 아니라 실리였다. 유비와 연합하면 원소는 조조의 측면을 깊숙이 위협하게 된다. 이 구도는 조조에게 치명적이었다. 유비는 조조가 원소와 대치 상황인 만큼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는 내심 조조가 부하 장수를 보내 자신과 타협하기를 원했다. 또는 원소나 원담이 빨리 움직여 관도에서 조조를 압박하면 조조는 서주를 향해 총력전을 펴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령 조조가 서주를 공격한다 해도 원소나 원담이 군사를 지원해주거나 관도를 쳐주면 차선이다. 유비는 버틸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시 서주 차지한 유비 조조 겨냥한 ‘낫’으로

유비의 최대 약점은 군대였다. 소설에서는 한 번도 이런 지적을 하지 않는다. 관우, 장비, 조자룡 같은 최고 장수를 거느리고 있지만 제갈량, 방통 같은 모사가 없는 것이 단점이라고 기술했다. 하지만 장수가 아무리 뛰어나도 전쟁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도겸을 계승한 뒤로 유비는 모은 군대를 제대로 조련하고, 강군으로 편성할 시간이 없었다.

동탁이나 여포는 주변에 무예에 익숙한 유목 기병대가 있어 순식간에 병력 편성이 가능했다. 반면 유비는 풍족한 땅에서 평화롭게 살았던 농민을 군대로 제조해야 했다. 유비는 여러 번 시도했지만 조조, 여포에 의해 몰락하고 흩어짐을 반복했다. 제대로 된 군대를 충분히 보유할 시간이 없었다. 덕분에 관우와 장비도 두각을 나타낼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번에도 판단의 속도와 결단의 양이 승패를 갈랐다.

조조는 허리에 낫이 놓이기 전에(유비가 군세를 정비하기 전에) 서주를 먼저 공격하기로 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 전력을 빠르게 정비했다.

서주에 보낸 유대와 왕충이 패배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200년 1월에 출정을 감행했다. 부하 장수들이 나서서 말렸다. 원소가 북쪽에서 노리고 있는데 조조가 직접 서주로 가면 조조군은 북쪽의 압박을 이겨낼 수 없다. 요동을 평정하고 요동 기병도 흡수했을 원소나 원담이 이 기회에 서주로 침공하면 조조의 후방을 끊어버릴 수도 있다.

조조는 탁상이 아닌 실전 상황에서 분석한다. 원소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형세 판단이 느리다. 전후좌우를 다 확인하고, 만전의 대책을 세우면서 차근차근 확실하게 이긴다. 이 전략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승리의 가능성이 높다면 말이다. 그러나 전술의 우월을 판단하는 지표는 승리 가능성이다. 어떤 전술이든 그 전술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면 유용하고 훌륭한 전술이다. 원소는 이런 판단을 못했다. 원소는 자신의 경험과 습관, 숫자에 따랐다. 덕분에 조조는 원소를 쉽게 예측했다. 숫자의 열세를 기동과 집중·위험하고 과감한 전술로 상쇄했다.

조조는 또 하나의 이유를 댔다.

“원소는 뜻만 크지 실행할 능력은 없다. 유비는 반대다. 지금 제거하지 않으면 그는 반드시 훗날의 근심거리가 될 것이다.”

▶걸림돌 사라진 조조, 결전 장소 관도로 향하다

조조는 질풍처럼 유비를 덮쳤다. 조조가 출동했다는 것은 조조군의 주력이 대거 습격했다는 의미다. 유비는 농성이나 지연 작전을 쓰며 원담의 구원군을 기다렸다. 하지만 원소군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원소군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원소도 이미 조조와의 대결을 예상하고 전쟁 준비에 돌입해 있었다. 원소의 대군은 이미 움직이고 있어서 2월, 3월경에는 황하에 도달할 상황이었다. 조조의 장수들이 서주 공격이 위험하다고 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소가 느리다는 진짜 이유는 돌발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이다. 원소는 성향 자체가 안전제일주의기도 했지만, 당시 중국에서 최대 영토를 차지하고 최대 병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다만 유비의 서주 파견이 돌발적이었기에 원소 입장에서는 이 기막힌 전술적 상황이 계산에 없었다. 조조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에게 1달의 시간이 있다. 1월 안에 유비를 격파하면 허리에 놓인 낫은 사라진다고.

12월에 서주에 온 유비가 서주자사 차주를 제거하고 단숨에 서주를 차지한 것도 대단한 능력이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유비는 군대를 확보할 틈이 없었다. 유비가 서주에서 반란을 일으킬 때부터 시간과 병력이 없다는 사실을 유비도 알고 있었다. 그는 원소에게 제안한다.

“제가 서주를 장악하면 틀림없이 조조는 장군의 동향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주를 공격해올 겁니다. 절호의 기회입니다. 제가 농성하는 동안 안량, 문추나 원담군을 움직여 조조를 습격하십시오. 조조를 단숨에 제거할 기회입니다.”

당시 유비의 사정으로 보면 유비가 원소에게 파견한 손건을 통해 이런 전략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99%다. 소설에서 이 장면을 넣지 않은 이유는 아직 유비에게 제갈량이 없기 때문이다. ‘유비에게는 맹장은 있으나 와룡이 없다’는 속설을 유지하고, 제갈량의 등장을 극적인 전환으로 만들기 위해서 유비의 막사에서는 아직 이런 토론이 일어나서는 안 됐다.

조조는 2월이 오기 전에 유비를 단숨에 격파했다. 유비의 부장 하후박을 사로잡았지만, 유비는 탈출에 성공해 원담에게로 도주했다. 조조는 하비에 있던 관우가 유비와 합류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관우는 포위됐다가 항복했다. 하비에 있던 기구한 유비의 가족은 조조의 포로로 잡혔다.

이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원소의 대군은 서주 전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어진 일을 계속했다. 원소군은 황하에 근접했지만 조조군을 강습하기는커녕 주변 정리 작업부터 시작했다. 황하 이북에 있는 조조의 동조 세력을 먼저 소탕해 황하로 진입하는 교두보를 충분히 넓게 안전하게 확보하는 작업이다.

그 덕에 조조는 또 하나의 중대한 발견을 한다. 원소의 병력 배치와 이동 상황을 충분히 관측하고 새로운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8호 (2021.05.12~2021.05.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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