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클릭] 비와 당신의 이야기..순수한 사랑과 기다림 그려낸 '청춘물'

2021. 5. 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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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드라마/ 조진모 감독/ 117분/ 전체 관람가/ 4월 28일 개봉
시인 황동규는 ‘즐거운 편지’에서 ‘기다림의 자세’에 대해서 말한 바 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에 눈이 퍼붓는’ 시련 속에서도 그는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라고 고백한다. 눈이 퍼붓고, 꽃이 피고, 다시 눈이 퍼붓는 것을 믿는다는 말. 계절의 순환처럼 사람의 마음은 늘 변하고 상황도 변하는 것이지만, 사랑이 곧 기다림으로 변해버린 이후에는 그러한 ‘변화’가 나를 흔들 수 없다는 깨달음. 그것이 ‘기다림의 가치’다.

오랜만에 나온 로맨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황동규의 시를 닮았다. 순수한 사랑과 기다림의 자세에 대해서 말하는 작품이다. 즉흥적인 일회성 만남이 즐비한 요즘 시대에 느린 템포의 만남과 관계에 대해 말하는 이 작품이 사뭇 반갑다.

영화의 이야기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수학원에서 공부하는 삼수생 영호(강하늘 분)는 말을 걸어오는 여학생 수진(강소라 분)의 적극적인 모습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수진은 솔직하게 영호에게 다가오고 거침없이 그를 잡아끈다.

영호는 수진의 모습에서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초등학생 시절 첫사랑이 떠오른 것. 운동회 때 손수건을 건네던 첫사랑의 모습을 잊지 못한 영호는, 그녀의 주소를 수소문해 다짜고짜 편지를 보낸다. 편지는 멀리 부산까지 달리는데, 정작 편지를 받는 첫사랑은 불치병에 걸린 상태였고, 편지의 답장은 그녀의 동생인 소희(천우희 분)가 언니 행세를 하며 대신 보낸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영호는 첫사랑에게서 온 답장에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영화는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추억을 회상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건축학개론’과 ‘유열의 음악앨범’이 1990년대의 추억을 말한다면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2000년대 초반을 이야기한다. 추억의 장소, 추억의 소품이 ‘밀레니엄 시대’의 추억을 환기시키고 그 시대의 감성을 소환한다.

낭만적인 설정과 따뜻한 이야기지만, 선뜻 공감하기는 어렵다. 후반부 영호가 소희와 만나는 장면들은 마치 밀린 숙제를 몰아서 하듯 급한 경향을 보인다. ‘12월 31일에 비가 오면 만나자’는 불분명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8년간 쉬지 않고 기다리는 영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숭고하거나 순수하다기보다는 미련하다 싶기도 하다. 영호와 소희는 작품 내내 전혀 만나지 않기 때문에 감정선이 유지되기도 어렵다. 영화에서 진정 ‘기다림’의 자세를 보여준 사람은 영호가 아니라 수진이다. 영호가 수진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영화는 수진의 기다림과 영호의 기다림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지 못한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아프게 사랑하고 있는 건 수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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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8호 (2021.05.12~2021.05.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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