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백두대간과 논밭에 쇳조각을 뿌렸나 [파리로 가는 길]
최수경 2021. 5. 12. 07:33
[최수경의 파리로 가는 길] 논밭·갯벌 잠식한 태양광시설
나는 주로 금강에서 일하다 보니 금강 유역권의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한다. 금강 발원지 장수로 향하는 대전-통영 고속도로, 금강 하구 서천으로 향하는 대전-당진 고속도로는 주로 산허리를 깎아 걸치거나 드높은 교각이 받치고 있어 경관이 가린다. 마을과 논밭은 도로 아래에 있는 세상이라 안 보인다. 다리 위에서 강풍이라도 만나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들어 핸들에 힘을 준다.
하행하는 호남고속도로는 서대전 나들목부터 구불구불한 누더기 도로다. 요철이 심하고 급회전하는 언덕길과 내리막길이 많아 주의해야 한다. 과거에 만든 고속도로인지라 운전자의 눈높이가 마을 지붕 높이거나 마을 길 눈높이다. 도로를 따라 난 마을과 노거수와 정자가 선명하게 들어오고, 마을 길 한가운데 목줄 풀려 돌아다니는 백구와 바둑이도 시야에 잡힌다. 연무대 나들목 즈음에선 훈련받는 장병들이 고속도로 위로 난 육교를 행군하는 모습도 간혹 보인다.
벚꽃 전선이 고을을 지나 최절정기를 넘긴 5월 이후, 흰색 꽃들이 시절 모르고 일제히 피어 계절을 앞당긴다. 산야에 초록이 물 차오를수록 시선을 끄는 것은 오히려 초록의 보색인 붉은 흙밭이다. 황산벌의 누른 산(논산)은 봄밭을 참빗으로 가르마 타서 정갈하게 갈아놓아 이색적이다. 마치 동백기름 바른 여인의 가르마처럼 곱게 산밭을 빗어 놓았다. 기계가 지나간 흔적이지만, 기계도 황소처럼 부려야 일이 된다. 자식들 키워 가르친 산밭을 놀리지 않는 농심이 느껴져 안심이다.
강원도의 산밭은 화장술이 가히 영국 프리미어 리그 경기장 같다. 티끌 하나 없이 매끈하니 선수만 입장하면 된다. 전라도의 산밭은 시골학교 운동장 같다. 운동회 전날 운동장 한편에 먼저 자리한 읍내식당 천막처럼, 산밭은 이미 나승개(냉이) 밭이다. 충청도의 산밭은 아직도 꽃밭이다. 사람 좋아하라 핀 꽃이 아닌, 하루 급히 솎아줘야 할 과실 꽃. 그래서 산밭 과수원엔 사람 꽃이 함께 피었다.
굳이 시간을 내어 자연에 들지 않아도, 고속도로를 주행하며 보는 경관은 지역마다 성질을 달리한다. 달리는 도로에서 마주하는 우리의 산내들, 산야는 계절에 따라 초록동색들과 강줄기가 어우러진다. 농부들이 한 해를 준비한 논밭 풍경, 도로변 마을 생김새와 마을을 잇는 하얀 마을 길들. 이들은 자연경관과는 다른, 사람이 어우러져 빚어낸 문화경관이다. 경관을 바라보며 마음의 여유가 무임 승차한 동안, 장소의 이동이 아닌 어느새 마음이 일상에서 이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산천이 익숙하지 않은 경관으로 바뀌고 있다. 산허리를 통째로 삼키거나 초록의 숲에 버짐 도장처럼 찍힌 태양광 단지들 때문이다. 몇몇 장소에서만 생산되는 에너지(dirty energy)에서 어디서나 생산되는 친환경 청정에너지로 대체되면, 전선과 송전탑, 전주가 사라지나 보다 했다.
햇빛은 끝없이 지구로 쏟아진다. 이 연료는 석탄발전소에서 배출되는 탄소 배출량의 94%를 줄일 수 있을 만큼 깨끗하다. 게다가 가격 변동도 없다. 과거에는 태양광발전이 하도 비싸 위성에나 사용했지만, 현재 태양광발전은 기존 발전보다도 갈수록 비용이 줄고 있다. 캐나다와 핀란드, 독일, 스웨덴 등은 이미 석탄 사용을 금지하거나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우리 역시 에너지 전환은 우리 세대에 이루어야 할 명백한 사실이다.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은 시기의 문제이자 속도의 문제일 뿐이다.
태양광발전은 토지의 태양광발전단지가 지붕형 태양광발전보다 설치비용이 낮다. 태양광을 전기로 변화하는 효율도 높다. 그렇다고 해서 산림을 무분별하게 훼손하는 방식은 동의하기 어렵다. 산림의 혜택, 즉 산림의 생태계 서비스를 따지자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정책인가 싶다.
태양광발전의 선두주자인 독일은 물론이고, 호주 역시 집집마다 태양광 발전 시설이 옥상이나 지붕 위에 설치되고 있다. 소규모 태양광 발전 시스템은 전력망에 접근할 수 없는 저소득층 국가의 시골 지역에 설치되어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으로 부족함이 없다. 지구촌 사람이라면 지붕의 작은 부분을 소형 발전소로 바꾸는 일이 거스를 수 없는 시류가 되었다.
사실 현재의 도로는 지속가능성과는 거리가 멀다. 나의 자동차 역시 화석 연료를 태운다. 속도를 올리건 내리건 늘 오염물질을 내뿜고 있다. 고속도로는 어떤가. 산허리를 깎아 생태계를 단절시켰다. 그러한 도로를 달리며 문화경관이 갖는 장소성을 느끼니 아이러니다.
훗날 친환경 자동차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전기 충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정차하지 않고도 충전할 수 있는 특별한 차선을 만들기 때문이다. 바로 스마트 고속도로다. 스마트고속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 자동차 안에서는 창 밖을 바라볼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면 대규모 태양광발전단지들에 의해 전통적인 문화경관이 상당 부분 훼손된 후일 것이다.
산림과 농지는 기후변화에 끼친 영향이 가장 적은데도, 기후변화는 자연의 물리적 풍경 이상으로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을 잃으면 우리는 찾을 고향을 잃어 마음 속에서나 고향을 그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수경 기자]
▲ 하늘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최근의 고속도로 청주-영덕 고속도로의 문의면 구간이다. 대전-통영, 대전-당진 고속도로도 다를 바 없다. |
ⓒ 최수경 |
나는 주로 금강에서 일하다 보니 금강 유역권의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한다. 금강 발원지 장수로 향하는 대전-통영 고속도로, 금강 하구 서천으로 향하는 대전-당진 고속도로는 주로 산허리를 깎아 걸치거나 드높은 교각이 받치고 있어 경관이 가린다. 마을과 논밭은 도로 아래에 있는 세상이라 안 보인다. 다리 위에서 강풍이라도 만나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들어 핸들에 힘을 준다.
▲ 호남고속도로 계룡나들목 인근 위왕산에서 내려다 본 호남고속도로 |
ⓒ 최수경 |
하행하는 호남고속도로는 서대전 나들목부터 구불구불한 누더기 도로다. 요철이 심하고 급회전하는 언덕길과 내리막길이 많아 주의해야 한다. 과거에 만든 고속도로인지라 운전자의 눈높이가 마을 지붕 높이거나 마을 길 눈높이다. 도로를 따라 난 마을과 노거수와 정자가 선명하게 들어오고, 마을 길 한가운데 목줄 풀려 돌아다니는 백구와 바둑이도 시야에 잡힌다. 연무대 나들목 즈음에선 훈련받는 장병들이 고속도로 위로 난 육교를 행군하는 모습도 간혹 보인다.
▲ 봄논과 봄밭이 가름마를 탄 듯 정갈하다 우리 농촌에 봄을 알리는 전형적인 문화경관이다. |
ⓒ 최수경 |
벚꽃 전선이 고을을 지나 최절정기를 넘긴 5월 이후, 흰색 꽃들이 시절 모르고 일제히 피어 계절을 앞당긴다. 산야에 초록이 물 차오를수록 시선을 끄는 것은 오히려 초록의 보색인 붉은 흙밭이다. 황산벌의 누른 산(논산)은 봄밭을 참빗으로 가르마 타서 정갈하게 갈아놓아 이색적이다. 마치 동백기름 바른 여인의 가르마처럼 곱게 산밭을 빗어 놓았다. 기계가 지나간 흔적이지만, 기계도 황소처럼 부려야 일이 된다. 자식들 키워 가르친 산밭을 놀리지 않는 농심이 느껴져 안심이다.
▲ 지역의 특성상 다경작을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들은 밭갈이와 나승개 밭, 논은 모내기와 양파 수확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
ⓒ 최수경 |
강원도의 산밭은 화장술이 가히 영국 프리미어 리그 경기장 같다. 티끌 하나 없이 매끈하니 선수만 입장하면 된다. 전라도의 산밭은 시골학교 운동장 같다. 운동회 전날 운동장 한편에 먼저 자리한 읍내식당 천막처럼, 산밭은 이미 나승개(냉이) 밭이다. 충청도의 산밭은 아직도 꽃밭이다. 사람 좋아하라 핀 꽃이 아닌, 하루 급히 솎아줘야 할 과실 꽃. 그래서 산밭 과수원엔 사람 꽃이 함께 피었다.
▲ 들과 길 그리고 비보림은 전형적인 문화경관이다 우리의 정서에 녹아있는 문화경관을 접하면 마음이 편하다. |
ⓒ 최수경 |
굳이 시간을 내어 자연에 들지 않아도, 고속도로를 주행하며 보는 경관은 지역마다 성질을 달리한다. 달리는 도로에서 마주하는 우리의 산내들, 산야는 계절에 따라 초록동색들과 강줄기가 어우러진다. 농부들이 한 해를 준비한 논밭 풍경, 도로변 마을 생김새와 마을을 잇는 하얀 마을 길들. 이들은 자연경관과는 다른, 사람이 어우러져 빚어낸 문화경관이다. 경관을 바라보며 마음의 여유가 무임 승차한 동안, 장소의 이동이 아닌 어느새 마음이 일상에서 이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 농경지를 잠식하고 있는 태양광단지 휘어도는 강줄기의 너른 배후습지는 농사짓기에 일품인 비옥한 땅이다. 그 땅의 기운을 먹고 작물이 커야 하거늘, 땅의 거죽에 태양광발전단지가 누워있다. |
ⓒ 최병성 |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산천이 익숙하지 않은 경관으로 바뀌고 있다. 산허리를 통째로 삼키거나 초록의 숲에 버짐 도장처럼 찍힌 태양광 단지들 때문이다. 몇몇 장소에서만 생산되는 에너지(dirty energy)에서 어디서나 생산되는 친환경 청정에너지로 대체되면, 전선과 송전탑, 전주가 사라지나 보다 했다.
오히려 백두대간과 논밭 그리고 갯벌까지 쇳조각들로 덮이고 있다. 태양광발전단지가 온 국토의 산야를 파헤치고 퀼트 하듯 쇠못을 박아대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국토의 혈에 징을 박아 민족의 정기를 앗았던 만행이 문득 떠오른다.
▲ 모내기한 논에 지는 해 논에는 벼가, 밭에는 작물이 크고 있어야 우리 농촌이 살아있음을, 고향이 존재함을 느낀다. |
ⓒ 최수경 |
햇빛은 끝없이 지구로 쏟아진다. 이 연료는 석탄발전소에서 배출되는 탄소 배출량의 94%를 줄일 수 있을 만큼 깨끗하다. 게다가 가격 변동도 없다. 과거에는 태양광발전이 하도 비싸 위성에나 사용했지만, 현재 태양광발전은 기존 발전보다도 갈수록 비용이 줄고 있다. 캐나다와 핀란드, 독일, 스웨덴 등은 이미 석탄 사용을 금지하거나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우리 역시 에너지 전환은 우리 세대에 이루어야 할 명백한 사실이다.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은 시기의 문제이자 속도의 문제일 뿐이다.
▲ 독일의 농가 대안에너지 발전시설 태양광과 풍력발전 등 자연의 리듬을 보완하여 대체 에너지를 병행하였다. |
ⓒ 최수경 |
태양광발전은 토지의 태양광발전단지가 지붕형 태양광발전보다 설치비용이 낮다. 태양광을 전기로 변화하는 효율도 높다. 그렇다고 해서 산림을 무분별하게 훼손하는 방식은 동의하기 어렵다. 산림의 혜택, 즉 산림의 생태계 서비스를 따지자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정책인가 싶다.
태양은 정오에 최고조에 달하지만, 전기 수요는 몇 시간 뒤 최고조에 달한다. 따라서 태양광 발전과 함께 지열이나 풍력처럼 다른 리듬을 가진 보완적 재생에너지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도 대규모 태양광단지만 입지를 가리지 않고 설치된다. 정치적인 지역 이분화와 부패 카르텔이 우려된다.
▲ 독일의 그림같은 집이라도 지붕은 소규모 태양광 발전기를 얹었다 공장, 주택, 평야 안 가리고 태양광과 풍력발전기가 일반적이지만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이 비교적 훼손되지않고 조화를 이룬다. |
ⓒ 최수경 |
태양광발전의 선두주자인 독일은 물론이고, 호주 역시 집집마다 태양광 발전 시설이 옥상이나 지붕 위에 설치되고 있다. 소규모 태양광 발전 시스템은 전력망에 접근할 수 없는 저소득층 국가의 시골 지역에 설치되어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으로 부족함이 없다. 지구촌 사람이라면 지붕의 작은 부분을 소형 발전소로 바꾸는 일이 거스를 수 없는 시류가 되었다.
▲ 청주-영덕고속도로의 속리산휴게소 인근 고속도로 공지 태양광발전단지 농지와 산지를 점유한 태양광발전단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다. |
ⓒ 최병성 |
사실 현재의 도로는 지속가능성과는 거리가 멀다. 나의 자동차 역시 화석 연료를 태운다. 속도를 올리건 내리건 늘 오염물질을 내뿜고 있다. 고속도로는 어떤가. 산허리를 깎아 생태계를 단절시켰다. 그러한 도로를 달리며 문화경관이 갖는 장소성을 느끼니 아이러니다.
최근 산야를 뒤덮는 대규모 태양광시설을 고속도로 옆 사용하지 않는 개방 공간에 설치하는 예를 종종 본다. 공도 용지를 따라 태양광발전단지를 설치하거나, 소음 장벽을 태양광발전 설비로 활용하는 것들은 도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 공주의 금강과 천안논산고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서 감상할 자연경관과 문화경관 |
ⓒ 윤순태 |
훗날 친환경 자동차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전기 충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정차하지 않고도 충전할 수 있는 특별한 차선을 만들기 때문이다. 바로 스마트 고속도로다. 스마트고속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 자동차 안에서는 창 밖을 바라볼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면 대규모 태양광발전단지들에 의해 전통적인 문화경관이 상당 부분 훼손된 후일 것이다.
▲ 한국의 자연경관과 문화경관 미래세대가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고 누려야 할 경관이길 바란다. |
ⓒ 최수경 |
산림과 농지는 기후변화에 끼친 영향이 가장 적은데도, 기후변화는 자연의 물리적 풍경 이상으로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을 잃으면 우리는 찾을 고향을 잃어 마음 속에서나 고향을 그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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