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母 편지 뜯고 "처벌 받겠다"..유튜버의 위험한 응징
복수대행 드라마 '모범택시'도 인기
"사법기관 불신, 여론재판 부추겨"
법조계 "사회적 혼란 더 커질 우려"
지난 9일, 유튜버 A씨의 실시간 방송에서 16개월 입양아 정인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양모 장모씨의 편지가 공개됐다. 그가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쓴 ‘옥중 편지’였다. 편지에는 친딸의 영어교육과 “주식 정리를 잘했다”는 일상적인 내용이 담겨 정인이의 비참한 죽음을 아는 이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었다.
A씨는 편지의 입수 경로를 밝히지 않고 “(편지 공개에 따른)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 A씨가 봉인된 편지를 가로채 뜯었다면 형법상 비밀침해죄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는 옥중 편지 공개 이전엔 장씨 남편이 머무는 교회를 찾아가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른바 ‘응징 콘텐트’를 방송 소재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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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받겠다”며 봉인된 편지 공개
장씨의 변호인은 11일 중앙일보에 “편지를 불법적으로 뜯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통상 변호인을 통해 전달됐는데 어버이날 편지를 보내며 사적인 내용을 담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장씨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오는 14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관악구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한 20대 남성 B씨 또한 응징의 대상이 됐다. B씨가 피해자를 폭행한 영상은 온라인에서 퍼져나갔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버들이 나서서 B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한 유튜버는 "신상이 모자이크되어 공개되고 있는데 저는 모자이크 안 한다. 택시 기사 폭행범의 신상을 공개하겠다"며 '신상털기'를 통한 응징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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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 대신 '해결사'로 나선 유튜버들
이처럼 '해결사'로 나서는 유튜버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수사기관 대신해 '사적 응징'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주목을 받는다. 정의 구현을 내세우며 법적 절차에 따른 처벌 대신 법 위반을 감수하고 신상을 공개하는 식이다. 응징의 대상을 직접 찾아가 폭력을 암시하거나 망신을 주는 실시간 방송을 해 구독자를 모으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이 출소할 당시 유튜버들이 몰려 호송 차량을 파손하기도 했다.
응징 방송과 신상털기 유튜브 방송이 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대중들은 수사기관이 피해자 보호에는 소홀하고 피의자 인권을 강조한다고 느끼는 불만과 반발심리가 있다”면서 “n번방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성범죄자의 신상을 인터넷 등에 공개하는) 디지털 교도소가 논란됐지만, 대중들은 열광했다. 국가가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이렇게라도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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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응징’ 드라마·웹툰도 인기
사적 복수와 응징에 성공하는 해결사들이 나오는 드라마와 웹툰도 최근 인기를 얻고 있다. 전화 한 통에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하는 TV 드라마 ‘모범택시’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다.
동네 건달에게 어머니를 잃은 주인공이 경찰대에 진학해 죄질에 비해 가벼운 형량을 받은 뒤에도 같은 일을 저지르는 이들을 심판한다는 내용의 웹툰(비질란테)은 2018년부터 올해 1월 연재가 끝날 때 까지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김대근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최근 경찰, 검찰, 법원 등이 국민에게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 아니라 적폐와 부정의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형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법 신뢰도는 실제로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유튜버 해결사’ 현상에 대해서도 “과거와 달리 지금은 대면 없이 디지털을 통해 명예훼손이나 응징을 하는 응징이 주목받고 있다”며 “국가가 행하는 형벌을 단순히 복수와 응보의 관점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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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절차 통한 해결이 사회 유지”
부장판사 출신의 도진기 변호사(법무법인 서울센트럴)는 “정인양 사건에 국한해 볼 때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고 양모 처벌은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이라면서 “사적 보복을 하지 말고 법적 절차를 통해 처리해야 사회가 유지된다는 것이 형법의 의의이다. 감정적으로 대중의 정의감이 충족될지 몰라도 이런 양상이 계속되면 사회적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국·이가람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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