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집사의 의무

2021. 5. 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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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개와 고양이들이 여전히 행복의 끈을 놓지 않은 이상 나 역시 용기를 내야 할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다면 유기동물을 입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아주 사적인 이유.

CAN I

LOVE YOU?

수만 보면 반려동물 없이 못 살 것 같은 사람들로 가득한 나라에서 매일 수많은 반려동물이 버려진다는 사실이 조금 슬펐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쉽게 사랑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모든 걸 의지하는 작은 생명의 온기를 아무렇지 않게 저버리는 걸까.

성인이 되고 나서 언제부턴가 아이를 갖는다면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다. 친구들이 깜짝 놀라 이유를 되물으면 튀어나오던 의외의 소신. “세상에 이미 버려진 아이들이 많은데 굳이 나까지 아이를 낳을 필요가 있나? 버림받은 아이 한 명을 돌보는 게 세상에 도움도 되고 좋지.” 하지만 내 갈 길만 똑바로 걸어가기도 버거운 20대를 헤쳐나가며 원인 불명의 소신은 어느새 옅어져 갔고, 대신 나만의 집이 생기면 고양이부터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이왕이면 운명의 길고양이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소신은 어찌저찌 유지됐다고도 볼 수 있다. 반려동물에 대한 열망이 결코 가볍지 않았기에 당연히 연애할 때도 이와 관련된 주제는 자주 등장했다. 지금 남자친구는 명백히 고양이보다 강아지 쪽을 선호한다. 우리 엄마는 고양이를 지나치게 무서워한다. 만약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동시에 반려동물을 들이고 싶은 마음이 확고하다면, 고양이가 아닌 강아지를 들이는 상황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아지를 키우게 될 경우, 난 그 아이를 과연 어디서 데려와야 할까 ? 길고양이를 ‘냥줍’한 경우는 봤어도 길거리에서 개를 데려와 키운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주인 없는 강아지는 수두룩했다.

‘반려 가구 1500만 명 시대’라는 통계가 생명 감수성의 획기적인 진일보를 의미하는 것처럼 웹사이트를 수놓는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 수는 604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약 30%를 차지한다. 3인 이상 가구가 17.4%라는 사실로 미뤄 짐작하건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보다 반려동물을 들이는 쪽을 더 쉽게 택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문제는 반려동물의 수가 늘어가면서 유기되는 반려동물의 수도 함께 늘어났다는 점이다. 또 한국인의 애정은 고양이보다 강아지 쪽에 치우쳐 있어 유기견의 수는 유기묘보다 세 배나 많았다. 그 많은 버려진 개들은 전부 어디에 있을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곳은 유기동물보호센터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전국 유기동물보호센터는 234개. 용인시 동물보호센터 한 곳에만 매일 5~10마리의 개가 도착한다. 그에 비해 입양되는 유기동물의 수는 변함없이 전체의 30%를 밑돌고(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반려동물 입양에 긍정적인 것으로 조사됐음에도) 그 결과 기적적으로 보호소에 당도한 동물의 절반이 자연사하거나 안락사된다. 품종견에 비해 세 배나 더 많이 버려지는 비품종견의 상황은 더욱 나쁘다. 반려 가구 수만 보면 반려동물 없이 못 살 것 같은 사람들로 가득한 나라에서 매일 엄청난 수의 반려동물이 버려진다는 사실이 조금 슬펐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쉽게 사랑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모든 걸 의지하는 작은 생명의 온기를 아무렇지 않게 저버리는 걸까.

다행히도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며 유기동물 문제에 대해 논의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스멀스멀 감지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이와 관련된 가장 뜨거운 논의가 오가는 곳이 경기도다. 올초부터 ‘동물보호·복지정책간담회’와 경기도 고양이 입양센터 기공식 등 동물 관련 행사가 수두룩 개최됐다. 현재 경기도에서는 반려동물을 둘러싼 거래를 일절 금하고, 대신 영국과 독일처럼 전문 입양 센터라는 선택지만 열어놓자는 동물단체의 입장과 무조건 산업 자체를 막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못 박는 펫 산업계의 입장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엎치락뒤치락한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어느 쪽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보다 그저 초조해지기만 한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의 크고 작은 논의를 통해 동물 감수성이 깊어지고,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다. 더 많은 반려동물이 홍채나 비문 인식(반려견의 코 문양을 인식하는 것)을 통해 시스템에 등록되고, 그렇게 유기동물의 현황을 명확히 알 수 있게 되면 유기 당사자의 책임을 묻기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반려동물 보험이나 예방접종 지원, 노령 동물 케어 센터 같은 복지시설이 확대되면 자연스럽게 ‘파양’과 ‘유기’ 문제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희망적인 가정들은 지금 당장 죽을 위험에 처한 유기동물이 너무 많다는 생각으로 돌아오면 순식간에 흩어진다. 오늘도 끝내 입양되지 못한 어떤 강아지에겐 내일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얼핏 희망적으로 비치는 유기동물 관련 기사를 보다가 결국 평소 팔로하던 임시 보호 계정( jessica_simsoon)으로 돌아온다. 반려인과 진돗개 한 마리, 세 마리의 길고양이가 함께 사는 이 가족에겐 현재 ‘봄동이’라는 길고양이가 잠시 얹혀 살고 있다. 수년째 계정을 지켜보는 동안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잭잭이’와 뉴욕으로 간 ‘행복이’를 비롯, 해외 입양에 성공한 사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아픔을 간직했음에도 금방 마음을 주고,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봄동이’를 보며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한, 앞으로도 유기동물 입양이라는 선택지를 잊지 않기로 다시금 다짐한다. 물론 그 과정은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까다롭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믿을만한 동물보호소는 철저한 검증 과정을 통해 입양을 허가하고 있고, 심지어 임시보호를 추진하는 카페나 개인 SNS 계정에서도 입양신청서를 필수로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다운로드해 본 유기동물 입양신청서는 가족 구성원과 주거 형태, 경제적 수준을 포함한 20여 개의 질문으로 빼곡했고, 곳곳에 서명을 요하는 조항들은 더없이 엄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설렘만으로 치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직 함께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이 이만큼이라니…. 특히 SNS를 통해 개인적인 소식을 남에게 알리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겐 ‘입양 후 아이의 사진이나 근황을 약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확인할 수 있도록 본인의 SNS 계정에 올려주실 의향이 있으신가요?’와 같은 문항이 껄끄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입양 후 내가 맞닥뜨릴 일의 무게에 비하면 이 모든 다짐과 각오, 약속들이 결코 무겁지 만은 않다는 것.

종종 들려오는 스타들의 유기동물 입양 소식은 알게 모르게 힘이 된다. 경남 고성군의 한 보호소에 4개월 넘게 머무르다가 결국 안락사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곰자’를 입양한 조승우. 유기견을 홍보하는 SNS 계정을 통해 반려견 ‘행크’를 만난 로제. 지난해 9월, 안락사 위기에 있던 ‘꼬미’에 이어 최근 누군가에게 학대받다 겨우 구조된 ‘쪼꼬미’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빈지노와 미초바 커플. 강아지 공장(퍼피밀)에서 번식견으로 혹사당하던 강아지 ‘아란’을 임시보호 중인 청하까지. 아! 집 근처 자전거보관소 앞에 유기된 새끼고양이를 직접 구조한 오마이걸의 승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유행했던 견종이 몇 년 뒤 유기견으로 급증하던 악순환을 상기하며 이 아름다운 움직임이 예상치 못한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들의 선한 영향력을 믿고 싶다. 반려동물과의 행복한 삶을 꿈꾸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유기동물을 데려올 용기를 줄 수 있기를. 아픈 기억 저 밑에 다시금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여전히 간직한 아이들과 더 큰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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