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급서.. 영화계 '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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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큰형 역할을 하던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이 11일 저녁 급서했다.
2000년 충무로에 젊은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한 영화인회의가 만들어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그는 이사장을 맡아 단체를 이끌어 왔다.
이 이사장은 영화계 선후배들을 아우르며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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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훈 기자]
▲ 지난해 6월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당시의 이춘연 이사장(오른쪽) 모습. |
ⓒ 이정민 |
전날까지도 영화시사회 참석 등 활발하게 활동해 온 이춘연 이사장은 이날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얼굴색이 안 좋았고 점심 먹은 게 체한 것 같다면서 불편한 표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갔는데, 대문 안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했다고 한다.
1951년생인 이춘연 이사장은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1970년대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83년 영화 쪽에서도 활동을 시작했다. 이 이사장은 1984년 <과부춤>을 시작으로 <접시꽃 당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영웅연가>, <더 테러 라이브> 등을 기획 제작했고, 씨네2000 대표로서 <여고괴담> 시리즈를 제작해 크게 흥행시켰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신인 여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1991년 만들어진 한국영화기획실모임 대표를 맡아 기획영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주도했고, 스크린쿼터반대운동 등 영화계 현안에 젊은 영화인들을 아우르며 적극 앞장섰다.
2000년 충무로에 젊은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한 영화인회의가 만들어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그는 이사장을 맡아 단체를 이끌어 왔다. 또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이사, 조직위원, 집행위원 등을 맡아 한국영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 왔다.
이 이사장은 영화계 선후배들을 아우르며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한편 한국 영화의 큰 별이 졌다는 소식에 영화계 관계자들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빈소는 서울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되었으며 12일 오후 3시부터 조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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